메리츠, 돈 버는 동물적 감각 돋보였다

임정수 2023. 1. 13. 07: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메리츠, 롯데건설 PF 유동화증권 1.5조 매입
우량 사업장 많아 손실 가능성 작고 롯데 계열사 지원 가능
네트워크 확대로 새로운 IB사업 기회 모색

[아시아경제 임정수 기자] "기업이 어려울 때 적기에 솔루션을 제공해 사업 기회를 모색한다는 경영진의 일관된 전략이 롯데건설과의 거래(딜)를 만들어냈다." 메리츠금융그룹과 롯데그룹이 1조5000억원 규모의 롯데건설 지원 펀드를 조성한 것에 대해 "메리츠증권이 또 돈 냄새를 제대로 맡았다"는 게 투자은행(IB) 업계의 평가다.

롯데 계열사 측면 지원에 ‘3중 안전장치’…손실 가능성 크지 않아

메리츠금융의 대규모 투자는 언뜻 보면 상당한 모험으로 보인다. 리스크가 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화증권을 매입하는 데 계열 금융사들이 9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롯데건설 1개 회사의 건설 사업장에 메리츠증권 자기자본의 18%에 해당하는 대규모 유동성을 집중적으로 투자한다. 신용평가사도 우려를 나타냈다. NICE신용평가는 "부동산 익스포저가 자기자본의 110%에 이르는 메리츠증권이 PF 자산을 추가로 늘리면서 부동산 관련 리스크가 커졌다"고 평가했다.

최희문 메리츠증권 대표이사 부회장. 사진제공=메리츠증권

이에 대해 메리츠증권은 3중 안전장치를 마련해 선순위 투자금에서 손실이 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반박한다. 1차 안전장치로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6000억원에 달하는 후순위 자금을 펀드에 투입하기로 했다. 롯데건설 보증 PF 유동화증권을 매입한 펀드에서 손실이 발생해도 6000억원까지는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손실을 부담하는 구조다. 후순위 대출에는 롯데건설 본사 사옥도 담보로 제공됐다.

또 메리츠금융은 선순위대출을 집행하면서 건설 사업장 부동산, 매출채권 등을 담보로 잡았다. PF 유동화증권 부실로 펀드에서 60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면 담보권을 행사해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 이자를 못 받거나 이자 지급이 장기간 지연되더라도 큰 걱정이 없다. 롯데호텔과 롯데물산 등 롯데그룹 우량 계열사들이 이자 지급을 책임지기로 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롯데건설을 측면 지원할 만한 충분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고, 담보로 제공할 자산도 많다"면서 "안전장치를 겹겹으로 마련해 메리츠가 투자하는 선순위 대출의 원리금 손실 확률을 대폭 낮췄다"고 평가했다.

메리츠증권 IB 담당 임원은 "롯데건설이 보증을 제공한 PF 사업장들이 수도권과 지방 주요 도시의 핵심지에 위치해 장기적으로 분양 성과가 좋을 것"이라며 "최근 창원시 롯데 사업장 분양에서 20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롯데건설 보증 전체 사업장 중에 미분양 리스크가 낮은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비중이 20%에 달하고, 규모로도 1조원을 상회한다"면서 "미분양에 따른 PF 부실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평가했다.

폭우에 우산 주고 롯데와 혈맹…IB사업 기회 확대

메리츠금융 경영진의 결단에는 부동산 PF 이외의 IB사업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포석도 깔고 있다. 메리츠증권의 자기자본은 5조3000억원으로, 종합적인 IB 업무를 할 수 있는 초대형 IB로서의 자본 요건(4조원 이상)을 이미 갖췄다.

메리츠증권은 그동안 부동산 PF와 구조화 사업을 강점으로 자산을 확대하고 수익성을 늘려왔다. 하지만 기업공개(IPO),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 등의 정통 IB 업무에 대한 성과는 자본 규모가 유사한 다른 대형 증권사에 크게 밀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회사채 발행과 IPO 주관·인수 실적은 모두 10위권 밖이다.

하지만 이번 투자 협약으로 관계가 개선돼 롯데그룹 계열사에서 나오는 IB 딜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그룹은 최근 3년간 매년 4조원 이상의 회사채를 발행해왔다. 또 호텔롯데 등 IPO 후보가 여럿 대기하고 있다. 메리츠 입장에서는 롯데그룹을 통해 회사채나 IPO 주관, 인수 등으로 IB 부문 수수료 수익을 늘리고 수익원도 다변화할 수 있다.

롯데그룹은 유통을 비롯한 많은 계열사가 부동산 자산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또 인수합병(M&A) 시장의 '큰 손'이기도 하다. 롯데그룹의 부동산 유동화나 리츠(부동산투자회사), M&A 관련 거래에 메리츠증권이 솔루션과 유동성을 제공하는 기회를 확대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메리츠증권이 다른 그룹 계열 건설사에도 유사한 구조의 딜을 제안한 것으로 안다"면서 "이런 딜을 통해 기업의 자금 문제를 적절히 해결해 주면서 초대형 IB로 성장하기 위한 기업 고객 기반을 하나씩 늘려가겠다는 경영진의 의지와 전략이 엿보인다"고 평가했다.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