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자치, 제주 아니었어? 벌써 절반인 8곳 경쟁…이게 뭔일

김민욱, 박진호, 김준희 2023. 1. 1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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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오색케이블카 하부 정류장 부지에서 바라본 설악산. 사진 강원 양양군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강원의 40년 숙원사업이다. 오색약수터 인근~끝청봉 간 3492m 길이 케이블카를 설치해 대표 관광자원으로 삼겠단 전략이었다. 1982년 추진됐으나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환경규제에 번번이 발목이 잡혔다. GPS(위치추적기) 산양 부착이나 지질 재조사, 소음대책 강화 등 여러 요구가 나왔다. 2년 전 강원 양양군은 이에 대해 “(환경 당국의) 요구 조건들이 황당하다 못해 괴기스럽다”는 공식입장까지 냈다.


출범 앞두고 커지는 기대감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지난 수십년간 산림과 환경·군사·농업 분야에서 이삼중의 중첩 규제에 시달려온 강원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강원도 내 규제면적은 2만1891㎢로 수도권 땅덩어리의 1.9배에 달할 정도다. 강원도는 중첩 규제로 인한 자산가치와 생산 손실액이 6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강원도는 올 6월 ‘강원특별자치도’ 출범을 앞두고 기대감이 상당하다. 특별자치단체는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고 행정규제를 완화해 조직·재정을 독자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특정 정책·사업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특례 규정도 주어진다. 강원도는 특별자치도 출범을 계기로 이참에 각종 불합리한 규제를 한 번에 정비할 기회로 보고 있다.

내년 1월 특별자치도로 변신하는 전북도 비슷하다. 전북은 호남권에서 줄곧 광주·전남의 틈바구니에 끼여 차별을 받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 국세청·통계청 등 중앙 기관도 호남 총괄 본부는 대부분 광주·전남에 있고, 전북엔 지역 사무소나 분소 정도를 두고 있어서다. 또 중앙 정부에서 하는 각종 공모 사업에서도 적지 않은 불이익을 받아왔단 평가다.
지난해 강원도청 인근에 강원특별자치도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된 것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특별법 통과로 '강원도'라는 명칭은 내년 6월 628년만에 사라지고 '강원특별자치도'가 출범한다. 연합뉴스


곳곳에서 법 조항 충돌


하지만 현재 강원·전북만의 ‘특별함’은 찾아볼 수 없단 지적이 나온다. 23개 조항인 강원특별자치도법과 28개 조항인 전북특별자치도법을 비교해 보면, 조항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16년 전 특별자치도가 된 제주의 경우 ‘국제 관광’, 세종의 경우 ‘행정 수도’란 특징이 있는데 강원과 전북은 지향점 등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전북의 경우 출범 전까지 ‘농생명 수도’ 기반을 만들고, 새만금 연계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특례를 찾아내는 게 과제다.

강원·전북은 제주·세종과 달리 기초자치단체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자연히 도와 시·군의 권한과 책임 등을 규정한 기존 법 조항과 곳곳에서 모순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도시계획을 수립할 때 현행 국토계획법상엔 광역지자체는 광역도시계획을, 기초지자체는 도시기본계획 등을 수립해야 한다고 돼 있다. 특별자치도의 경우 도시기본계획을 직접 세울 수 있다 보니 일선 시·군과 ‘충돌’이 생길 수 있다. 행정안전부와 강원도가 법령을 쭉 살펴봤더니 이런 충돌 소지는 90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강원도 관계자는 “점차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는 게 이제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충돌이 생기는 것과 관련해서) 새롭고 더 합리적인 모델을 만드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제4차 본회의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안이 가결되고 있다. 연합뉴스


16개 시·도 중 절반이 '특별' 찾아


특히 특별자치단체가 난립 분위기다. 경기와 충북도 추진에 나섰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지난 10일 경기북부상공회의소 신년 인사회에서 “올해를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만들고 경기북부 경제가 역동적으로 활력을 갖추는 원년으로 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기도는 추진단도 꾸렸다. 충북은 특별자치도 설치 등의 내용을 담은 ‘중부내륙지원특별법’을 검토하고 있다. 광주·전남도 특별자치단체 설립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서울을 뺀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절반인 8곳이 특별자치 지위를 갖고 있거나 추진 중인 것이다. 특별자치단체는 국무조정실 안에 지원위원회를 두고 행·재정적 지원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난립할 경우 유사성격의 위원회는 통합될 가능성이 크다. 자칫 ‘정치논리’에 따라 위원회가 나눠주기식으로 운영될 수도 있단 지적이다.

나철성 강원평화경제연구소장은 “특별자치도는 특별한 성격과 지위를 주고 예산지원과 권한을 위임하는 것인데, 특별자치도가 많아지면 예산 지원에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특별지자체 지정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갈 길 먼 특별자치단체


갈 길도 멀다. 올해 특별자치도 출범 17주년을 맞는 제주조차 여전히 ‘무늬만 특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인구와 관광객 수, 예산 등 면에서 양적 성장을 일궜으나 고도의 자치권 보장 등은 한계에 직면했다면서다. 국민의힘 이정엽 제주도의원은 “고도의 자치권이 무엇인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 고민과 함께 제주만의 새로운 (특별자치도) 개념 재정립에 발 빠르게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민선식 전북도 정책기획관은 “강원·전북은 지자체와 주민이 지역 발전 모멘텀(동력)을 얻기 위해 상향식으로 특별자치도를 추진하다 보니 정부는 ‘(강원·전북이) 제대로 된 사업을 찾아오라거나 맞는 특례를 가져오라’는 분위기가 있다”며 “다만 특별자치도법이 통과한 건 정부와 국회 모두 전북·강원의 지역 균형 발전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광역단체가 주도해 정부 공감대와 정치권 협력 속에 만들어진 (특별자치도)법이기 때문에 법 시행 전까지 지역만의 강점을 살리는 특례와 사업을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춘천·전주=박진호·김준희 기자,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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