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그만” 한 마디에 은행들 예금금리 인하… 금리는 고무줄?
불과 두 달 전 연 5%대에 이르던 시중은행 정기 예금 금리가 어느 새 3%대까지 뚝 떨어졌다. 최고 연 6%대를 넘겼던 저축은행권 정기 예금 금리도 5%대로 내려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말 예금 금리를 그만 올리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자 금융권이 기다렸다는 듯 화답한 결과다.
반면 대출 금리는 여전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에는 변동이 없는데 은행권 대출 금리 오름세는 멈추지 않는 양상이다. 금융당국 수장 말 한 마디에 금리가 시소처럼 오르내리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5대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 예금 대표 상품 금리는 연 3.9~4.2%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 5일(연 4.8~5%)과 비교하면 약 한 달 새 0.6~1.1% 포인트 하락했다.
저축은행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11일 전국 저축은행 79곳의 1년 만기 정기 예금 금리 평균치는 연 5.2%였다. 저축은행권 1년 만기 정기 예금 금리 평균치는 지난해 11월 연 5.5%를 웃돈 뒤 곧 6% 선에 도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었다. 실제로 OK 다올 상상인저축은행은 연 6%대 금리를 제공하는 1년 만기 정기 예금을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예금 금리가 급락한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개입이 있다. 이 원장은 지난해 11월 24일 “(정기 예금 등) 수신 금리 과당 경쟁에 따른 자금 쏠림이 줄어들도록 관리 감독을 강화해달라”고 말했다. 다음날 김 위원장도 “(정기 예금 금리 인상을 통한)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 확보 경쟁은 시장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거들었다.
당시 금융 시장은 레고랜드와 흥국생명 사태로 인해 단기 자금이 말라붙은 상태였다. 유동성이 부족해질 것을 우려한 저축은행과 캐피털사 등이 앞다퉈 자금을 끌어모으며 시중 금리가 요동쳤다. 김 위원장과 이 원장은 금융당국 수장으로서 특정 분야로 자금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내놓은 고육지책성 발언이었지만 금융 소비자의 경우 대출 금리는 그대로인데 예금 금리만 내리는 불합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예금 금리가 급속도로 내려가는 반면 대출은 여전히 고공 행진 중이다. 지난 11일 5대 시중은행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4.9~8.1%로 나타났다. 변동형 주담대 금리 상단이 연 8%를 넘긴 것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처음이다. 같은 날 마이너스통장 금리 또한 연 6.1~7.5%로 예금 대비 적게는 1.9% 포인트, 많게는 3.6% 포인트 높았다. 지난해 11월 기준 5대 시중은행 예금과 대출 간(예대) 금리차는 NH농협은행 1.67% 포인트, 우리은행 1.13% 포인트, 신한은행 1.11% 포인트, 하나은행 1.05% 포인트, KB국민은행 1.02% 포인트 순으로 나타났다.
금융 소비자에게 원성을 들은 금융당국은 뒤늦게 대출 금리 통제에도 나섰다. 이 원장은 지난 10일 “금리 상승기 은행권이 시장 금리나 차주 신용도에 비해 대출 금리를 과도하게 올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면서 “은행권 금리 산정 실태를 점검해 미흡한 부분은 개선하도록 하는 등 투명성을 제고하라”고 말했다.
은행권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은행연합회(은행연)는 이 원장 발언이 공개된 다음 날인 지난 11일 설명 자료를 내놓고 간접 반박했다. 은행연은 “최근 은행권 예금 금리가 하락하는데 대출 금리는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이는 최근 시중 금리가 하락하는 과정에서 예금과 만기 구조 차이에 따라 빚어진 단기적인 현상”이라고 밝혔다.
시중은행 관계자도 “변동형 주담대의 경우 금리를 산정하는 기준이 되는 코픽스(KB국민 등 시중은행 8곳이 조달한 자금의 가중 평균 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다”면서 “대출금리를 대폭 내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은행권을 향한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앞서 은행권은 지난해 4분기(10~12월) “대출 금리를 낮춰 금융 소비자 부담을 덜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전세자금대출에 한정됐을 뿐 주담대나 신용대출 금리는 꾸준히 올랐다. 은행권 예대 금리차가 전월 대비 감소한 것은 은행연이 지난해 8월 공시를 처음 시작한 이래 단 한 차례인 지난해 10월뿐이었다.
전문가는 금융당국의 무리한 개입과 은행권의 욕심이 빚어낸 촌극이라고 지적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당국은 ‘관치는 없다’고 말하지만 금융사 영업권과 감독권을 모두 쥐고 있어 은행권이 수장 발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면서 “다만 매년 적게는 수천억원, 많게는 수조원의 당기순이익을 벌어들이는 은행권도 ‘예대 금리차가 과도하다’는 금융당국과 금융 소비자의 지적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정치권에서도 은행권의 이자 장사를 법적으로 금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은 12일 은행권의 예대 금리차로 인한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 금융당국에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의 은행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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