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대리수술', 7년 만에 처벌에 성공했습니다 [의료소송 5년, 끝까지 간다]

권태훈 2023. 1. 1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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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소송 5년, 끝까지 간다] 권대희 사건 대법원 선고, 병원장 징역 3년 확정

[권태훈 기자]

"상고를 전부 기각한다."

대법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어머니는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슬픈 일이 아닌데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을 응원하는 많은 이들이 추운 날씨 속에서도 대법원을 찾았습니다. 그들 중에선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사건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여 가슴 철렁한 이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2023년 1월 12일,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수술 중 환자의 대량출혈을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한 권대희 사건의 최종 선고를 내렸습니다. 결과는 성형외과 원장 장모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 확정이었습니다. 함께 기소된 동료 의사 신모씨에게도 금고 10개월의 유죄 판단이 내려졌습니다(관련 연재 : 의료소송 5년, 끝까지 간다).

우리는 타협할 수 없었습니다 
 
▲ 선고 직후 어머니 대법원 선고 직후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
ⓒ 권태훈
 
상고 기각,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확정하는 이 판결이 많은 이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일으켰나 봅니다. 대법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법정 이곳저곳에서 안도와 기쁨의 소리가 났습니다. 엄숙한 분위기 가운데 한껏 긴장해 있던 이들이 저마다 숨을 내쉰 겁니다.

대법원까지 올라온 어느 사건이 안 그랬겠습니까만, '권대희 사건'엔 특별한 구석이 적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랬기에 엄중한 법원 경위조차 우는 어머니를 제지하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아마도 그랬기에 많은 이들이 권대희 사건을 보러 대법원을 찾아준 것이겠지요.

법정 안엔 고마운 사람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사건이 전혀 조명받지 못했던 1심 때부터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던 이들이 많았습니다. 기사를 보고 법원을 찾았던 이들이 어머니 곁에서 늘 그를 지탱하는 지지자로 남았습니다. 탄원서를, 그저 본인의 것만이 아니라 주변인들에게 받아 수십 수백 장씩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사건을 뭉개고 유령수술을 한 병원이며 의사에게 면죄부를 주었던 검찰 때문에 무너져 가던 어머니가 그로부터 힘을 얻었습니다.

병원은 수차례나 수억 원의 합의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타협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권대희 사건은 대희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대희를 넘어 수술대 위에 눕는 모든 사람의 일이 아닌가요. 누구나 대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승리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유령수술은 과실이 아닌 범죄란 것, 아무리 직급이 낮은 말단 의사며 간호사나 간호조무사라도 유령수술에 대한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병원 측을 대리한 변호사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사법연수원을 함께 나온 그 검사는 이를 그저 과실범으로 기소하려 했었죠. 그건 수많은 잠재적 피해자를 양산하는 일이었지요. 결국 법원이 재정신청까지 받아들여 기소에 잘못이 있음을 명확히 한 그 검사를, 검찰은 결국 징계하지 않았습니다.

의료범죄 근절을 위해, 계속 나아갈 겁니다 
 
▲ 대법원 선고 기자회견 시민단체 닥터벤데타와 의료정의실천연대가 대법원 선고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태훈
 
오늘 어머니는 많은 기자들 앞에서 다른 의료사고 피해자며 시민단체 대표, 변호사들과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그저 떠난 내 동생 대희의 어머니만이 아닌, 한국 의료범죄의 근절을 꿈꾸는 의료정의실천연대의 대표가 돼 섰습니다.

어머니는 이 땅에 여전히 거듭되는 수많은 유령수술과 의료범죄가 그치는 날까지 싸움을 이어가겠다 하셨습니다. 그 버거움이 보이는 듯해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으나 어쩌면 그로부터 또 다른 대희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 아래 오늘의 기자회견문의 일부를 덧붙입니다.

그간 권대희 사건을 지켜보고 힘을 실어주신 <오마이뉴스>와 독자 여러분께 마음 다해 감사를 전합니다.
 
<2023년 1월 12일, 권대희 사건 대법원 선고 기자회견 중에서> 
박호균(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대표변호사)

❍ 故 권대희 군의 의료사고의 의미와 제도 개선
피해자 故 권대희 군이 2016. 의료사고로 사망한 후, 그 모친이신 이나금 여사님은 피해자로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와 형사고발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의료법에 CCTV 도입을 위해 쉬지 않는 1인 시위, 입법청원 등의 노력을 지속하였고, 이로 인해 실제로 의료법에 CCTV 설치 관련 조항이 추가되는 형태로 국회에서 개정되었으며 금년 2023. 9. 개정 의료법이 시행될 예정입니다. 다수의 의료사고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고인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이제 자신의 죽음을 통해 앞으로 수 많은 환자들의 수술실에서 안전을 위한 '보이지 않는 감시자'가 되어, 우리 곁에 계속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견제와 감시
또한 이 사건은 의료법위반(무면허의료행위)에 대해, 당초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있었지만, 법원에서 재정신청을 인용(공소제기를 명하는 결정)함으로써 검찰의 일부 불기소처분의 남용 혹은 문제점을 지적한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번 기회에 의료사고 관련 검찰의 적절한 기소권 행사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 대법원 판결의 함의와 제도적 한계
이번 대법원 판결은 영리적 목적에 치중한 병원 시스템을 운영하고, 또 그런 시스템을 당연시하고 협조한 의사들에 대해 크고 작은 형사처벌을 하였습니다. 다만 생각해 볼 점은, 우리 법제는 의료법위반(무면허의료행위)죄로 징역형이 선택된 피고인에 대해 면허를 취소할 수 있으나(다만 3년 후 재교부 가능),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금고형으로 처벌 받는 피고인들은 의사 면허를 유지하는 데에 아무 영향이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나라가 사람의 생명보다 특정 직역의 자격을 더 우선시하는 문제점이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하고, 적어도 비난가능성이 높은 유형의 사망 사고 유형(법원에서 중형이 선고된 경우), 다수의 반복적인 사망 사고를 초래한 유형에서는 국가가 부여하였던 면허를 회수할 필요성이 있는지 등 심각하게 제도 개선을 고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 故 권대희 군에 대한 추모
고인께서는 앞으로도 수 많은 환자들의 수술실에서 안전을 위한 '보이지 않는 감시자'가 되어, 우리 곁에 계속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사건 해결 과정에서 사법절차적 문제점과 의료인 면허 제도의 문제점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번 판결로 故 권대희 군과 유족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무엇보다 故 권대희 군의 영면을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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