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MC 사업' 확 줄인 기재부…'이건희 기부금' 위배 논란까지 번졌다
고(故) 이건희 회장의 기부로 탄력받는 듯했던 국립중앙의료원(NMC) 신축·이전 사업에 또 잡음이 일고 있다. NMC 측은 새 부지로 터를 옮기면서 중앙감염병병원을 포함해 현재 약 500병상 규모의 의료원을 1000병상 이상 상급종합병원급으로 키우려 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사업 예산을 대폭 깎아 통보하면서다. 야당에선 ‘공공의료 폐기 선언’이라고 규정하면서 이건희 유족 측과 맺은 약정에도 위반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1000병상 요청했지만 300병상 축소 통보
NMC 신축·이전은 의료계의 오래된 숙원사업이다. 2003년 서울 서초구 원지동 이전 방안이 제시됐지만, 20년간 논란을 거듭하며 답보 상태에 있다가 2020년 서울시가 중구 방산동 미군 공병단 부지로 이전하는 내용을 정부와 합의하면서 힘을 받았다. 특히 2021년 4월 이건희 회장 유족 측이 중앙감염병병원 건립 등에 쓸 7000억원을 기부하면서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최근 기재부가 NMC 신축·이전 총사업비 규모를 당초 요구보다 대폭 축소 통보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NMC는 당초 “필수 중증의료 중앙센터로서 상급종합병원 역할을 하겠다”며 본원 800병상을 포함해 중앙감염병병원(150병상), 중앙외상센터(100병상) 등 총 1050병상 규모의 병원을 짓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NMC는 중앙의료원법에 따라 고유의 목적 사업을 가진 국가 중앙 병원이며, 특히 새로 짓게 될 중앙감염병병원의 모(母)병원이자 각종 중앙정책센터로서 기능하기 위해선 최소 800병상 규모로 지어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손실이 불가피한 감염병병원과 외상센터를 함께 운영하려면 본원이 적정 병상을 갖추지 않고선 매년 대규모 적자를 봐야 할 것이라는 게 복지부 입장이었다.
이건희 회장 측 유족이 ‘세계 최고의 감염병전문병원을 지어달라’며 7000억원의 돈을 내놔 내심 추진에 무리가 없을 거라는 기대감도 컸을 거라는 게 의료계 얘기다. 그러나 기재부는 사업비 규모가 커진 만큼 적정성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나섰고 지난해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결과를 공개하면서 본원의 경우 현재대로 유지하거나(496병상) 늘리더라도 596병상 수준으로 신축하는 두 개 안을 제시했다. 이에 복지부가 최소 800병상 수준으로는 확보해야 한다고 재차 요청했지만, 기재부는 결국 본원 526병상, 감염병병원 134병상 등 총 760병상 규모로 확정한 사업비를 통보했다. 당초 NMC 청사진의 70% 수준으로 병상 규모가 쪼그라든 것이다.
NMC, 원장 나서 기자회견하려다 돌연 취소
이에 반발해 NMC는 11일 오전 10시께 주영수 원장이 직접 나서 입장을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12일 오후에 열겠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4시간 뒤인 11일 오후 2시쯤 돌연 이를 다시 취소한다고 기자단에 공지했다. 사유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기자회견 개최를 번복하는 것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 거듭 송구하다”고만 전했다. 이 회견에 참석하려 했던 한 관계자는 “NMC 원장이 끝까지 고민했던 것으로 아는데 이미 정부안을 통보받은 상황이라 기자회견의 실익이 없는 것으로 판단한 걸로 보인다”라며 “복지부 장관까지 나서 (병상 규모 확대를) 요청했지만 기재부 문턱을 못 넘은 것 같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감염병병원만 짓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감염병 중증 환자를 보려면 최소 800병상 이상 갖춘 모 병원(본원)에서 배후 진료 기능을 해줘야 한다”며 “지금 같은 상황은 형식적으로 중소병원 하나 지어놓고 노숙자만 보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공공의료 폐기…전면 재검토”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업 축소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야당 의원들은 “기재부는 ‘수도권의 인구감소와 과잉병상’ 등 단순한 경제성 논리를 내세워 사업 축소를 결정했다”면서 “NMC가 재난의료와 공공의료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중추적 기관임을 고려할 때 부적절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또 “국립중앙의료원은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임에도 총사업비 조정을 통해 사업 규모를 축소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이번 결정이 이건희 유족 측과 맺은 약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도 비판했다.
복지부는 일단 향후 기재부와 계속 협의해나가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설계공모 등 건립사업을 위한 행정 절차는 우선 시작한다”면서도 “추후 기본 설게 이후 의료장비, 병상 등 추가 수요에 대해선 기재부와 총사업비 조정을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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