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가 2조4000억원에 인수한 ‘메디트’···치과 3D 스캐너 명성
금리 인상으로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2022년 인수합병(M&A) 시장에도 혹한기가 찾아왔다. PI첨단소재·IFC·버거킹 등 투자업계 관심을 끌었던 빅딜도 줄줄이 무산됐다. 하지만 진짜 경쟁력 있는 기업은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빛나는 법. 새로운 주인을 찾는 데 성공함으로써 진가를 드러낸 곳도 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메디트다.
메디트는 M&A 시장에 매물로 올라옴과 동시에 대어로 꼽혔다. 수많은 인수 후보가 나타났고, 결국 동북아시아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품에 안았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MBK는 메디트 지분 99.5%를 약 2조4000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메디트는 2019년에도 주인이 바뀐 적 있다. PEF 운용사 유니슨캐피탈이 메디트를 인수할 당시 기업가치는 6400억원. 기업가치가 3년 만에 4배 가까이 뛰었다. 투자 시장 혹한기라는 말이 무색하다. 자연스레 메디트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치과용 3D 스캐너 시장점유율 25%
메디트는 장민호 고려대 기계공학부 교수가 설립했다. 창업자 장 교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컴퓨터지원설계(CAD) 분야 석·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입사했다. 장 교수가 관심 가진 분야는 3D 프린터와 3D 스캐너. 이를 산업 디자인에 활용할 방안을 고민했다.
장 교수는 2000년 메디트의 모태인 ‘솔루션닉스’를 창업했다. 자본금 1억원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산업용 3D 스캐너를 만들어 팔았다. 솔루션닉스는 국내외 회사에 3D 스캐너를 팔며 성장했다. 이후 운영 8년째에 접어든 2008년. 장 교수는 치과 시장에 주목했다. 3D 스캐너의 강점인 맞춤형 소량 생산과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한 것. 솔루션닉스는 2008년 메디트로 사명을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치과 시장 공략에 나선다.
과거 치과 보형물을 만드는 방법은 복잡했다. 환자는 보형물을 만들기 위해 고무찰흙 같은 인상재를 입으로 물어야 했다. 굳을 때까지 기다리면 치아 형태가 나왔다. 이를 치과기공소로 보내 치과 보형물을 제작했다. 제작 기간만 1주일이 걸렸다. 메디트는 이를 3D 스캐너 ‘메디트 i500’을 활용, 단순하게 대체했다. 환자 입에 스캐너를 대면 치아 형태와 주변 조직을 스캔, 3D 방식으로 치아 형태를 확인한다. 제작 기간은 하루가 채 안 걸린다.
소비자는 물론 의사 입장에서도 환영할 일이다. 메디트의 3D 스캐너를 찾는 치과가 하나둘 늘었다. 자연스레 실적도 개선됐다. 2018년 메디트는 별도 재무제표 기준 매출 328억원, 영업이익 103억원을 기록했다. 3년이 지난 2021년 실적은 어떨까. 매출은 1905억원으로 6배 가까이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040억원으로 1000억원대를 돌파했다. 소프트웨어 기술 기반 장비인 만큼, 이익률도 상당하다. 매출액에서 영업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영업이익률은 54.1%에 달한다.
메디트가 M&A 매물로 나왔을 때 다수 업체가 관심을 가진 건 현재 수익성 때문만은 아니다. 메디트가 공들이고 있는 치과용 3D 스캐너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시장 침투율은 10~20% 수준에 불과하다. 아직까지 3D 스캐너를 도입한 치과가 전체 10~20% 정도라는 의미다. 메디트 입장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잠재 고객이 남아 있는 상태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아이마크(IMARC)에 따르면 글로벌 치과용 3D 스캐너 시장 규모는 2021년 21억5000만달러(약 2조7300억원)에서 2027년 49억2000만달러(약 6조2675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메디트는 현재 글로벌 치과용 3D 스캐너 시장에서 25% 정도의 점유율을 확보한 선두권 업체다. 시장 상황과 메디트의 경쟁력을 고려하면, 앞으로 성장세를 더 기대해볼 여지도 충분하다.
메디트를 인수한 MBK파트너스도 미래 성장 가능성에 초점을 뒀다. MBK파트너스 측은 글로벌 치과용 3D 스캐너 시장이 메디트와 경쟁사 쓰리쉐이프(3Shape) 간 2강 체제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MBK파트너스 관계자는 “메디트를 구강 스캐너 1위 기업에서 의료진과 딜러십, 솔루션, 디바이스가 생태계를 이루는 디지털 덴탈 플랫폼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커지자 가격 경쟁 치열
잘나가는 메디트도 한 가지 걱정거리는 있다.
메디트가 치과용 3D 스캐너 시장을 개척해 시장 규모가 커지자 기존 헬스케어 업체들이 견제에 나섰다. 신규 제품을 내놓고 시장에 뛰어들거나, 일부 업체는 3D 스캐너 원천기술을 두고 메디트에 소송을 걸고 있다.
경쟁사들은 메디트의 최대 강점인 ‘가격 경쟁력’을 겨냥한다. 대표 경쟁사 쓰리쉐이프는 메디트 매각 과정 중 자사 3D 스캐너 트리오스 납품 가격을 기존 대비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메디트 제품 판매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중국 구강 스캐너 제조사 샤이닝쓰리디(SHINING 3D)는
2021년 9월 에이오랄스캔3(Aoralscan3)를 선보였다. 출시 당시부터 ‘가성비’를 목표로 했다. 현재 업계에서 가성비 ‘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시장에도 대행 수입 판매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이 같은 경쟁사 행보로 메디트의 최대 강점이었던 가격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다.
MBK파트너스보다 먼저 메디트 M&A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칼라일(PEF)과 GS컨소시엄이 이를 우려해 인수를 포기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앞서 칼라일-GS컨소시엄은 메디트를 3조원에 인수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최근 실적을 보고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 체결 직전 메디트가 2022년 10월 실적(매출 250억원)을 공개했는데, 예상치(300억원)보다 크게 낮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칼라일-GS컨소시엄은 이를 치열해진 경쟁 탓으로 판단하고 메디트의 성장성을 다시 검토했다는 후문이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칼라일-GS컨소시엄은 이 과정에서 메디트 매각을 주도하는 유니슨캐피탈 측에 관련 설명을 요청했다. 동시에 밸류에이션(기업가치)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납품처가 줄었거나 경쟁사들이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자 즉시 매출이 감소한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유니슨캐피탈은 즉각 반박했다. 예상치를 밑돌았지만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유니슨캐피탈이 소명에 나섰음에도 양 사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딜은 무산됐다.
다만 여전히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메디트 성장세가 꺾일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한다. 치과용 3D 스캐너 시장 진입장벽은 단순 의료기기 분야보다 높다. 의료기기 분야는 대체로 후발 주자의 추격이 어렵지 않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소프트웨어가 핵심인 3D 스캐너는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하고, 기술력을 갖추더라도 제품 출시 전 특허 과정에서 경쟁사의 견제를 받기 쉽다.
메디트도 수많은 소송을 이겨내며 사업 영역을 넓혀왔고 지금도 넓히고 있다. 메디트는 독일과 미국, 중국 등에 판매 채널 자회사를 설립하고 해외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경쟁사들이 줄줄이 소송을 걸었지만, 유럽 지역에서는 메디트가 모두 승소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2호 (2022.01.11~2023.01.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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