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3막 기업]시니어 정기배송 서비스 '내이루리'
소속 시니어 배달원 90% 정규직
"우리는 배달원 아닌 '프로'라고 불러"
[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내이루리' 사무실에는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등신대가 세워져 있다. 등신대에는 '내 친구들 여기서 다 일한대'라는 문구와 함께 백발이 성성한 한 시니어의 모습이 담겨 있다. 특히 등신대 속 시니어는 딱딱한 정장 차림이 아닌 갈색 남방에 옅은 베이지 톤의 바지를 입고 있는 등 캐주얼한 복장을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또 환한 미소를 지은 시니어의 표정에 내이루리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내일우리'라는 뜻을 가진 내이루리는 시니어 인력을 기반으로 하는 정기배송 서비스 '옹고잉'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이다. 고객이 주문하는 즉시 출발하는 실시간 배송과는 달리 정기배송은 신문이나 우유를 정기적으로 배달하듯 물건을 주기적으로 배송하는 서비스를 뜻한다. 옹고잉은 현재 60세 이상의 시니어 배송원을 고객사 별로 전담 배치하고 있다.
정현강 대표(28)는 시니어 일자리 문제는 심각해지는 반면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곳은 극소수인 것을 보고,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자 결심했다. 이에 그는 2021년 11월 내이루리를 설립해 시니어들을 직접 고용하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심각한 사회문제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고, 그중 하나가 시니어 일자리 문제였다"며 "정부가 시니어 일자리를 위해 세금을 투입하고 있으나, 보통 단기 일자리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앞서 그는 옹고잉을 선보이기 전 실시간 근거리 도보 배달 대행 서비스인 '할배달'을 먼저 런칭했다. 2020년 선보인 할배달은 60세 이상 시니어가 상품을 배달한다는 점에선 지금의 옹고잉과 다를 바 없으나, 일정치 않은 물량으로 인해 시니어들의 불만이 높았다.
정 대표는 "1년 반 동안 할배달을 운영했는데, 결론적으로 잘되지 않았다"며 "시니어 배달원의 이탈률은 높은 반면 유입률은 계속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니어 세대는 정해진 시간대에 일정한 물량을 배달하고 싶어하는데, 물량이 매번 일정치 않다 보니 시니어 배달원의 만족도는 점점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시니어가 일을 그만두는 일이 잦아지자, 일자리 기관에서도 할배달 일자리를 추천해주지 않았다.
또 정 대표는 의외의 부분에서 어려움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는 "시니어 배달원들 대부분이 몇십년간 같은 동네에서 거주하신 분들이라 길 찾기에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그래서 일정한 루트로 배달할 수 있는 시장은 없을까 고민하던 중 정기배송 시장을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정기 배송 특성상 정해진 루트로만 배달해주면 되기에 업무의 난이도가 낮아 시니어도 쉽게 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할배달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본격적으로 정기배송 시장에 발을 들이게 됐다. 그는 "할배달이 실패한 후 주변에서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도 들었다"며 "그러나 정기배송 시장에 발을 들인 후 배송이 지연된 적도 없고, 고객사의 만족도도 높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옹고잉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됐다.
옹고잉에 소속된 시니어 배달원의 90%는 정규직이다. 정 대표는 "우리는 제시간에 도착하는 정시배송을 중시하기에 고객이 요청한 시간에 맞춰 배달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시니어를 정규직 형태로 고용한 이후 배송원들이 더욱 책임감을 갖기 시작했고, 안정적 배송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옹고잉은 물품 진열, 용기 수거 등 고객사의 니즈에 맞춘 맞춤형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 대표는 "단순 배송 외에 추가적인 서비스가 필요할 때 고객사 요구를 반영한 커스터마이징 배송을 해주고 있다"며 "이는 우리의 강점 중 하나"라고 했다.
그는 시니어를 위한 최적화된 일자리 환경이 마련되길 소망했다. 정 대표는 "오랫동안 시니어 일자리가 왜 부족한지에 대해 고민한 결과, '시니어들의 떨어지는 노동경쟁력'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다"며 "시니어가 노동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적절한 시장과 이들의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 등이 있다면 시니어 일자리는 더욱 창출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시니어에 특화된 교육 커리큘럼 및 운영 시스템 또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 옹고잉에는 어떤 뜻이 담겨있나.
▲ '옹'은 과거 어르신들을 존칭하는 단어로 많이 쓰였다. '고잉'은 'going'으로 '지속하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원래 '할배달'로 출발했지만, 이름 때문에 저희 부모님께도 선뜻 소개해드리기 망설여지더라. 그러다 사업 방향을 정기배송으로 바꾸면서 '부모님께도 권할 수 있는 일자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름을 바꾸자고 생각했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네이밍 공모전을 했다. 1200여개의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그중 저희가 후보군을 추려서 시니어 근로자분들께 투표를 맡겼고, 지금의 옹고잉이 탄생했다.
- 시니어 관련 기업을 창업한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대가 많았을 것 같다.
▲ 대부분 사업이 잘되지 않을 거라고 했고, 제가 왜 이 사업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진 분들도 많았다. 특히 할배달 서비스를 1년 반 정도 하고 실패했을 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실패했네' 하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저는 이 서비스를 하면서 시장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분명 시니어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시니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나 움직임이 많이 보였으면 오히려 깨끗이 포기했을 텐데, 그런 모습들이 보이지 않아 더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시니어 배달원을 '프로'라고 지칭한다.
▲ 시니어 세대가 일하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다. 첫째는 생계를 위해서고, 둘째는 시간을 소비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생산적인 방법이 '일'이기 때문이다. 후자에 해당하는 분들은 본인의 '워라밸(일과 여가의 균형)'과 존중받을 수 있는지를 중시한다. 또 우리 기업의 설립 미션 자체가 '시니어 일자리 문제와 빈곤 문제 등을 해결한다'는 것이기에 존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 시니어 세대가 배달일을 하면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을까.
▲ 보통 배달원이라고 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하며, 월에 최소 300만원 정도의 수익을 얻는 분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시니어 세대는 본인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을 원하거나, 돈이 아니더라도 일하는 것에 만족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일하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또 본인의 체력 등을 고려해 일을 몇시간 정도 할 것인지 고를 수 있다. 최소 3시간부터 일할 수 있는데 3시간 정도 일하면서 차량을 이용해 배달하면 사실 체력에 큰 무리는 없다.
- 시니어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 시니어 일자리 문제는 통계적으로도 심각하지만, 현장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자영업 비율이 높은데 전 세계적으로 자영업 비율이 높은 나라의 특징이 노후나 연금 준비가 안 된 나라들이다. 확실한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시니어 세대가 힘겹게 살고 있다는 거다. 시니어 세대에게는 3시간짜리 일자리가 이분들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저희 시니어 배달원분들 중 공휴일에도 일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계신다.
일자리 문제를 처음에는 정부에서 많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정부에서 도와줘야 하는 분들은 시니어 세대 중에서도 장애가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다. 신체가 건강하고 일할 능력이 있는 분들을 도와주는 건 민간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 같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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