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가장 징글징글한 시작과 끝

이지애 2023. 1. 1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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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류현재 소설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이지애 기자]

지인과 오랜만에 차를 마셨다. 지인은 내내 연로하신 부모님 이야기를 쏟아냈다. 거동이 불편하신 80대 중반 부모님의 끼니를 챙기기 위해 수년 째 매일같이 친정에 들르는 그였다. 먹거리는 물론 병원이나 필요한 외출에 동행하고 손 가는 집안일을 마친 후 귀가를 한다. 나로서는 어림없는 일이라 존경의 마음을 표하곤 하는데, 늘 씩 웃고 말던 그가 그날은 작정했는지 쌓였던 울화를 폭발시켜 놀랐다.

내 부모를 보살피는 일이 그렇게 고통스럽고 인내해야 하는 일인지 잠시나마 엿보며 마음이 심란했다. 늙고 병든 부모를 돌보는 일에 어느 자녀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가정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대처하겠으나 절대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자식들끼리 부양의 책임을 미루다 서로 할퀴고 상처 주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오랜 병구완 끝에 가족이 파탄 났다는 사례도 종종 본다.

그런 소식을 접하면 자연스레 나와 내 부모의 미래도 걱정이 된다. 혹여 부모가 거동을 못하거나 치매가 온다면 나는 어떤 대책이 있나? 나와 내 형제들은 잘 협조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늙고 병든 부모가 자녀들과 마지막까지 다정하게 지낼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한 사람의 결심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에 더욱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혹시 그런 상황을 미리 눈앞에 펼쳐보며 예행연습 할 수 있다면 좀 더 나은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대책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도움은 되려나 싶어 손에 든 책이 있다. 2022년 출판된 류현재의 장편소설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이다. 제목만으로 벌써 독자를 압도한다. 상처 주고 할퀴고 곪아터지는 가족의 민낯을 얼마나 낱낱이 보여주려나 싶어 긴장되기 때문이다.
 
 류현재(지은이),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겉표지
ⓒ 자음과모음
 
첫 장면부터가 충격이다. 칼에 찔려 피 흘리는 아버지와 찹쌀떡이 목에 걸려 파랗게 죽어가는 어머니라니! 아무리 제목으로 암시했어도 예상보다 끔찍한 시작에 정신이 바짝 든다. 소설은 이 노부모가 이런 죽음을 맞게 된 연유를 미스터리 소설처럼 네 자식이 한 명씩, 마지막에 아버지 김영춘과 어머니 이정숙까지 각자의 목소리로 속사정을 풀어나간다. 

한 명씩 읽을 때마다 마음이 심란해져 한참을 다독여야 한다. 셋째 딸이 먼저 눈에 띈다. 뇌경색이 와 홀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된 어머니의 퇴원을 앞두고 자식들은 요양병원에 모시자고 했지만 아버지가 거세게 반대한다. 병들자마자 제 부모를 버리는 못된 자식들이라며. 그런 부모가 가여워 병구완을 자청한 셋째 딸은 처음에는 좋은 마음이었으나 점점 지쳐간다. 

시간이 갈수록 부모는 예전에 자신이 알던 똑똑하고 신식이던 부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욕지거리를 입에 달고 불평불만만 쏟는 엄마와 노인에 대한 피해의식과 자기 하고 싶은 말만 남발하는 앞 뒤 꽉 막힌 추한 아빠에게 넌더리가 났다. 자주 들러 도와준다 말만 한 형제들이 원망스럽고 갈등의 골이 깊어갔다. 아버지 생신이라 모처럼 친정에 들른 언니에게 셋째 딸은 이렇게 외친다. 
 
"살아 계실 때 효도해라.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죄다 효도라고는 눈곱만큼도 안 해본 사람들이야. 해봤으면 그게 얼마나 징글징글한 건지, 기약 없는 지옥인지 아니까 그런 말 못 하지. 그래서 세상에는 효도하는 사람들보다 후회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거야. 그게 효도보다 훨씬 더 쉽고 짧으니까. 나도 빨리 좀 그래봤으면 좋겠다. 눈물 질질 흘리면서 돌아가시기 전에 효도할걸, 그렇게 후회하는 날이 제발 하루라도 빨리..."(50쪽)

이렇게 네 자식과 부모의 속사정을 모두 읽고 나면 신기하게도 이 가족들 중 누구도 악인이 아님을 알게 된다. 자식들은 나름대로 자신에게 닥친 시대를 헤쳐나가느라 고군분투하면서도 부모를 챙기려 애를 썼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 걱정을 하며 심지어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애를 태운다. 누구 한 명 딱히 잘못한 사람이 없는데도 이 부부는 참혹한 말로를 맞으니 참 기막힌 일이다.

이 가족이 비극으로 치달은 이유 중 하나는 가족들이 서로의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우선 부모는 갈수록 말을 듣지 않는 신체증상과 잃어가는 기억력을 자식들에게 숨기기 급급하면서도 여전히 부모의 권위로 자식들을 몰아세웠다. 간병하던 셋째 딸은 알코올 중독이 될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졌지만 다른 형제들에게 속시원히 자신의 사정을 말하지 못했다.

큰 딸은 자식과 남편 때문에 삶이 위태로워졌음을 알리지 않았으며, 큰 아들 또한 이혼 위기에 처한 자신의 상황을 공유하지 않았다. 막내 아들은 택배상하차를 하며 자신의 삶을 헤쳐 나가기 급급했다. 이들 모두의 가슴엔 어린 시절 함께 부모 곁에서 아웅다웅하며 행복하게 지냈던 향수를 깊이 간직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오랜 시간 모든 상황을 목도한 집의 이야기를 전한다. 자식들이 부모 사후 함께 본 어린 시절 비디오 영상에 노부모가 젊은 시절 자식 넷을 품으며 아름다웠던 광경이 흐르자, 부모를 죽인 것이 결국엔 부모와 멀어져 간 자신들이었음을 깨닫는다. 이 부분에서 의인화된 집을 빌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빈집은 다르게 생각했다. 그들을 죽인 그놈은 '가족'이었고 노부부는 희생자이자 가해자이기도 했다. 빈집은 그들의 생각이 맞는지, 자기 생각이 맞는지 확실히 판단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집의 주인들이 늙은 고아로 이 세상을 떠난 것처럼, 이 집의 자식들도 이제 고아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214쪽)

아마 자식들의 말도, 집의 말도 일리가 있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 부모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는 자식과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가족의 비극이 잉태될 수밖에 없음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게다가 부모의 안타까운 마지막을 목격하고 깨닫는 바가 있으면서도 자식 역시 같은 궤적을 따를 수밖에 없는 삶이라니...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도대체 가족이 뭔지, 바람직한 부모-자식 관계는 어때야 하는지 더 골몰하게 된다. 다행인 점은 심리적 여유가 좀 생긴 것 같다. 소설 속의 형제들과 부모의 입장에 서 보며 그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헤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바람과 다르다고, 내 사정을 몰라준다고 다른 가족을 원망만 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부모가 늙고 병들어도 자녀와 잘 지낼 수 있을지 주변에 물었다. 기억에 남는 답이 있다. 후일을 장담할 순 없지만 '지금 좋으면 나중도 좋을 수 있다'는 것. 지금 사이가 좋아 자꾸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이 든다면 나중에도 잘 지낼 가능성이 높을 테니 옳은 말이다. 나중 걱정 말고 지금에 충실할 일이다. 

늙어갈수록 인간 대 인간으로 자식들과 교류할 수 있으면 좋겠다. 부모의 권위를 내려놓고, 자식에 대한 걱정도 내려놓고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각자가 힘 쏟는 일에 대하여 언제든 나눌 화제가 풍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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