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 다보스포럼에 올릴 만한가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김종성 2023. 1. 1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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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1999년 '페리 프로세스'와의 유사점

[김종성 기자]

 권영세 통일부장관이 지난 2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신년사하고 있다.
ⓒ 통일부 제공
 
통일부가 윤석열 정부의 북한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을 다보스포럼에 선보인다고 한다. 권영세 통일부장관이 오는 17일부터 열릴 스위스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에서 '담대한 구상'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당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보도들이 11일 나왔다.

그런데 지난해 8.15 경축사 때 윤석열 대통령이 공개한 '담대한 구상'이 다보스포럼에 올릴 만한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종전의 대북정책들과 차별성을 갖는 것인지, 한반도 평화든 북한 비핵화든 결과를 낳을 만한 것인지 등을 따져볼 만한 이유들이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해 8월 19일 담화에서 "담대한 구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10여 년 전 리명박 역도가 내들었다가 세인의 주목은커녕 동족 대결의 산물로 버림받은 '비핵, 개방, 3000'의 복사판에 불과하다"라며 "력사의 오물통에 처박힌 대북정책을 옮겨 베껴놓은 것"이라고 평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 25일 취임사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한다면 남북 협력에 새 지평이 열릴 것"이라며 "국제사회와 협력해 10년 안에 북한 주민 소득이 3000달러에 이르도록 돕겠다"라며 핵 포기 및 개방의 대가로 '3000달러 소득 보장'을 제시했었다.

한국의 대북정책이 미국과의 조율에 의해 나오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3000달러 소득'이라는 인상적인 표현만 제외하면 대북정책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보기 힘든 것이었다. 이는 미국의 기존 대북정책을 변모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담대한 구상'을 '비핵, 개방, 3000'과 비교하는 것뿐 아니라 그 이전 것과 비교하는 것도 가능함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김여정 부부장이 그 이전 것을 언급하지 않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것까지 언급하면 자신의 아버지를 본의 아니게 깎아내릴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담대한 구상'과 유사한 미국 '페리 프로세스'
 
 '페리 프로세스'를 입안한 윌리엄 페리 클린턴 행정부 대북조정관.
ⓒ wiki commons
 
통일부가 발간한 '담대한 구상' 설명집인 <비핵 평화 번영의 한반도>는 제1단계에서 포괄적 합의를 통해 전체적인 로드맵을 도출하는 비전을 제시한다. 비핵화란 무엇이며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각 단계별로 어떻게 비핵화를 이행하며 이에 대해 어떤 상응 조치를 취할지를 제1단게에서 합의한다. 그런 뒤 제2단계에서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를 하도록 하고, 제3단계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얻을 게 많다는 게 '담대한 구상'의 내용이다. 제1단계에서는 자원-식량 교환프로그램, 북한 민생개선 사업, 제2단계에서는 북미관계 정상화 지원, 평화체제 구축 논의, 발전·송배전 인프라 지원, 병원 및 의료 인프라 현대화 등이 예정돼 있다. 제3단계에서는 북미 수교 및 한반도 평화 정착과 전면적 대북 투자·교역 확대 등이 예고돼 있다.

담대한 구상은 그 속에 담긴 '풍요한' 물질적 지원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3000달러 소득 보장'을 연상시키기 쉽다. 하지만 물질적 지원이 담대한 구상의 본질은 당연히 아니다. 한미 양국의 궁극적 목적이 북한 비핵화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담대한 구상과 유사한 것을 찾으려면, 이 구상과 비슷한 방식으로 비핵화를 관철시키고자 했던 구상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이런 필요에 부응하는 것으로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의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를 들 수 있다. 민주당 정권인 빌 클린턴 행정부 때인 1999년 9월 15일 미 의회 보고로 공개된 페리 프로세스는 3단계의 배치 방식은 담대한 구상과 다르지만 실질적으로는 많은 부분이 유사하다.

윌리엄 페리는 제1차 북핵위기 발생 2개월 전인 1993년 1월 국방부 부장관이 되고, 위기가 한창일 때인 이듬해 2월 국방부장관이 됐다.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합의로 북핵위기가 봉합된 뒤인 1998년 11월 12일에 그가 국무부 대북정책조정관이 된 것은 그해 8월의 위기와 관련이 있다.

그해 8월 17일에는 <뉴욕타임스>가 영변 핵시설 북서쪽인 평안북도 대관군 금창리에 지하 핵시설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뒤이은 8월 31일에는 북한이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서 발사한 대포동 1호 미사일이 일본열도를 넘어 태평양에 떨어졌다.

위기가 고조되는 이 상황에서 조정관이 된 페리는 남북한 방문 및 협상 등을 토대로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2인자 역할을 한 인물이 지금의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이다. 1999년 9월 16일자 <조선일보>는 이 페리 보고서를 다루면서 "페리의 2인자로 활약해온 웬디 셔먼 대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페리 프로세스의 '의도'
 
▲ 썰매 타는 북한 어린이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생일인 지난 8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해북도 개풍군의 한 마을에서 어린이들이 썰매를 타고 있다.
ⓒ 연합뉴스
 
페리 보고서에 담긴 프로세스는 담대한 구상처럼 단계적인 비핵화를 제안했다. 북한이 제1단계에서 미사일 발사를 중지하도록 하고 제2단계에서 핵 개발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파격적인 지원도 담았다.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기 전인 제1단계에서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제3단계에서는 북미관계 정상화를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1999년 10월 12일 상원 외교위원회 페리 청문회에서는 '미국이 주는 게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담대한 구상은 제1단계에서 포괄적 합의를 통해 로드맵을 안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을 연상시키는 측면 역시 페리 프로세스에 있었다. 프로세스 초기에 북한과의 포괄적 협상을 통해 밑그림을 만들어둔다는 것이었다.

페리 청문회 때도 언급됐듯이 페리 프로세스는 핵·미사일과 대북제재 해제나 북미관계 정상화 등등에 관한 포괄적 협상을 지향했다. 이에 따라 당시의 북미 양국은 초기 단계에서 포괄적 합의를 추구했다.

이에 관한 양국의 양해가 페리 조정관이 보고서를 발표하기 전에 이뤄졌다. 1999년 5월 17일자 <경향신문> 톱기사 제목인 '북, 포괄협상 수용 시사'에서도 이 점이 나타난다. 포괄적 협상으로 포괄적 합의를 지향하고 이를 통해 밑그림을 그려나가면서 협상과 이행을 밟아 나가다는 것이 페리 프로세스였다.

페리 프로세스는 대북제재 해제나 북미수교 같은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으면서 북한을 단계적인 비핵화로 끌어들이는 비전을 제시했지만, 이 프로세스의 실제 의도는 북한을 현 상태로 묶어두는 것이었다. 북한을 포괄적 협상이라는 틀 속에 묶어놓고 추가 도발을 막는 게 실제 의도였다.

의회에 보고서를 제출하고 이틀 뒤인 1999년 9월 17일의 기자회견에서 페리는 자신이 내린 북미관계의 결론을 소개했다. 그달 19일자 <조선일보> 4면에 따르면 그는 "다음 결론은 미국이 압력을 가한다고 해서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라며 "우리는 북한을 우리의 희망 상태가 아니라 현재의 상태대로 다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페리 보고서의 숨은 의도를 노출하는 발언을 했던 것이다.

북한을 현 상태로 묶어놓고 추가 도발을 막고자 페리 프로세스를 만들었다는 점은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의 기조 위에서 '적극적 협상도 적극적 압박도 하지 않는' 대북정책을 펼친 사실을 연상케 한다. 또 지금의 바이든 행정부 역시 오바마 때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점을 떠올리게 만든다. 동일한 민주당 정권인 클린턴 행정부 말기의 기조가 오바마 행정부를 거쳐 바이든 행정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페리 프로세스는 북한을 현 상태로 묶어두는 것을 의도했기 때문에, 북미관계를 크게 바꿔놓기 힘들었다. 그래서 큰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것이었다. 페리 프로세스가 발표된 지 3년 만인 2002년에 제2차 북핵위기가 터진 것은 조지 부시 행정부의 등장이라는 요인도 작용했지만, 페리 프로세스의 실패에도 기인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실질 성과 어려운 구상을 다보스포럼에?

김정일 정권 역시 페리 프로세스의 영향을 받았다. 김대중 정권과 김정일 정권이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을 도출한 배경을 페리 프로세스와 단절시키기는 어렵다. 김정일 정권 역시 이 프로세스에 휘말린 측면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김여정 부부장이 담대한 구상을 이명박 정권과만 연관시키고 그 이전과 연관시키지 않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을 현 상태로 묶어두는 전략을 가진 바이든 행정부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북미관계를 크게 변화시키는 담대한 구상을 발표했다. 이는 담대한 구상의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음을 시사한다.

수십 년 전의 페리 프로세스와 닮은 데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민주당 정권처럼 현상 유지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 아래서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통일부가 이런 구상을 다보스 포럼에서 발표하는 것은, 새로울 것도 없고 실효성도 없어 보이는 구상을 전 세계에 내놓는 셈이 된다.
 
 오는 16일부터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을 앞두고 한 호텔 옥상에 보안요원이 서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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