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낙관의 기운으로 가득했던 '디자인 마이애미' 다시 보기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와 ‘디자인 마이애미’가 열리는 ‘마이애미 아트 위크’. 하루에 2만 보를 걷고 하루에 우버를 네다섯 번씩 호출하며 달렸음에도 아트 위크 기간에 벌어진 디자인 & 아트 신을 모두 경험할 수 없었다. 누군가 다시 마이애미에 갈 거냐고 묻는다면, 그렇기 때문에 가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화려한 페어가 열리는 마이애미 비치에서 누구나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윈우드 길거리, 럭셔리한 디자인 디스트릭트에 이르기까지. 마이애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아트 & 디자인, 거리의 생생한 예술이 살아 숨 쉬는 도시니까.
뉴욕 기반의 크리스티나 그라할레스 갤러리(Cristina Grajales Gallery)는 마크 그라탕이 디자인한 푸르스름한 파스텔 핑크에 빛나는 메탈과 벨벳 재질을 바탕으로 한 침대와 소파를 선보이며 곡선의 미학을 색다르게 보여줬다. 암스테르담 기반의 레이드메이커스 갤러리(Rademakers Gallery)는 흘러내리는 미러볼 같은 비정형 오브제 쿠엘레 페테 클라시크(Quelle Fe^te Classique)로 부스를 채웠다. 수공예로 완성된 곡선미 넘치는 물체는 찰스 앤 레이 임스의 3만5000 달러(약 4600만 원) 흔들의자에 앉아 자유로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균일하지 않은 빛 조각을 사방에 퍼트리는 이 오브제는 어떤 공간이든 찬란하고 화사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큐리오 섹션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 곳은 코발트, 세룰리언 블루가 향연을 이룬 툴레스테 팩토리(Tuleste Factory)였다. 아크릴과 레진, 울, 실크 등 다채로운 소재로 완성된 블루 오브제가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진 공간에선 아방가르드한 원형과 곡선, 블루 특유의 철학적인 분위기가 모두 읽혔다. 툴레스테 팩토리는 올해 디자인 마이애미의 베스트 큐리오상을 받았다.
건축가이자 아티스트인 에르브 벨리가 1963년에 만들었다는 의자는 소나무와 삼베, 면과 폴리에스테르, 가죽으로 이뤄졌는데 의자가 품은 세월만큼 실크처럼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졌다. 목재와 천연 재료에 중점을 두는 동시대 최고의 수공예 작품을 선보이는 사라 메이어스코프 갤러리(Sarah Myerscough Gallery)는 아프리카 산의 천세란(千歲蘭) 식물 섬유로 제작된, 높이 2m가 넘는 앤젤라 댐먼(Angela Damman) 작가의 조명으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며 자연이 선사하는 경이로운 색채와 텍스처에 경외감을 표현했다.
플라타너스 베니어 판과 수지로 완성된 아티스트 마크 피시(Marc Fish)의 여린 더블 콘솔은 나무로 수려한 곡선과 여백을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탄하게 했다. 튤립나무로 만든 크리스토퍼 커츠(Christopher Kurtz) 작가의 캐비닛 역시 마찬가지. 커츠의 캐비닛을 바라보던 내게 사라 메이어스코프는 말했다.
하나의 오브제에 몇천만 원, 많게는 억 단위가 넘는 금액을 지불하는 행위는 단지 투자뿐 아니라 작가의 고유한 삶의 방식 그리고 철학과 연결되는 일임을 짚은 것이다. 미국 브랜드 콜러는 이곳에서 아티스트 나다 뎁스(Nada Debs)와 협업한 프로젝트 ‘초월’을 발표했다. 튀르키예 스타일의 목욕탕에서 영감받은 수작업 맞춤 타일은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는 방식으로 생산된 것. 부스 안에 설치된 부드러운 에메랄드 컬러가 눈길을 사로잡는 세 개의 아치형 공간에 들어서자, 역동적인 페어장의 분주함이 단숨에 소거되고 고요함만이 느껴졌다. 아티스트 나다 뎁스는 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세계적 디자이너, 아티스트 그리고 디렉터와의 생생한 교감! 디자인 마이애미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펜디는 비엔나 기반의 아티스트 루카스 그슈반트너(Lukas Gschwandtner)와 협업했다. 거의 누워 있는 자세로 앉는 긴 의자, 고대 로마시대부터 여성들의 초상화 그림에 등장해 온 의자를 통해 인간의 정신과 육체적 공간의 대화를 보여주는 듯했다.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가 2022년 9월 여름 2023 쇼에서 건축가이자 아티스트인 가에타노 페세(Gaetano Pesce)와 협업해 만든 의자들 ‘꼬메 스타이(Come Stai?; 잘 지내?)’도 다시 한 번 등장했다. 페어 기간 중 열린 디자인 마이애미의 큐레이터 디렉터 마리아 크리스티나 디데로(Maria Cristina Didero)와 가에타노 페세의 대담 프로그램에서 페세는 여러 문제를 안고 사는 지금 시대에 긍정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우리는 결코 똑같지 않으며, 모두 개별적인 다양성을 지닌 ‘오리지널’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더 많은 의자가 마이애미 시내의 디자인 디스트릭트에 진열돼 있다는 소식을 듣고, 콜린스 공원에 자리한 우고 론디노네의 생명력 넘치는 형광색 바위 설치미술 작품을 지나 디자인 디스트릭트로 향했다. 마이애미의 ‘럭셔리’를 담당하는 이 지역을 걸으며 아티스트 프레이 오토(Frei Otto)의 ‘뮤직 파빌리온’, 폴라 크라운(Paula Crown)의 구겨진 대형 1회용 빨간색 플라스틱컵 ‘조케스터 2(Jokester 2)’ 등 무심하게 놓인 설치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디자인 디스트릭트의 가로수에 매달려 방문자들을 환대하는 에메랄드 · 레드 · 그린 · 옐로 등 다양한 컬러의 동그라미들은 2022 마이애미 디자인 디스트릭트의 연례 커미션 수상자인 제르만 반스(Germane Barnes)가 마이애미에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캐리비언 음악인 ‘소카 뮤직’에 대한 경의로 만든 작품 ‘록/롤(Rock/Roll)’이다.
1990년대 중반 글로벌 산업의 성장으로 윈우드에 자리한 로컬 의류 제조업체들이 몰락하면서 버린 공장들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스케치북이 됐다. 그래피티 뮤지엄의 공동 설립자인 엘리슨 프라이딘은 말했다.
현재는 래퍼로 활동하는 더스틴 하울 III가 이 지역에서 그래피티 작업을 시작하자 더욱 많은 이가 건물에 그림을 그렸다. 1990년대 루벨 패밀리 컬렉션이 공공교육의 일환으로 아트 갤러리를 윈우드 지역에 오픈한 이후 2002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가 시작되고 디자인 디스트릭트 역시 개발됐다. 하지만 윈우드 전 지역 건물이 그래피티로 뒤덮여 있었던 2013년 말까지 공립학교는 예산이 부족해 아트 수업을 할 수 없었다고. 공립학교에 아트 수업 하나 없는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누구나 무료 관람이 가능한 거리 예술로 시작된 마이애미의 아트 신이 수십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전 세계 사람을 초대하게 된 이야기가 경이롭게 다가왔다.
마이애미 비치의 남쪽 해변가에 자리한 독립 아트 페어 ‘디 언타이틀드’. 지인들은 올해 디 언타이틀드에 새로움이 가득하다며 꼭 가보기를 권했다. 140개 이상의 갤러리가 참여한 디 언타이틀드의 VIP 세션 첫째 날에 어느 갤러리가 작품을 거의 다 팔았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마이애미 해변 모래를 밟고 걸어 들어가는 디 언타이틀드의 화이트 텐트 안에는 알렉스 카츠를 연상시키는 작가 아폴로니아 소콜(Apolonia Sokol), 산뜻한 해변 바람처럼 경쾌한 색감의 율리아 이오질존(Yulia Iosilzon) 같은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재활용 캔버스에 포근한 파스텔컬러의 미학을 그려낸 뉴욕 기반의 아티스트 데이나 제임스(Dana James)도 단독 전시로 참여했다. 데이나 제임스는 마이애미의 예술 신이 예술가와 갤러리들에게 좋은 기회임을 언급했다.
160여 개 갤러리가 참여하는 아트 마이애미의 화이트 텐트에도 들렀다. 올해 뱅크시의 작품이 등장해 화제가 된 이곳에서 황금 아보카도로 유명한 팀 벤겔(Tim Bengel), 미리암 블라밍(Miriam Vlaming), 레나타 튜마로바(Renata Tumarova), 레온 뢰벤트라우트(Leon Lo..wentraut) 같은 독일 컨템퍼러리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선보인 갤러리 로터(Galerie Rother)의 활기가 굉장했다. 콜로라도 기반의 텍스타일 추상화 아티스트 엠마 볼더는 마이애미 아트 위크 기간 특유의 흥겨운 기운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엠마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