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닥 먹으면 오만상 찌푸리는 국수

박현옥 2023. 1. 1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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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을 잃어 뭐 먹고 싶은 거 없나 생각하던 중에 국수가 떠올랐다.

간단하게 준비한 국수를 나름 맛을 음미하면서 먹자니 가난과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배고픈 기억이 난다.

달기만 한 국수를 말이다.

그냥 물에 말아서 먹으면 그 고소한 메밀의 향을 음미하면서 먹을 수 있는데 얼큰하게 양념을 하고 참기름 듬뿍 넣어 먹는 메밀국수에선 양념 맛 밖에 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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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시절 먹었던 음식... 재료 본연의 맛처럼 나만의 향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박현옥 기자]

입맛을 잃어 뭐 먹고 싶은 거 없나 생각하던 중에 국수가 떠올랐다. 국수라 하면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국물을 만들고, 당근과 호박을 채 썰어 볶아야 하며, 부추를 데쳐 따로 양념에 버무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지만 나만의 국수는 아주 간단하여 생각만으로 준비는 끝이다. 쫄깃쫄깃하게 면만 잘 삶으면 되니 따로 준비가 필요 없다. 잘 삶아낸 국수에 시원한 물을 붓고 설탕을 적당히 넣으면 나만의 만찬 준비는 끝난다. 간단하게 준비한 국수를 나름 맛을 음미하면서 먹자니 가난과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배고픈 기억이 난다.

일찍이 홀로 생계를 꾸려나가신 어머님은 장사를 하시느라 집을 늘 비우셨고, 어린 내가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를 도맡아 했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였을 것이다. 쌀독이 텅 빈 날이 많아 고구마나 멀건 김치죽으로 끼니를 때웠고 싸라기 죽으로도 감사했던 시절이 있었다. 달걀부침이 고급반찬이고 멸치는 아주 최고급 반찬이었던 때였다.

배고픔과 추위에 떨면서 먹었던 음식 중에 설탕물에 말아 먹었던 국수도 있었는데 그것이 지금은 나만의 별미가 되었다. 갖춰진 양념을 넣은 국수는 먹어보지도 못했다. 양푼에 쓱쓱 비며 먹는 국수나 물에 말아서 사카린이라는 단맛약을 넣어 먹었던 게 전부다. 지금이야 설탕을 넣지만 말이다.

어르신들께서는 배고픈 시절에 먹었던 그 지긋지긋하던 음식이 살 만한 세상이 된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고 한다. 나에게도 그런 음식이 있다. 가끔 설탕물에 만 국수를 먹으면서 그 시절을 생각하니 말이다. 지인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웃는다.

"그게 무슨 맛이야?"라며 살며시 국수 가닥을 건져 먹으면서 오만상을 다 쓴다. 이해할 수 없다. 무슨 맛으로 이런 걸 먹냐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이다. 말로만 듣고도 별종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는데 맛을 본 분들은 오죽할까. 달기만 한 국수를 말이다. 달지만 국수 본연의 깊은 맛은 더 있는데 그분들은 그걸 모르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 순수한 향기에 취한 나비  누가 이끌어 오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함께 나누는 향에 취하다
ⓒ 박현옥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라는 말이 있다. 허나 인공을 가하지 아니한 본디 생긴 그대로의 타고난 상태로 맛을 느낄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것이 아닐까. 국수에 여러 가지 양념을 곁들여 먹으면 양념에 의해 본연의 그 맛은 느낄 수 없다.

특히 메밀국수는 더더욱 그렇다. 그냥 물에 말아서 먹으면 그 고소한 메밀의 향을 음미하면서 먹을 수 있는데 얼큰하게 양념을 하고 참기름 듬뿍 넣어 먹는 메밀국수에선 양념 맛 밖에 안 남는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메밀국수도 그냥 먹는다.

살면서 본연의 향기를 잃어가는 것이 어디 음식뿐이랴. 순수한 인간미도 잃어가고 천연의 색도 잃어가고 있는 것을. 덧칠에 덧입혀진 삶의 무게로 향기와 순수한 미를 잃어가면서 몸부림쳐대는 현실인 것을.

본연의 향과 색을 살리면서 꾸며지는 것들은 나름 아름답고 멋이 있다. 모든 것이 적당히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 선이 지켜지지 않음으로써 잃어가는 것들이 수없이 많다. 그저 화려해서 보기 좋고 폼나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다는 이유 하나로 말이다.

나만의 색과 향기를 갖고 싶다. 누구나 갖고 있지만 오래도록 본연의 은은한 향기를 지닐 수 있는 순수함으로 살아가고 싶다. 여자는 때론 화려하고 진한 향기가 있어야 한다지만 어울리지 않게 삐걱거리는 화려함에서 풍기는 향기보다는, 그저 그 사람 하면 느껴지는 색과 향기를 지니고 싶은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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