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진 줄부상' 삼성생명, 잇몸으로 버텨낼까
[양형석 기자]
지난 8일 2019년 이후 3년 만에 개최된 여자프로농구 올스타전이 팬들의 많은 환호를 받으며 열렸다. 경기는 핑크스타가 블루스타를 98-92로 꺾었고 블루스타에서 20득점7리바운드를 기록한 후 핑크스타로 유니폼을 바꿔 입은 진안(BNK 썸)이 13득점13리바운드를 더하며 생애 첫 올스타 MVP에 선정됐다. 양 팀을 오가며 42득점을 퍼붓고도 MVP를 놓친 강이슬(KB스타즈)은 3연속 3점슛 콘테스트 1위에 등극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이제 축제는 모두 끝났다. 올스타전에서 오랜만에 승패에 대한 부담을 내려 놓고 웃으며 경기를 즐겼던 선수들은 오는 14일부터 재개되는 후반기를 통해 다시 치열한 순위경쟁에 뛰어든다. 현재 진행중인 13연승을 포함해 전반기를 16승1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마친 우리은행 우리원은 만약 후반기 13경기에서 전승을 거두면 2016-2017시즌 자신들이 세웠던 WKBL 역대 최고승률 기록(.943)을 갈아 치울 수 있다.
반면에 전반기 17경기에서 11승6패로 2위를 기록하며 이번 시즌 돌풍의 주역으로 떠오른 삼성생명 블루밍스는 후반기를 앞두고 비상등이 커졌다. 작년 12월 26일 우리은행과의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팀의 주전가드 키아나 스미스와 이주연이 나란히 부상을 당하며 시즌 아웃됐됐기 때문이다. 작년 9월 여자농구 월드컵 본선에서 십자인대 부상을 당한 윤예빈에 이어 주전가드 3명이 모두 부상으로 이탈한 것이다.
▲ 수준 높은 기술을 선보이던 '슈퍼루키' 키아나 스미스는 더 이상 이번 시즌 WKBL 무대에서 볼 수 없다. |
ⓒ 한국여자농구연맹 |
지난 2020-2021 시즌 삼성생명은 정규리그 4위를 기록하고도 플레이오프에서 정규리그 1위 우리은행, 챔피언결정전에서 박지수가 버틴 KB스타즈를 꺾으며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15년 만에 챔프전 우승의 감격을 누리자마자 미래를 위해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 챔피언 결정전 MVP에 선정됐던 간판선수 김한별(BNK)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해 과감하고도 공격적인 리빌딩을 단행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생명은 2021년 5월17일 BNK, 하나원큐와의 삼각트레이드를 통해 김한별을 BNK로 보내고 2020-2021 시즌 신인왕 강유림과 신인지명권 3장을 얻어왔다. 그리고 202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여고농구 최대어로 불리던 183cm의 장신 포워드 유망주 이해란을 지명했다. 삼성생명은 노장선수 김한별과 김보미(은퇴)가 빠지고 강유림과 이해란이 합류하면서 선수단의 평균연령이 대폭 젊어졌다.
하지만 내외곽에 모두 능했던 김한별과 큰 경기 경험이 풍부한 김보미의 공백을 단기간에 메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2021-2022 시즌 30경기에서 11승19패를 기록한 삼성생명은 6개 구단 중 5위에 머물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명색이 '디펜딩 챔피언'으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삼성생명은 차기 시즌 6개 구단 중 4위 안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수모 아닌 수모를 당한 것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작년 9월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또 하나의 젊은 보물을 얻었다. 바로 작년 여름 WNBA의 로스앤젤레스 스팍스에서 활약한 한국인 어머니를 둔 혼혈 선수 키아나 스미스를 전체 1순위로 지명한 것이다. 비록 열흘 후 윤예빈이 무릎부상으로 시즌아웃됐지만 WNBA를 경험한 스미스의 합류로 인해 삼성생명의 전력은 크게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삼성생명은 시즌 개막 후 달라진 실력으로 성적을 끌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삼성생명은 17경기에서 11승6패를 기록, 3위 BNK에게 반 경기 차이로 앞서며 우리은행에 이어 2위로 전반기 일정을 마쳤다. 팀의 에이스 배혜윤을 중심으로 이주연,강유림, 이해란 등 젊은 선수들이 한층 성장했고 루키 스미스의 기량 역시 상당히 뛰어났다. 그렇게 팀이 다시 강해질 때까지 최소 두, 세 시즌 이상 걸릴 거라던 삼성생명의 리빌딩은 에이스의 건재와 젊은 선수들의 성장으로 인해 단 한 시즌 만에 완성되는 듯 했다.
▲ 이주연과 스미스가 무릎수술로 시즌아웃되면서 삼성생명은 신이슬이 주전가드로 중용될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
ⓒ 한국여자농구연맹 |
하지만 작년 12월 26일 우리은행과의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비극적인 일이 두 번 연속으로 발생하고 말았다. 1쿼터 3분30초를 남기고 이주연이 왼쪽 무릎이 꺾이는 부상을 당해 교체 아웃됐고 3쿼터에는 스미스 역시 왼쪽 무릎을 부여잡고 코트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주연은 십자인대파열로 최소 9개월, 스미스는 슬개건 파열로 6개월 이상 재활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다. 사실상 두 선수 모두 '시즌 아웃'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로써 삼성생명은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일찌감치 이번 시즌에 뛰기 힘들다는 판정을 받은 윤예빈을 포함해 주전 가드 3명이 모두 부상으로 시즌 아웃됐다. 후반기 13경기를 더 치러야 하는 삼성생명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초비상이 걸린 셈이다. 만약 가드진의 줄부상으로 삼성생명이 후반기 빠른 속도로 성적이 하락한다면 BNK와 신한은행 에스버드는 물론이고 박지수의 복귀로 대반격을 노리는 KB 역시 삼성생명을 타깃으로 삼을 수 있다.
당장 스미스와 이주연이 빠진 주전가드 공백은 전반기 16경기에 출전해 4.25득점3.38어시스트를 기록했던 신이슬이 메울 확률이 높다. 프로에서 5번째 시즌을 맞는 2000년생 유망주가드 신이슬은 대담한 성격과 뛰어난 경기운영능력을 겸비한 선수로 언니들의 부상을 기회로 살려 주전급 가드로 성장하려 한다. 다만 신장이 170cm에 불과해 리바운드 가담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약점도 가지고 있다.
신이슬과는 온양여고 2년 선후배 사이인 2003년생 3년 차 가드 조수아 역시 삼성생명의 가드진 부상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 BNK의 안혜지와 KB의 허예은 등 젊은 나이에 리그 정상급 가드로 자리 잡은 선수들은 대부분 선배들의 부진이나 부상, 이적 등을 통해 기회를 얻어 훌륭한 가드로 성장한 바 있다. 조수아 입장에서는 코트에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덜한 만큼 과감하게 자신의 플레이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가드는 수비코트에서 공격코트로 공을 운반하는 단순한 역할만 하는 포지션이 아니다. 가드는 지공과 속공의 결정, 각 포지션에서 어떤 선수를 활용해 득점을 올릴지 판단해 경기를 이끌어가는 '야전사령관' 역할을 하는 포지션이다. 윤예빈과 이주연, 스미스가 빠진 채로 후반기를 보내야 하는 삼성생명은 분명 큰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이를 기회 삼아 후반기 젊은 가드들의 성장을 이룬다면 삼성생명의 리빌딩은 더욱 성공적으로 완성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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