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리 IPO 연기에 앵커PE ‘상장 비토권’ 둘러싼 암묵적 합의 작용
2021년 4조 가치로 컬리에 투자한 앵커PE 손실 불가피
컬리, 현재 1조 가치 평가로는 충분한 자금 조달 불가능
[아시아경제 황윤주 기자]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의 대어로 꼽히던 컬리의 상장 연기 결정의 배경에는 김슬아 대표와 투자자 앵커에쿼티파트너스(PE)의 ‘상장 비토’ 권리 행사를 둘러싼 암묵적 합의가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앵커PE는 컬리 투자자 중 유일하게 상장을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도 컬리 상장 연기를 이끌어냈다.
앵커PE는 2021년 12월 컬리에 2500억원을 투자했다. 당시 앵커PE가 컬리의 기업가치를 4조원대로 인정하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앵커PE는 컬리의 초기 투자자 중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투자금을 댔으며, 투자자 중 유일하게 ‘상장 비토권’을 약속받았다. 컬리 상장에 대해 동의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안전장치’다. 당시 앵커PE가 적격상장(Qualified IPO) 조항을 통해 시가총액 6조원을 기준으로 상장하는 데 컬리와 합의했다는 이야기도 시장에 돌았다.
그러나 앵커PE는 컬리의 상장을 앞두고 실제 이 권리를 행사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IB업계 관계자는 "(비토권을 행사하면) 컬리가 추가로 투자를 받아야 할 상황이 생길 때 앵커PE가 자금 조달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만약 앵커PE가 비토권을 행사해 컬리 상장이 무산되면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실패한 기존 투자자들이 자금 조달 책임을 앵커PE에게 미룰 수 있다는 것이다.
컬리는 4일 상장 연기를 공식 발표했다. 컬리 측은 입장문에서 "컬리는 글로벌 경제 상황 악화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을 고려해 상장을 연기하기로 했다"며 "상장은 기업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최적의 시점에 재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닌 게 아니라 한때 4조원에 이르렀던 컬리의 기업가치는 현재 1조원을 밑도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상장예비심사를 다시 통과해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감수해야 하는데도 컬리가 IPO 약속을 깬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4조원대 기업가치로 컬리에 2500억원 정도를 투자한 앵커PE 입장에서 컬리가 당장 상장하면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사업 확장을 위한 자금이 필요한 김슬아 대표 역시 1조원대인 현재 가치로는 공모시장에서 원하는 만큼의 자금을 모을 수 없다. 상장으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 규모가 지난해 대비 4분의 1~5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컬리는 앞서 프리IPO 투자금을 물류 서비스와 데이터 인프라 고도화, 샛별배송 서비스 권역을 확대하기 위한 신규 회원 유치 등에 썼다. 이와 달리 현재 컬리의 투자 포인트는 물류 설비 확대가 아니라 ‘카테고리(상품군) 다양화’인 것으로 알려졌다. 식품 배달에 한정된 사업모델로는 시장점유율을 늘리기 어렵고 수익성 개선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뷰티’ 부문을 론칭한 것도 이 때문이다. 카테고리 확대도 상품을 매입하는 방식이라 운영 자금이 필요하다. 컬리는 상장으로 마련한 자금을 카테고리 확대 등에 투자해 공격적으로 나설 계획이었다.
증권사 관계자는 "티켓몬스터가 흑자를 내기 위해 돈 되는 상품 판매에만 집중하다 시장점유율을 뺏기면서 시장에서 사라졌다"며 "컬리는 흑자도 내고, 고객을 늘리면서 상품군도 확대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한데, 현재의 밸류에이션으로는 공모시장에서 원하는 자금을 조달할 수 없기 때문에 상장을 연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른바 ‘샛별배송’ 서비스로 국내 새벽배송 시장을 연 컬리의 적자 규모는 해마다 커졌다. 컬리의 적자는 2018년 337억원에서 2019년 1013억원, 2020년 1163억원, 2021년 2177억원으로 불어났다.
상장 주관사인 NH투자증권의 정영채 사장이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컬리 상장 연기에 대해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정영채 사장은 "상장 시장에 진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의성 판단도 매우 중요하다"며 "상장 연기 결정은 시장과 기업의 상황이 동시에 고려된 합리적 의사결정"이라고 썼다.
정 사장에 앞서 김한준 알토스벤처스 대표는 컬리의 상장 연기에 대해 논란이 일자 6일 페이스북에 "지난해 2분기 이전에 자금을 받은 회사의 가치는 당시보다 30~80%는 줄었기 때문에 컬리의 상장 철회가 놀랄 일도 아니다"라며 "앞으로 6개월~12개월 안에 돈 벌면서 성장하지 못하면 영영 잘하는 회사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고, 이에 동의하며 정 대표도 글을 올렸다.
시장에서는 컬리가 재상장에 도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시기는 요원하다. 경영진과 투자자 모두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를 원하고 있어서다. 공모시장의 분위기가 언제 반전될지는 미지수다.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돈 많아도 한남동 안살아"…연예인만 100명 산다는 김구라 신혼집 어디? - 아시아경제
- 버거킹이 광고했던 34일…와퍼는 실제 어떻게 변했나 - 아시아경제
- "한 달에 150만원 줄게"…딸뻘 편의점 알바에 치근덕댄 중년남 - 아시아경제
- "일부러 저러는 건가"…짧은 치마 입고 택시 타더니 벌러덩 - 아시아경제
- 장난감 사진에 알몸 비쳐…최현욱, SNS 올렸다가 '화들짝' - 아시아경제
- "어떻게 담뱃갑에서 뱀이 쏟아져?"…동물밀수에 한국도 무방비 - 아시아경제
- "10년간 손 안 씻어", "세균 존재 안해"…美 국방 내정자 과거 발언 - 아시아경제
- "무료나눔 옷장 가져간다던 커플, 다 부수고 주차장에 버리고 가" - 아시아경제
- "핸들 작고 승차감 별로"…지드래곤 탄 트럭에 안정환 부인 솔직리뷰 - 아시아경제
- '초가공식품' 패푸·탄산음료…애한테 이만큼 위험하다니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