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한 동' 뿐인데 경쟁률 높은 한전공대 "정부 보증 대학이라..."
“아직도 건물 하나밖에 없나요?” “이 학교 곧 없어지는 거 아니에요?”
지난달 5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한국에너지공과대학(KENTECH, 켄텍) 입학 설명회에 참석한 400여명의 학부모들은 우려 섞인 질문을 쏟아냈다. 올해로 개교 2년차를 맞는 켄텍은 여전히 다수의 예비 학생·학부모가 ‘선뜻’ 선택할 정도로 완성됐다는 인상을 주진 못하는 듯했다. 장광재 입학센터장은 “솔직하게 ‘여전히 건물 한 동에 먼지 풀풀 나는 공사 현장이 옆에 있다’고 설명했다”고 했다.
“원자재 인상, 화물연대 파업 등으로 기숙사 준공 미뤄져”
지난 9일 방문한 전남 나주의 켄텍 캠퍼스에서 장 센터장의 ‘이실직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캠퍼스는 ‘공사 중’ 이었다. 축구장 48개 크기(40만㎡) 부지에 완공된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행정·강의동 하나가 전부였다. 오는 2월 24일 2기 신입생 100여명의 입학식이 열리는데,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 건물 앞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강의동 옆으로는 빨간 철골 구조물이 세워져 있는데, 올해 12월 준공 예정인 두 번째 행정·강의동 건물 공사가 한창이었다. 시멘트나 철골을 실은 덤프트럭이 수시로 들락날락했고 드릴 소음으로 시끄러웠다.
이동을 위해 켄텍의 행정·강의동 주소를 택시 호출 어플에 입력했더니 골프장 7번 홀 위로 검색됐다. 부영그룹에서 기부 받은 부영CC 일부 부지에 학교가 세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 기숙사와 학생식당은 부영CC 골프텔, 클럽하우스를 사용하고 있다. 임시기숙사가 올해 7월 준공 예정인 만큼 올해 입학생들도 골프텔 기숙사를 사용해야 한다. 골프텔 기숙사에서 행정·강의동까지는 도보로 20분 정도가 걸린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오는 2월 기숙사를 완공해 신입생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하려 했으나, 학교 측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 상승·화물연대 파업 등으로 인해 준공이 늦어졌다. 켄텍은 학생시설 임대 사용료를 포함해 교육시설·사무실 등의 임대료로 연 31억1700만원을 지출하고 있다.
‘문재인표 대학’ 꼬리표…재학생 “학교 시설 충분해, 만족”
지난해 3월 1기 학생을 시작으로 올해 2기 학생까지 모집한 켄텍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으로 추진해 ‘문재인표 대학’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한국전력공사(한전)에서 2019년부터 2031년까지 12년간 학교 개교·운영 유지에 약 1조원을 투자하기로 약정해 ‘한전공대’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하다. 허허벌판 공사 현장에 건물 한 동만 세워두고 그 앞에서 열렸던 지난해 입학식 사진은 지금도 화제다. 정치권에선 ‘문재인 정부 임기 맞추려 졸속 개교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지난해에만 31조원이 넘는 한전의 영업손실 규모를 고려할 때 켄텍에 투자하는 비용이 지나치게 많다는 우려도 나온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들이 규모를 줄이는 마당에 굳이 광주과학기술원(GIST)이 있는 호남에 또 다른 이공계특성화대학을 만들 필요가 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여러 문제 제기와 지방대 위기 속에서도 켄텍은 여전히 높은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올해 2기 학생 정시 경쟁률은 10명 모집에 603명이 지원, 60.3대 1을 기록했다. 지난해(953명 지원)보단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다. 90명을 모집한 수시 경쟁률도 12.6대 1로 지난해(24.1대 1)보다 줄었으나 다른 과학기술원·지방대와 비교하면 센 편이다. 중도 이탈 학생도 거의 없다. 의·약학계열로의 반수 등으로 인해 조금 늘어날 수도 있으나, 학교에 따르면 11일 기준 자퇴 학생은 1명 뿐이다. 출신 고교는 1기 기준으로 과학고·영재학교·자립형사립고 출신이 절반 이상(54명, 50.5%)인데, 올해 수시 입학생들도 영재학교·과학고 출신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과 학생들의 공학 분야 선호가 의·약학 계열 다음으로 높은 데다 공기업·정부가 ‘보증’하는 대학이란 이미지가 높은 경쟁률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재학생 전원 전액 장학금에 기숙사비가 무료인 점도 우수 인재를 끌어들이는 요소다.
그렇다고 졸업 후 한전 취업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캠퍼스도 빠르면 2025년 6월에야 완성된다. 하지만 재학생들은 학교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장현규 총학생회장은 “외부에선 시설 미비를 얘기하지만, 처음부터 건물 한 동에서 시작해 확장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지금도 200명 재학생이 충분히 맞춤 교육을 받고 전문가로 키워질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고 했다. 학생들은 인공지능(AI) 학습분석 시스템을 갖춘 강의실에서 수업하는데, 켄텍에서 개발한 AI 학습분석 시스템은 강의실에서 학생이 한 발언, 질문, 토론내용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강의자가 개인별로 맞춤 피드백을 제공해줄 수 있다. 학생 설계 융합 과정, 절대평가 수업이 이뤄지다 보니 재학생들 사이 ‘성적 줄세우기’ 스트레스도 거의 없다. 김경 교육혁신센터장은 “학생 1명에 지도교수가 3명이며 진로·수업 상담부터 생활 상담까지도 이뤄지기 때문에 학생 한 명 한 명을 꼼꼼히 챙길 수 있다”며 “수업도 교수가 지식 전달을 하는 게 아니라 코치하는 식으로 진행해 학생들의 만족도가 더 높다”고 했다.
지자체·한전 재정 지원 ‘지속 가능성’ 회의적 시선도
현재의 ‘만족도’가 유지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선 재정이 예정대로 지원돼야 하는데, 누적되는 한전 적자로 켄텍 투자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여전하다. 한전 외에 전남·나주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올해부터 2031년까지 10년간 2000억원을 투자하는데, 재정자립도가 낮은 수준이라 매년 수백억원을 지출하는 게 무리라는 전망도 있다.
윤의준 켄텍 총장은 “지금은 ‘졸속개교’로 비판받지만, 캠퍼스를 모두 완성하고 개교했으면 ‘학생 100명 사용하는데 지나치게 돈을 많이 썼다’는 비판이 있었을 것”이라며 “학교를 둘러싼 여러 비판에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지만, 미래에 정말 중요한 에너지 분야 전문가를 양성하고 지역과 함께 발전하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주=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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