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그건 관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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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돼서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역)의 서울 지하철 탑승 시위를 둘러싼 갈등이 풀리지 않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연말 페이스북을 통해 새해부터 지하철 시위를 재개하겠다는 전장연을 향해 "불법에 관한 한 더 이상의 관용은 없다"며 "민형사상 대응을 포함해 필요한 모든 법적 조치를 다하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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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돼서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역)의 서울 지하철 탑승 시위를 둘러싼 갈등이 풀리지 않고 있다. 양측의 긴장은 오히려 고조되는 모양새다. 지하철 삼각지역 역장은 선전전 과정에서 자신을 휠체어로 들이받은 전장연 관계자를 철도안전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과 박경석 대표 등을 상대로 6억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지난 1년간 전장연이 총 75차례 진행한 지하철 시위로 열차 운행 지연 등의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전장연에 대한 고소·고발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관용 원칙’ 때문이라고 한다. 오 시장은 지난 연말 페이스북을 통해 새해부터 지하철 시위를 재개하겠다는 전장연을 향해 “불법에 관한 한 더 이상의 관용은 없다”며 “민형사상 대응을 포함해 필요한 모든 법적 조치를 다하겠다”고 경고했다. 오 시장은 새해에도 전장연의 지하철 승차 지연 시간을 5분 이내로 제한한 법원 조정안을 거부하면서 “1분만 늦어도 큰일 나는 지하철을 5분씩이나 연장시킬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내일부터는 무관용”이라고 강조했다.
오 시장이 사용하는 ‘관용’이란 말이 눈을 찌른다. 정치인들이 말을 오염시키는 사태를 하루이틀 보는 건 아니지만 장애인인권이라는 우리 사회의 지체된 의무를 두고 관용이라는 말을 끌어들이는 수준은 예상치 못했다. 전장연이 요구하는 이동권은 모든 시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다. 지하철, 버스, 택시 등 시민들의 이동을 보장해주는 대중교통을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어렵다면 개선해야 한다. 재정 부족 등을 이유로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런 사정을 설명하고 향후 계획을 제시하면서 양해를 구해야 한다.
서울 강남에만 지하철이 깔려 있고, 강북 주민들이 우리 동네에도 지하철을 깔아 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강북 주민들이 지하철을 빨리 깔아 달라고 강남 지하철 운행을 지연시킨다면 그때도 오 시장은 “무관용”을 운운할 수 있을까. 아마도 강북 주민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이해를 구하면서 지하철 개통에 속도를 올릴 것이다. 전장연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벌이는 이들도 하나같이 “이동권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만 지하철을 연착시키는 탑승 시위는 불법이고, 시민 불편을 초래하니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위 역시 시민의 권리다. 함부로 불법 딱지를 붙일 수 있는 게 아니다. 법원도 5분 이내의 지하철 승차 지연 시위는 기본권 보장 측면에서 가능한 것으로 보고 조정안으로 제시했다. 전장연은 이를 받아들였다. 오 시장은 1분도 연착은 안 된다면서 무관용을 꺼내들었다. 장애인의 시민권을 부정하는 듯한 태도다. 오 시장의 무관용 원칙은 시민의 권리와 정부의 의무를 오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지적돼야 한다. 장애인 이동권은 지체된 시민의 권리이자 지연된 정부의 의무다. 장애인 예산도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 아동급식이나 노령수당처럼 약자 시민들을 위한 예산이다. 여기에 관용이란 말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
장애인 시민들이야말로 비장애인을 정상이자 보편으로 설정하고 자신들을 차별해온 이 사회를 오랫동안 관용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역사는 20년이 넘는다. 세계 인권운동의 역사를 봐도 장애인인권은 노동자인권이나 여성인권, 흑인인권보다 늦다. “너무 오래 기다렸고, 너무 많은 타협을 했고, 너무 많은 시간을 인내해 왔습니다.” 미국의 장애인 운동가 주디스 휴먼이 자서전 ‘나는, 휴먼’에서 적은 이 문장처럼 오래 참아온 건 장애인들이다.
김남중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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