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경제전쟁에서 확실히 지는 법

이상렬 2023. 1. 12.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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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적ㆍ과감한 대책, 금융위기 극복
파격적 지원이 R&D 도약에 큰 역할
남들같은 위기 대응 그쳐서는 필패
이상렬 논설위원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저평가된 쪽에 속한다. 호감도 조사 순위는 늘 낮다. 거기엔 좌파 혹은 진보 진영의 뿌리 깊은 미움이 작용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의 재임 중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광우병 사태의 괴담 등이 배척의 이유가 됐을 것이다. 그로 인해 MB의 업적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2008~2009년 세계를 휩쓴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이 그런 경우다.
세계경제의 심장인 미국에서 터진 금융위기는 순식간에 세계경제를 얼어붙게 했다. 각국이 천문학적 부양책을 동원했으나 성과는 참담했다. 2009년 선진 7개국(G7)은 모두 마이너스 성장으로 후퇴했다. 미국 -2.6%, 독일과 일본 -5.7%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3.4%. 그해 한국은 0.8%의 플러스 성장을 이뤘다. 이듬해인 2010년엔 6.8% 성장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OECD 평균 3.1%).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이 위기를 통제하는 데 만점을 받았다. 한국은 교과서적인 경기 회복을 달성했다”(2010년 4월 27일)고 보도했다. 대부분의 나라가 금융위기에 휘청였지만 한국은 달랐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12월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중앙포토

MB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한국의 금융 위기 극복은 팩트다. 그런 상황은 그저 벌어지지 않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목표의식이 분명했다. 해를 넘겨서 하던 부처의 대통령 신년 업무보고는 전년 12월 중으로 앞당겨졌다. 예산 조기 집행을 위해서였다.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만든 위기 대응 원칙은 ‘선제적(Preemptive)’ ‘결정적(Decisive)’ ‘충분한(Sufficient)’이었다. 훗날 국제통화기금(IMF)과 OECD는 적극적 재정통화 정책이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감세와 지출 확대, 금리 인하는 다른 나라도 했다. 한국이 달랐던 것은 보다 빠르고 더 과감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강 장관이 세제실에 파격적인 연구개발(R&D) 지원 방안을 지시했다. 매출액 3%의 연구개발준비금을 비용으로 산입하고, 연구시설 투자액의 10%를 세액공제하고, 연구비 지출액의 25%(대기업 6%) 또는 4년간 평균연구비지출 초과액의 50%(대기업 40%)를 세액공제해 주는 내용이었다. R&D의 준비-투자-연구, 세 단계에서 법인세를 깎아주는 ‘삼중 지원’이었다. 사상 최초, 세계 최초였다.
세제실장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난색을 보이자 강 장관은 “전례가 없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딴 나라가 하지 않을 때 해야 효과를 본다는 논리였다. 세액공제를 받는 R&D 범위에 디자인, 인력개발이 포함된 것도 이때였다. 2008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3%로 일본(3.3%)보다 낮았다(현재 OECD 통계 기준). 그러나 2010년 일본을 넘어섰고, 2012년(3.9%)엔 세계 선두권으로 올라섰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대기업의 R&D 투자가 확 늘어난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삼중 지원’이 특급 공신이었다.

2022년5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 조정을 놓고 혼선이 있었다. 여당 반도체특위가 20%(대기업)를 제시했으나 기재부의 반대로 8%로 입법됐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15%로 재추진되는 소동이 일어났다. 윤 대통령의 ‘오버’를 탓할 상황이 아니다. 늦지 않게 바로잡힌 것이 다행이다.
일찍이 없었던 ‘복합 위기’라고 한다. 세계 곳곳에서 ‘첨단기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자랑이었던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는 예전 같지 않다. 전략산업 지원을 세수 감소나 ‘대기업 특혜’ 프레임으로 막아서는 수준으론 위기를 돌파하지 못한다. 역사상 위기엔 공통된 메시지가 있다. 남들만큼 하고서 만족하는 것은 경제전쟁에서 확실히 지는 법이라는 것이다. 선제적으로 과감하게 대응하지 못했더라면 금융위기는 외환위기보다 훨씬 가혹하게 우리 경제를 짓밟았을 것이다.

이상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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