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믿지 못할 통계, 국가 발전 기대 못해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경제·사회적 이슈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신뢰성 높은 통계가 필요하다. 통계의 정확성이 떨어지면 올바른 진단과 정책 수립이 어려워지고, 통계가 신뢰를 잃으면 진단의 근거를 무너뜨려 국민의 정책 수용성을 떨어뜨린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최대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통계 생산과 활용을 지향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소득·일자리·부동산 통계와 관련해 유례없는 논란을 일으켰고, 최근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 중이다. 소득통계 논란과 관련해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지난 정부의 과도한 대응이 국가통계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점이다. 당시 정부는 주된 관심사였던 저소득층 소득이 정권 초기인 2017년 4분기에 예상을 넘어 10%로 많이 증가한 것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라 홍보했다. 하지만 그다음 분기엔 저소득층 소득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소득분배지표가 악화한 것으로 나왔다. 놀란 청와대는 소득통계의 불완전성을 문제 삼았고 곧바로 소득통계의 표본 개편에 나섰다. 당시 통계에 활용된 가계동향조사가 2017년부터 새로운 표본과 방식으로 개편됐는데 조사자료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면 개선을 고려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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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의 통계개입, 논란의 문 정부
소득·부동산 등 통계 신뢰도 흔들
객관성·중립성 갖춘 시스템 필요
」
그러나 당시 개편을 촉발한 사유·시기·방법 등을 보면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통계 개편이 진행됐다는 합리적 의심이 드니 정부가 논란을 자초한 셈이다.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이 어렵게 축적된 국가통계의 신뢰성에 커다란 흠집을 냈다. 만약 의사가 환자를 치료한 뒤 검사 결과가 나쁘게 나왔을 때 검사가 잘못됐으니 검사방법을 바꾸겠다고 하면 환자가 과연 새로운 검사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집값 관련 통계의 오용도 정부 진단의 신뢰성을 떨어뜨렸다. 온 국민이 집값 급등을 체감하던 당시 정부는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근거로 집값 상승세가 진정됐고 부동산 대책이 드디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득자료는 개인 민감 정보라서 국가 외에는 수집하기 어렵지만, 부동산자료는 대부분 공개된 정보라 비교 가능한 민간통계가 존재했고 당시 그 수치들이 폭등세를 보였다. 두 통계 간에 괴리가 생긴 원인은 표본과 통계 작성방법 차이에 있었다. 부동산원 통계는 포괄하는 지역 범위가 넓지만 표본수가 적고 아파트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반면 국민은행 KB통계는 지역 범위가 다소 좁지만, 표본 수가 많고 아파트 표본비율이 높았다.
당시 거래가 활발하지 않았고 수도권 아파트가 주된 관심사였기 때문에 표본 수가 적은 부동산원의 통계가 현실 반영에 상대적으로 불리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처럼 정부가 활용한 통계의 한계가 뚜렷한 상황에서는 국민이 체감하는 고통을 고려해 추가적인 통계들을 면밀히 살펴서 종합적인 진단을 하는 것이 적절하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정책 효과 홍보에 매몰돼 부동산원 통계만을 고집했고 결국 진단의 신뢰를 잃었다.
두 사례는 통계 생산과 활용 원칙에 대해 몇 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첫째, 통계 생산 체계에 대한 신뢰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통계 개편 방식과 절차, 통계 공표와 해석에서 최대한 신중함을 유지해야 하고 객관적이며 일관된 원칙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정확한 통계를 구축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정부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현실과 부합하는 통계 생산과 활용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야만 국민이 신뢰할 것이다.
셋째,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달라지는 국민의 관심사를 포착하고 이에 맞게 조사와 통계를 개편해 정책에 활용해야 한다. 시대적 이슈 해결에 필요한 통계를 위해 새로운 조사자료를 추가하는 과정 역시 중립성·객관성을 담보해야 한다.
지금은 더 많이 더 빠르게 통계를 만드는 것보다 천천히 가더라도 정확하고 신뢰받는 통계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통계 시스템이 신뢰를 잃으면 공들여 만든 통계가 무용지물이 되고 국가 발전의 방향타를 잃게 된다. 이처럼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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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서강대 경제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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