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호의 법과 삶] 가족은 ‘포용’이다
아이를 낳지 않아 걱정이다. 시골에선 몇 년 만에 아이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소식이 뉴스가 되고 있다. 2005년 대통령 직속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만들어 저출산 대책에 15년간 380조원을 투입했지만 실패했다. 오히려 2020년부터는 태어난 아이가 사망자보다 더 적은 인구의 데드크로스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80년 후에는 우리나라 인구는 반으로 준다.
1960년대는 경제 발전을 명분으로 ‘모자보건법’을 만들었다. 연간 100만 건 전후의 낙태가 이뤄졌고, 정관 수술을 받으면 동원 예비군 소집까지 면제해줬다. 대 국민 캠페인의 구호가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우리 국민은 너무 말을 잘 들었고, 그 덕에 산아 제한과 경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후 너무 말 잘 듣는 우리 국민은 하나도 잘 낳지 않기 시작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후 출산 기피 분위기를 감지한 주무부처에서 산아제한 정책을 포기하자고 제안했으나 경제부처에서는 아직 이르다며 미뤘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실책으로 인구 증가를 위한 정책 전환의 골든 타임을 놓쳤다. 그 바람에 인구 감소가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 된 것을 넘어 국가 존립까지 위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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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출산 해결 법과 제도로는 한계
점점 ‘별산형’으로 변질되는 가족
이대남·이대녀 편가르기 멈추고
희생·포용의 가족문화 중시해야
」
정치권은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율이 떨어지는 원인을 너무 오른 집값과 구하기 힘든 일자리로 파악하면서 관련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은 분위기가 아닌데 과연 집과 직장을 주면 문제가 풀릴까. 젊은 남녀는 서로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이대녀·이대남 같은 신조어가 생기는가 하면, 남녀가 대립하고 혐오하는 비정상적인 문화가 자리 잡게 됐다. 말려도 시원찮을 판에 정당들은 누가 우리 편 지지자인지 성향을 분석하고 이를 득표에 이용하는 데 몰두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악어의 눈물을 보인다.
몇 년전 법무부에서 만든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에 참여한 적 있다. 아이 낳기 좋은 환경, 아이가 잘살 수 있는 포용적 가정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가족법 개정 위원회였다. 논의 안건 중 하나가 자녀의 성(姓)을 언제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였다. 우리나라는 자녀가 아버지 성을 따르는 ‘부성 우선주의’와 혼인신고를 할 때 부부 합의로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모성 선택주의’를 병행하고 있다. 당시 청와대에서 자녀의 성을 선택하는 시점을 혼인신고 때가 아니라 출생신고 때로 바꾸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혼인 후 막상 아이를 낳았을 때 마음이 바뀔 수 있다는 이유다. 그러나 부모의 일방적 결정으로 형제가 다른 성을 쓸 수 있어 가족 정체성에 혼란이 올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부부가 합의하지 못할 경우 재판이나 추첨으로 결정해야 한다.
가족의 성을 결정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어떤 제도가 가족을 포용하고 유지할 수 있느냐다. 그런데 위원회의 논의가 지속될수록 성스러운 결혼과 출산이 포용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별산형 가족제도’, 심하게 표현하면 ‘상업적 거래 관계’로 변질하고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젊은이들에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건강하게 키우라고 이야기할 자신이 없어졌다.
어느 모녀의 에피소드를 읽고 눈시울이 붉어진 적이 있다. 딸 아이가 엄마에게 “청소 값 1000원, 심부름 값 1000원, 동생 봐준 값 1000원, 합계 3000원”이라는 청구서를 내밀었다. 엄마는 청구서 밑에 “내 뱃속 열 달 동안 데리고 다닌 값 무료, 네가 아플 때 간호한 값 무료, 널 키우며 눈물 흘린 값 무료”라고 답했다. 이를 본 딸은 눈물 흘리며 “사랑해요. 지불되었음”이라고 썼다. 가족이란 이런 것이다.
집도 있어야 하고 직장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가 없이 희생하고 베풀고 사랑하는 가족을 이룰 수 있는 가족문화가 밑바탕에 있어야 한다. 가족주의 문화가 발달한 아랍계는 어디에 살든, 집과 직장이 있든 없든, 여러 자녀를 낳는다.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이름으로 성(性)과 세대로 편 가르고, 가족법을 상법처럼 별산화하려는 시도는 그만뒀으면 한다. 갈등 완화와 저출산 해결을 위해 이참에 여성가족부를 ‘포용적 가족부’로 바꾸는 건 어떨까.
신현호 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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