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빙하기…삼성전자 ‘기술적 감산’ 돌입
메모리 반도체 수요 급감 속에서도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삼성전자가 공정 전환 등을 통한 ‘기술적 감산’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최근 수년간 반도체 생산라인에 웨이퍼 투입을 줄이는 ‘인위적 감산’을 한 전례가 없다. 다만 수요 변화에 따라 생산라인을 탄력적으로 운용해 왔는데 올 1분기에도 이 같은 대응에 나선 것이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이후 반도체 생산라인의 최적화와 차세대 제품 공정 전환 등을 진행하면서 최근 메모리 반도체 출하량이 감소했다. 이를 ‘자연 감산(Natural Cut Production)’ 또는 ‘기술적 감산(Tech nical Cut Production)’이라 부른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현재 미주총괄)은 지난해 10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삼성 테크데이 2022’에서 감산 계획을 묻자 “현재로선 (감산) 논의는 없다.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기조”라고 답했다. 이미 마이크론, SK하이닉스 등 경쟁 업체는 감산에 들어간 상태였다.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감하면서 재고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메모리 업체의 감산에도 PC 제조사는 9~13주, 스마트폰 제조사는 5~7주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으며, 향후 재고 처리 과정에서 가격 하락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업계 재고 규모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예상되는 만큼 웨이퍼 투자를 최소화하고 공정 전환 투자도 일부 지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고 증가와 수요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자연 감산은 물론 인위적 감산도 하겠다는 의미였다.
국내 업체는 ‘신제품과 초(超)격차 기술’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기술적 감산’을 통해 올해부터 차기 D램 제품인 DDR5와 데이터센터·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생산라인 공정 전환과 최적화로 출하량은 자연스럽게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메모리·비메모리 반도체는 물론 세트(완제품)까지 망라하는 사업 포트폴리오 덕분에 ‘웨이퍼 투입을 줄이지 않아도’ 출하량을 조절할 수 있는 게 삼성전자의 경쟁력인 셈이다. SK하이닉스도 차세대 제품인 DDR5, HBM(고대역폭 메모리)3 등 고부가 서버용 제품을 중심으로 시장 공략에 나선다.
삼성전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사업 특성상 사업부문별 협의를 통해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데, 이런 역량을 갖춘 건 삼성전자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이후 사업부 최고경영진 회의를 통해 시장 수요를 전망하고 고부가 차세대 제품 생산으로 전환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지난 9일자 보고서에서 “마이크론 등 경쟁 업체가 (인위적) 감산에 들어간 상황에서도 삼성전자만 ‘경쟁력 있는 가격 정책’으로 재고 수준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제조원가 절감과 공정 최적화, 정확한 수요 예측 능력을 갖춘 삼성전자가 ‘인위적 감산’ 없이도 재고 조절이 가능한 유일한 업체라는 의미다.
다만 메모리 업황 사이클이 아직 저점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많아 언제까지 인위적 감산 없이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이 발표된 직후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실적은 메모리 수익성 악화에 기인한 것으로 (인위적) 감산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고 내다봤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가 집계한 D램 고정거래가(평균)는 DDR4 8 Gb 기준, 2021년 8월 말 4.1달러에서 지난해 말 2.21달러까지 하락했다. 가격 하락세는 차세대 제품 수요가 늘고, 감산 효과가 발생하는 올 3분기 이후에나 멈출 전망이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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