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경제력·직급 앞에서, 사랑도 계산이 되나요

어환희 2023. 1. 12. 00: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연석·문가영 주연의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은행에 근무하는 네 남녀의 사랑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다룬다. [사진 SLL]

“사람들 진짜 이상해. 물건 하나를 사도 재고 따지고 후기까지 샅샅이 따져보면서 사랑이란 감정에만 무진장 결벽을 떨어요. 속으로는 온갖 계산 다 하면서 아닌 척.”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이해(理解)할까. 이해(利害)를 따지면 사랑이 아닌 걸까. JTBC 수목 드라마 ‘사랑의 이해’가 던지는 질문이다. 잔잔하지만 꽤 현실적인 네 남녀의 엇갈린 로맨스를 그린다는 점에서 기존 정통 멜로와 차별화됐다.

예측 가능하고 도식적인 멜로 드라마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명문대 출신 3년 차 계장 하상수(유연석)와 고졸 4년 차 주임 안수영(문가영). 은행 같은 지점 동료인 둘은 오랜 기간 지켜보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키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오해가 생겨 멀어진다. 엇갈림은 16부작의 절반이 가깝도록 해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둘은 서브 주인공인 개인금융팀 대리 박미경(금새록), 은행 청경 정종현(정가람)과 각각 이어진다. 장애를 극복하고 사랑의 결실로 나아가는 로맨스를 기대했다면 당혹스러울 수 있다.

이 드라마의 흡인력은 ‘왜 남녀 주인공이 이어지지 못하는지’를 섬세하고 현실적으로 풀어낸다는 점이다. 정규직·계약직이라는 계급 차이가 어떤 입장차를 만들고, 그것이 사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사랑에도 계급이 있다’는 뼈아픈 현실을 풀어내는 공간이 돈으로 고객을 차별하는 은행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만약 그날 약속을 지켰다면 나랑 만났습니까?”(하상수) “우린 결국 잘 안됐을 거예요. 너무 다르니까.”(안수영)

남녀 주인공의 엇갈림은 데이트 약속을 어기면서 시작된다. 첫 데이트에서 서로의 마음을 어느 정도 확인한 이후, 하상수는 연락도 없이 두 번째 데이트에 심하게 늦는다. “은행 일이 늦게 끝나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하다”는 하상수에게 안수영은 “약속을 ‘안’ 지킨 것”이라고 정정한다. 약속 장소로 뛰어 오던 하상수가 몇 초간 망설이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안수영은 망설임이 곧 ‘다름’이라면서 “우린 너무 다르니까 결국 잘 안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의 이해’는 사랑을 매개로 ‘다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학벌·경제력·직급 등의 차이로 인해 다름은 계급이 된다. 계급은 하상수를 망설이게 하고, 안수영을 솔직하지 못하게 만든다. 안수영이 4년간 깨달은 건 발버둥 쳐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사실이다. 강남 8학군에 명문대 출신이지만 홀어머니 밑에서 악착같이 공부한 하상수도 ‘금수저’ 동창들 사이에서 벽을 느낀다. 하상수에게 구애하는 박미경도 공교롭게 명품을 휘감은 금수저 중의 금수저다.

하상수는 박미경과 사랑을 시작한다. 안수영은 비슷한 처지인 경찰공무원 수험생 정종현과 연애와 이별의 과정을 거친다. 관전 포인트는 하상수와 안수영이 사랑을 통해 다름을 극복할지, 아니면 이를 받아들이고 평행선을 걸을지다. 이혁진 작가의 동명 원작소설과 얼마나 다르게 전개될지도 흥미롭다.

정덕현 평론가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사회적인 멜로”라고 평했다. “계급·자본 등으로 인한 보이지 않는 선을 첨예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화 ‘기생충’ 느낌”이라며 “사랑의 장애물이 가족 등 사적 관계가 아닌, 빈부 격차와 지위 등 사회적 요소라는 점에서 흥미롭고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