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x 제도화, 어떻게 할까… 해답은 'DTx 자체'에 주목해야
[아시아경제 이춘희 기자] 조만간 국내 '1호 디지털 치료기기(디지털 치료제, DTx)'가 나올 예정인 가운데 실제 산업 성장을 위해 어떠한 정책·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돼야 하는지에 대해 논하는 자리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DTx의 특성을 고려한 산업적 움직임과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 국회의원회관에서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 이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공동 주최로 열린 'DTx 정책·제도화 촉진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표자들은 DTx의 특성에 대해 이해를 해야만 관련 정책 수립과 제도화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힘줘 말했다.
처음 발표를 맡은 박명철 경운대 항공전자공학과 교수는 'DTx 생태계 활성화 방안' 발표를 통해 이를 위해서는 DTx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다. 박 교수는 우선 승인 면에서는 "DTx는 다른 치료제에 비해 대상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요소가 덜하고, 만성질환 환자에 대한 휴약기 관리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치료가 많다"며 "다른 치료제와 차별화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DTx가 다른 치료법과 다른 점으로는 '사용자 참여'를 꼽았다. 2013년 '뉴로레이서'를 시작으로 2020년 6월 아킬리 인터랙티브의 '엔데버Rx'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는 등 게임형 DTx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이 같은 방법을 통해 DTx의 예방적 효과도 큰 만큼 보험계의 역할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손실이 적을수록 보험사의 수익은 증대된다"며 "만성질환을 예방적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DTx가 나온다면 이를 토대로 가상 손실금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제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수가 적용 면에서도 현재 행위·의약품·재료대 등 크게 3가지로 나눠 이뤄지는 급여화에 대해서 "사실 DTx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갖고 있다"며 "절차적 내용에 맞지 않는 만큼 새로운 규제 절차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덕현 "DTx, 단순한 디지털화에 그쳐선 안 돼"
이어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DTx의 변천과 개념' 발표에서 디지털 치료(therapeutics)와 디지털 약(medicine), 디지털 헬스(health)를 구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 교수는 단순히 '집중력 향상' 같은 효과를 말하는 수준의 디지털 헬스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임상적 증거(clinical evidence)를 확보해야 디지털 약으로 넘어갈 수 있고, 이에 더해 실제 임상적 호전이 왜 일어났는지까지 파악해야만 디지털 치료로 넘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이와 관련해 DTx 산업이 본질을 망각하고 쉬운 우회로를 택하게 됐다고 성토했다. 실제 DTx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임상적 개선을 가져오는 기전을 입증해야만 하는데 이 신뢰도가 논란인 경우가 많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DTx 개발사들이 인지중재치료(CBT)의 디지털화로 넘어갔다"며 "과학적 증거 확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지만 실제로 이를 통해 FDA의 '1호 DTx' 승인을 받은 페어 테라퓨틱스도 지금 결국 사용적인 재미가 없으니 쓰이지 못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DTx 개발사들이 "DTx는 절대로 디지털화한 CBT가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며 "고유의 개성을 확보해야만 한다"고 조언했다. 한 교수는 "DTx의 디자인, 생산, 임상에 임상 전문가의 실질적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며 "CBT를 넘어서서 디지털 치료 효과의 특징적 기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사업 모델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 교수는 "미국에서는 처방형 DTx를 만든다고 하면 '왜 헛수고하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며 "의학적 시스템으로 들어가기 어려우니 비의학적 모델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적극적인 처방 진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한국의 강력한 건강보험제도는 DTx 발전 면에서 해외에서는 따라오기 힘든 이점"이라며 "비급여라도 우선 건강보험에서 이를 인정하고 쓰게 해준다면 일종의 자격증(license)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강성지 "DTx에 대한 신뢰 쌓을 수 있는 제도 마련돼야"
마지막 발표를 맡은 강성지 웰트 대표는 현재 불면증 DTx '필로우Rx'를 개발하고 있는 경험을 살려 'DTx 제도화로 만들어질 미래를 위한 제언'을 내놨다. 강 대표는 DTx 제도화를 위해서는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반적인 디지털 헬스케어를 '경험재', DTx를 '신용재'로 분류하며 신뢰성과 부작용 여부 등을 누군가 담보하기 어려운 디지털 헬스케어와 달리 DTx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품목허가를 내리고, 이어 의사는 식약처를 믿고 처방하고, 또 처방한 의사를 믿고 심평원은 수가를 인정함으로써 국민이 혜택을 볼 수 있다"며 "중요한 건 끊기지 않는 신뢰"인 만큼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신뢰를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고 전했다.
또한 과학적인 면에서 적극적으로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단순한 'CBT의 디지털화'를 넘어서야 한다는 점도 짚었다. 강 대표는 "기존의 불면증 DTx는 '디지털화'도 아닌 '전산화'에 불과하다"며 이를 넘어선 DTx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인터넷 강의의 예를 들었다. 대면으로 강의를 하던 것이 스튜디오에서 고품질의 프로토콜에 따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진 강의로 만들어져 제한 없이 쓸 수 있게 된 것처럼 DTx 역시 적합하고 검증된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구조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노력을 토대로 '정밀 의료'까지 뻗어나간다는 게 웰트의 구상이다. 강 대표는 "센서나 유저를 이해하기 위한 장치를 아낌없이 넣으려고 하고 있다"며 "게임에서 유저들을 분석해 게임을 개선하듯이 DTx도 환자를 더 잘 치료할 수 있도록 계속 진화해 나가려 한다"고 강조했다.
"DTx 성장하기 위해서는 신속 사용을 위한 제도 논의해야"
이어진 토론에서는 태동하고 있는 DTx 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어떠한 제도가 갖춰져야 하는지에 집중한 논의가 오갔다. 정준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DTx라는 새로운 접근법에 대해 기존의 규제들이 적절한지 고민하고 있다"며 "적절하다면 규제 완화가 맞겠지만 적절치 못한다면 이에 맞는 적절한 규제를 찾아내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동규 동아대 기업재난관리학과 교수는 우선 DTx를 시장에 진입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려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해외에서는 신속한 시장 진입을 위해 다양한 제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이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독일에서 시행하고 있는 '디지털 헬스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DiGA)'을 예로 들며 "DTx는 치료 효과 데이터 확보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 이를 확보하는 12개월간 급여를 준다는 게 중요하다"며 "이처럼 신속히 사용할 수 있는 제도를 논의하는 한편 의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백종헌 의원은 "사용자의 참여가 제일 중요하다는 말이 와닿았다"며 "보건복지 분야 규제를 많이 풀어야 하는 만큼 의원실에서 열심히 노력해나가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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