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록의 뿔처럼, 바다의 산호처럼… 마법 같은 은세계의 유혹

남호철 2023. 1. 1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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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레는 눈꽃여행지 4선

이번 겨울에는 제법 큰 눈이 내렸다. 정상 부근에 눈을 이고 있는 높은 산들은 아름다운 설경으로 보는 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눈꽃여행을 즐길 수 있는 대표 산행지 4곳을 소개한다.

‘야생화 천국’ 만항재에 하얀 눈꽃

겨울산의 묘미는 눈꽃이다. 하얗게 피어난 ‘설화(雪花) 터널’을 지나면 영화 ‘겨울왕국’처럼 환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사진은 만항재 운탄고도.

강원도 정선, 태백, 영월의 경계를 이루는 만항재는 해발 1330m로, 우리나라에서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다.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는 ‘천상의 화원’이지만 겨울철에는 상고대와 눈꽃이 피어나 화려한 겨울왕국으로 변신한다. 차에서 내려 바로 눈을 밟으며 낙엽송 위에 소복하게 내려앉은 눈을 즐길 수 있고,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다. 큰 수고 없이 얻어진 풍경이 황송할 지경이다. 만항재 눈꽃을 감상하려면 이른 시간에 가는 것이 좋다. 안개가 만들어낸 상고대가 녹기 전에 가야 눈꽃을 볼 확률이 높기 때문. 만항재에서 함백산 정상까지 눈꽃산행도 좋다. 고도차가 243m 정도이고 1시간이면 닿는 거리여서 부담도 적다.

반대편으로 가면 옛날 석탄을 캐서 함백역까지 트럭으로 운반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운탄고도(運炭古道)다. 초입부는 평평한 눈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리막이 나타나면 썰매를 타는 눈썰매 트레킹도 가능하다. 속도감에 익숙해지면 스릴을 온몸으로 즐기게 된다.

수정 병풍을 두른 동화세상, 무등산

무등산 입석대.

화산활동으로 생긴 무등산은 2018년 유네스코에서 세계 지질공원으로 등재될 만큼 경관과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무등산의 가장 큰 특징은 용암이 분출되며 급속히 냉각돼 생겨난 주상절리이다. 마치 누군가 조각해 놓은 듯 높이 10여m 돌기둥 수십 개가 하늘을 찌르듯 솟아 있어 웅장한 경관을 연출한다. 특히 겨울철 눈으로 뒤덮인 주상절리와 주변 서리꽃이 빚어내는 풍경은 다른 국립공원에서는 볼 수 없어 더욱 특별하다.

입석대는 백악기 후기인 9000만년 전 화산이 폭발해 솟구쳐 오른 용암이 지표로 흘러나와 냉각되면서 생긴 오각형·육각형 주상절리(柱狀節理)대다. 장방형으로 깎은 레고 블록을 쌓아 세워놓은 성채 같다. 평소 거대한 숯 더미 같은 바위가 겨울 하얀 옷을 입으면 환상의 풍경을 펼쳐놓는다. 검은 돌기둥은 반짝이는 수정 병풍으로 변한다.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들면 이색 경치를 빚어낸다. 입석대 위 서석대도 마찬가지다. 서석대 왼편으로 정상에 오르는 길은 햇살에 반짝거리는 상고대로 은빛 터널을 이룬다.

황홀한 은세계 위 한라산 남벽

환상적인 눈꽃 세상을 펼쳐놓은 한라산 남벽.

한라산(1950m)도 겨울철에 진면목을 드러낸다. 솜이불을 뒤집어 쓴 구상나무숲과 너른 설원은 한 폭의 그림이나 다름없는 황홀경을 선사한다. 한라산의 설경은 힘들게 정상을 가지 않아도 된다. 영실에서 윗세오름을 지나 남벽까지만 갔다 와도 겨울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백록담을 보지 못하는 대신 분화구 남벽의 웅장함과 한라산의 진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초반 등산로 오른쪽으로 맞아주는 병풍바위 등 영실기암 바위들의 위용만 봐도 충분하다. 병풍바위 위쪽은 편한 길이다. 능선 길을 따라가면 허허벌판에 구상나무들이 모여 사는 군락지가 나타난다. 세찬 바람에 눈 이불을 두른 구상나무숲은 환상적인 설경을 연출한다.

윗세오름에서 남벽으로 향하는 길은 꿈결 같은 은세계다. 켜켜이 쌓인 눈마당은 바람이 부는 대로 결을 내고 빛에 따라 반짝인다. 검은 바위 틈틈이 눈을 두른 남벽은 압권이다.

곤돌라 타고 오른 덕유산 겨울왕국

노을에 물든 덕유산 중봉.

전북 무주에 위치한 덕유산은 남부 지방임에도 적설량이 많아 겨울철 많은 등산객이 찾는 대표적인 눈꽃 산행지이다. 최고봉 향적봉은 해발 1614m로 대한민국에서 네 번째로 높다. 높은 산임에도 쉽게 눈꽃을 감상할 수 있다. 덕유산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면 20여분 만에 설천봉까지 공간 이동한다. 팔각정 휴게소 상제루가 눈을 흠뻑 뒤집어쓰면 설국이 따로 없다. 이후 정상까지는 가볍게 트레킹하는 수준으로 20~25분만 오르면 된다. 추운 겨울 가족단위의 편안한 산행과 눈꽃여행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나뭇가지에 만발한 눈꽃이 순록의 뿔처럼, 바다의 산호초처럼 엉켜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한발 내디딜 때마다 순백의 향연으로 빠져든다. 눈을 뒤집어 쓴 나무들은 거대한 솜사탕처럼 보인다.

향적봉에 오르면 사방이 시원하게 트인다. 빗살무늬로 뻗은 산세는 농도를 달리하며 수묵화를 그리고 있다. 하얀 면사포를 쓴 순결한 신부의 자태를 한 설산의 풍광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향적봉에서 중봉까지는 1.3㎞ 정도. 고원지대에 펼쳐진 주목군락이 ‘천상의 풍경’을 펼쳐놓는다. 중봉에 서면 동엽령을 거쳐 남덕유로 뻗어 나가는 장쾌한 덕유산 능선을 볼 수 있다. ‘하얀 눈의 휴식처’다.

글·사진=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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