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믿음생활] 3만 울린 열일곱 소녀의 그림일기
교회를 나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가 많아진다는 말 들어보셨지요. 특히 젊은 세대 이탈이 심각합니다. 형식보단 본질을 중요한 그들에게 교회는 그저 딱딱하고 가기 어려운 공간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그 청년들이 믿음 생활을 멀리하는 건 아니더군요. 그들은 변화된 형태로 말씀을 접하고 공유하고, 교제했습니다. [슬기로운 믿음생활]에서는 지치고 지친 젊은 크리스천들에게 신선하게 말씀을 전하는 이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별빛처럼 빛나는 청춘들이 교회에 다시 가득하길 기도하며….
힘들 때 하나님을 향한 투정이나 목사님 말씀 중 좋았던 구절을 일기장에 그림으로 끄적이던 열 일곱살 소녀가 있었다. 교회 친구들이 어설프지만 솔직한 그 그림을 흘끔 훔쳐보고 “나도 그랬다”며 동감했을 때 참 기뻤던 소녀. 그는 나중에 자신의 낙서가 3만명에게 동시에 나눠지며 그들의 삶을 어루만질지 꿈에도 몰랐다. 지음(작가명·28)그림묵상 작가는 이에 대해 “모두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지음 작가는 침례신학대학에서 유아교육과를 전공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그 길이 내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 졸업 후 1년 반 만에 교사되기를 그만두고 자신이 잘하던 일을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때까지 했던 신앙 고민을 담은 묵상을 여러 사람과 나누자며 그가 통로로 택한 것은 인스타그램.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이야기다. 지음 작가는 ”그때까지만 해도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그림 묵상 작가가 10여명 정도로 많지 않았다”고 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고민을 그리고 올렸다. 손글씨든 낙서든 하루에 한 건씩 꾸준히 올리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에 팬들이 하나둘 찾아왔다.
우리의 속마음을 알아주시는 하나님을 전하고 싶어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음으로 정했다.
지음 작가 인스타그램(instagram.com/jiieum_)은 현재 3만명이 구독한다. 귀여운 그림체에 누구나 공감할 만한 주제에 많게는 1만명이 공감한다는 뜻으로 하트를 누른다. 믿지 않는, 혹은 믿음을 잃어버린 구독자가 지음 작가의 작품을 우연히 접하고 다시 믿음을 회복했다는 반응,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다. 지음 작가는 “지인 추천으로 교회에 나갔지만 모든 것이 낯설어서, 어떻게 믿는지 몰라서, 하나님 마음이 느껴지지 않다고 고백한 이가 제 그림을 보고 마음이 움직여서 다시 교회에 나가겠다고 하신다고 고백하는 순간이 가장 기억난다”고 했다.
눈 오는 날 주님과 나란히 방 안에 앉아 수다하는 그림 묵상에 지음작가가 가장 많은 하트가 달렸지만, 지음 작가가 좋아하는 작품은 따로 있었다. ‘하나님의 프레임’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지음 작가는 “남들과 비교하지 말자는 이야기인데 주님의 시선과 계획에선 모두 각기 다른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로 인간적인 비교가 의미 없다는 묵상을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댓글을 통해 비슷한 경험이 뜨겁게 오갔던 그림도 있었다. 지음 작가는 ‘잃어버린 믿음’이라는 작품에서 진심 어린 자신의 신앙 고민을 나눴고, 많은 이들이 “나도 그랬다”며 공감했다. 그는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말을 많이 하지 않냐. 그러나 저는 그 말씀이 참 모호하게 느껴졌다”며 “어느 순간 믿음을 놓쳤던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나의 믿음을 지켜주시기 위해 정말 노력을 하시는구나, 하나님도 가만히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심을 느꼈던 순간을 경험했고, 그것을 그린 것”이라고 했다.
지음 작가는 “그림과 낙서를 좋아하던 소녀가 작가라는 타이틀로 활동하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고등학교 때 배우 정려원이 그림 묵상집을 출간한 것을 보고 ‘언젠가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덧 제가 그걸 이뤘더라”라고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내 모든 것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시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2년 전 그림일기 형태의 그림 묵상집 ‘괜찮아, 내가 사랑을 들려줄게’(규장)을 펴냈다.
그의 인스타그램 독자의 70% 가까이가 30대까지의 젊은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위로받지 못한 청춘이 익명의 공간에서 서로를 어루만지는 것일까. 형식보다 본질이 중요한 요즘 젊은이에게 인스타그램 묵상은 쉽지만 확실한 위로인 건 확실해 보였다. 지음 작가는 “현실에서 깊이 있는 공감을 주고받으려면 내 삶을 공유해야 하고, 신뢰하는 공동체 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저 역시 조금 딱딱하게 느껴졌었다”며 “요즘 교회가 가족 단위, 평신도 위주의 일상을 나누는 교회로 변화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형식적인 절차를 버리고 교회가 성도 개인의 삶의 다가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림일기에서 시작한 탓일까. 그의 묵상은 누굴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장엄한 설교도, 여쭙잖은 조언도 없다. 그는 “나도 이렇게 힘들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을 이렇게 만났다 하는 제 진짜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낙서 같은 묵상 일기를 고등학교 시절부터 최근까지 10년쯤 계속한 내공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글로 혹은 말로 풀어내면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말풍선, 그림 하나로 쉽게 설명되고, 공감되기도 한다”며 “제 신앙을 위해 했던 일이고 혼자 쓰던 일기장이었는데 그런 것들이 누군가를 위로한다니 놀랍고 기쁘다”며 웃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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