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맞아? "사랑에만 결벽 떨기는" 뼈때린 '멜로판 기생충'

어환희 2023. 1. 1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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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SLL


“사람들 진짜 이상해. 물건 하나를 사도 재고 따지고 후기까지 샅샅이 따져보면서 ‘사랑’이란 감정에만 무진장 결벽을 떨어요. 속으로는 온갖 계산 다 하면서 아닌 척.”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이해(理解)하고 있을까. 이해(利害)를 따지면 사랑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일까. JTBC 수목 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뚝심 있게 이같은 질문을 던진다. 범죄·법정·복수물이 쏟아지는 요즘 드라마 판에서 보기 드문 멜로 드라마다. 잔잔하지만 꽤 현실적인 네 남녀의 어긋나는 로맨스를 그린다는 점에서 기존 정통 멜로와는 차별화됐다는 평가다.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SLL

그렇기에 드라마는 예측 가능하고 도식적인 멜로 드라마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명문대 출신의 은행 3년 차 계장 하상수(유연석)와 고졸 출신의 4년 차 주임 안수영(문가영), 같은 은행 지점 동료인 둘은 오랜 기간 서로를 지켜보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키워 간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오해가 생기고 타이밍이 어긋나면서 둘 간의 거리는 멀어져 간다.
보는 이들을 애타게 하는 둘 간의 엇갈림은 16부작 분량의 절반에 가까워져도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이들은 서브 주인공인 개인금융팀 대리 박미경(금새록), 은행 청경 정종현(정가람)과 각각 이어진다. 남녀 주인공이 크고 작은 장애물을 극복하면서 사랑의 결실을 향해 나아가는 로맨스를 기대했다면 당혹스러울 수 있는 전개다.

이 드라마의 흡인력은 '왜 두 남녀 주인공이 이어지지 못하는지'를 섬세하고 현실적으로 풀어내는 데서 나온다. 은행이라는 특수하고 제한된 공간에서 정규직·계약직이라는 계급과 학력의 차이가 어떤 입장 차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사랑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사랑에도 계급이 있다'는 뼈아픈 현실을 풀어내는 공간이 오직 돈으로 고객을 차별하는 은행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몇 초간의 '망설임'…나의 오해일까, 우리의 차이일까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SLL

“만약 그 날 약속을 지켰었다면 나랑 만났습니까?”(하상수)
"우린 결국 잘 안됐을 거예요. 너무 다르니까." (안수영)

하상수와 안수영의 엇갈림은 데이트 약속을 어기면서 시작된다. 첫 번째 데이트에서 서로의 마음을 어느 정도 확인한 이후, 하상수는 연락도 없이 두 번째 데이트에 심하게 늦어버린다. 그는 안수영과의 관계가 틀어져 버린 이유가 단순히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날 따라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서 그랬다,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하다는 하상수에게 안수영은 약속을 ‘안’ 지킨 것이라고 정정한다.
그날 허겁지겁 약속 장소로 뛰어오던 하상수가 몇 초간 망설이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끝까지 기다렸던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 나서 자리를 뜬다. 그 망설임의 이유를 알고 있는 안수영은 하상수에게 “우린 너무 다르니까 결국 잘 안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SLL


학벌·경제력·직급…계급이 만든 사랑의 벽


'사랑의 이해'는 사랑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 다름은 학벌, 경제력, 직급 등 다양한 차이로 인해 계급화 된다. 계급은 사랑 앞에서 하상수를 망설이게 하고, 안수영을 솔직하지 못하게 만든다.
안수영은 지점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지만, 4년 동안 깨달은 것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사실이다. 강남 8학군의 명문대 출신이지만 홀어머니 밑에서 악착같이 공부했던 하상수 역시 ‘금수저’ 동창들 사이에서 현실의 벽을 느낀다. 심지어 자신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하는 건설사 대표 딸 박미경은 명품을 휘감고 다니는 금수저 중의 금수저다.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SLL


하상수는 박미경과 사랑을 시작하지만, 안수영은 비슷한 처지의 경찰공무원 수험생 정종현과 연애와 이별의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앞으로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는 하상수와 안수영이 사랑을 통해 다름을 극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이를 받아들이고 평행선을 걷게 될지 여부다. 이혁진 작가의 동명 원작소설과 얼마나 다르게 전개될지 또한 흥미를 끈다.
정덕현 평론가는 드라마에 대해 “굉장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사회적인 멜로”라고 평했다. "계급·자본 등으로 인한 보이지 않는 선을 첨예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화 '기생충' 느낌이 든다"면서 "남녀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가족 같은 사적인 관계가 아닌, 빈부 격차와 지위 등 사회적 요소라는 점에서 흥미롭고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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