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해를 품에 안으며 꼬부랑길을 걸어보시죠 [단칼에 끝내는 서울 산책기]

이상헌 2023. 1. 1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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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건설환경연구소에서 출발하여 경인교대로 내려오는 길

[이상헌 기자]

북한산이 강북에 우뚝 솟아 매서운 겨울 북풍을 막아주는 흙산이라면 강남의 관악산은 수도 서울을 감싸는 병풍 역할을 하는 돌산이다. 관악산을 구성하는 세 개의 봉우리를 따라 정상에는 수직절리로 이름난 연주암이 있고 원효와 의상, 윤필 스님의 수도처로 유명한 삼성산에는 삼막사가 자리한다. 서북쪽으로 호압산 봉우리에는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 위해 세운 호압사가 널리 알려져 있다.

돌산이다보니 사람에게 회자되는 사찰 보다는 산세를 따라 흩어져 있는 30여 군데의 기암괴석이 더 볼 만하다. 이번 산책 코스는 서울대 건설환경연구소에서 출발하여 제4야영장을 거쳐 삼성산에 올라 삼막사를 둘러보고 경인교대로 내려오는 길이다.
 
▲ 관악산 봉우리 삼성산 산책길. 서울대에서 경인교대로 나오는 걷기 좋은 길.
ⓒ 이상헌
 
한눈에 코스를 파악하기 위해 지도에 표시하면 위 그림과 같다. 삼성산 정상에서 경인교대까지는 포장도로가 계속 이어지므로 산책의 첫 40여 분 정도만 산길을 걸으면 그 다음은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멋 모르는 사람은 관악산 초입부터 산책을 시작할 것이나, 글쓴이가 추천하는 길은 2호선 낙성대역 4번 출구로 나와 마을버스 관악02번을 타고 종점(건설환경연구소)에서 하차하여 오르는 길이다.

서울대 정문에서부터 시작하는 길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으므로 주말에는 피하는 것이 좋다. 빵집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서울대 안으로 들어서면 필자의 말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관악 캠퍼스는 교통수단을 타고 돌아다녀야 할 만큼 넓다.

계곡길을 따라 30여 분 오르면 평탄한 길

마을버스에서 하차하여 이정표를 따라 조금만 내려오면 계곡을 지나 제4야영장이 나온다. 콧노래를 부르며 골짜기를 오르다보면 삼성산으로 갈라지는 푯말이 나온다. 쉬엄쉬엄 30여분 쯤 오르다가 나무계단을 만나면 삼성산 정상이다. 계단이 끝나는 곳이 446봉이고 여기서부터 포장도로가 휘돌아나가며 길을 안내한다.
 
▲ 삼성산(관악산 봉우리) 정상. 삼성산 조망점에서 바라본 과천 풍경.
ⓒ 이상헌
 
삼막사로 내려가기 전에 왼쪽 길을 따라 10여 분 오르면 과천시를 조망할 수 있는 조그마한 빈 터가 있으니 온 김에 둘러보는 것을 권한다. 이 곳에서 훑어보는 경치가 제법 볼 만하다. 446봉에서 북쪽 산길을 따라 내려가면 본 연재 16화(관악산 제일의 해거름을 볼 수 있는 호암산성길)에서 소개한 호압사가 나온다. 
포장도로를 따라 반월암과 삼막사로 내려가보자. 우측으로 깊은 계곡을 마주하며 십여 분쯤 걷다보면 자그마한 암자가 나온다. 입구를 따라 세워진 시주석에는 불교의 진언 '옴 마니 받메홈'이 붉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 반월암. 시주석을 따라 계단을 따라 오르면 마애석불이 나온다.
ⓒ 이상헌
 
일종의 자기 암시라고 해석하면 될 터인데, 산스크리트어를 음차한 진언으로서 계속 되뇌이면 관세음보살의 자비로 번뇌와 죄악이 사라지고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다는 의미다. 

"전설에 의하면 이 삼성산에 원효가 삼막사(三幕寺)를, 의상(義湘)이 이막사(二幕寺)를, 윤필(尹弼)이 일막사(一幕寺)를 창건하였는데, 그 뒤 일막과 이막사는 없어지고 삼막사만 남았다고 하며, 고려 말기에 나옹(懶翁)이 이 절을 중창하고 반월암이라 하였다고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당시에는 숲이 우거져 태양과 달을 반씩만 볼 수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한낮이 되어야 해를 보고 한밤중이라야 달빛이 비췄다고 한다. 시주석을 따라 계단위를 오르면 바위에 새겨진 마애부도가 오래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석양빛이 바위를 물들이는 꼬부랑길
 
▲ 삼막사.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 이상헌
 
반월암을 나와 조금만 내려가면 삼막사다. 연원이 오래되었기에 이곳을 수행처로 삼아 거쳐간 스님이 여럿이다. 신라시대부터 조선까지 도선국사, 지공화상, 무학대사, 서산대사, 사명당 등등. 산이 상당히 높고 시야가 트였기에 경기도와 광명시 일대를 굽어볼 수 있다.

사찰 앞 빈 터의 벤치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길을 따라 경인교대 방향으로 내려가보자. 길가에 원효대사의 명언을 적은 팻말이 세워져 있어 한 편씩 읽어보며 걷는 재미가 삼삼하다.

골짜기를 서편에 끼고 포장길이 굽이굽이 이어지는데 왼쪽은 계곡의 벼랑이요, 우측은 저무는 석양빛이 암반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장쾌한 풍광은 아니지만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시구가 떠오르는 길이다. 
 
▲ 석양빛이 낮게 깔리는 산책길. 경인교대에서 삼성산 정상까지 계속된다.
ⓒ 이상헌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이 골짜기를 따라 걷는 길은 사계절 어느 때에 찾아도 좋다. 봄이면 물 오르는 초목산천을 배경으로 아지랑이가 몰랑몰랑 올라오는 길을 거닐어 볼 수 있다. 한여름 날에는 시원한 산들바람과 함께 하며 붉은 단풍이 길을 안내하는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언제나 타는 저녁 놀을 볼 수 있다.
 
▲ 삼성산 산책로. 구절양장 꼬부랑길이 계속 이어진다.
ⓒ 이상헌
 
▲ 삼성산 포장길. 소방도로를 타고 삼성산 정상까지 갈 수 있다.
ⓒ 이상헌
 
거리로는 약 4km이니 천천히 걷는다 치면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구절양장 꼬부랑길을 타고 20여분 쯤 내려오면 경인교대 앞 삼막천까지 약 500m에 달하는 직선길이 나온다. 내려갈 때도 좋지만 올라오는 방향에서 보면 높낮이가 상당하여 옛날 로드 무비의 한 클리셰를 느껴볼 수 있다.
멀리 포장길을 따라 등산객의 머리 윤곽이 보이는 듯 하더니 이어서 상체가 드러나고 경쾌한 발걸음을 내딛는 전신이 시야에 들어오는 장면.
 
▲ 지는 해를 품에 안으며 꼬부랑길을 걸어보시죠 ⓒ 이상헌

한편, 삼막사 갈림길에서 염불사로 내려가는 코스도 추천한다. 10여 분 정도 내려가면 염불사가 나오고 여기서부터 안양유원지까지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거리는 대략 2km 정도이며 경인교대 방향과는 달리 숲속길을 따라 걷는 맛이 괜찮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윤슬처럼 빛나며 잔그늘을 만들어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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