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탄핵 불복' 시위 사망 47명으로…“남미 민주주의 시험대”
중남미 국가 페루에서 반정부 시위로 하루 새 최소 18명이 사망하는 등 유혈 사태가 격화하고 있다고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시위대는 지난 달 체포된 페드로 카스티요(53) 전 대통령의 석방과 조기 대선을 요구하고 있다.
NYT에 따르면 전날(9일) 페루 남동부 푸노 지방의 훌리아카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해 민간인 최소 17명과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 당했다. 페루 정부는 “이날 오후 3시쯤 약 9000명의 시위대가 훌리아카 국제공항을 장악하기 위해 사제총과 폭발물 등으로 경찰을 공격하면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인권 단체는 “경찰이 무리한 진압을 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제니 다도르 페루인권단체연합(NCHR) 사무국장은 NYT에 “페루 정부가 민간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무력을 사용했다”며 “이번 일은 학살에 가까웠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빅토르 로하스 내무장관은 “폭도들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해 경찰이 법적 한계 내에서 행동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부는 푸노 지역에 10일부터 사흘 간 오후 8시 이후 야간 통행 금지령을 발령했다.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 격인 페루 국가옴부즈맨 집계에 따르면 지난 달부터 이어진 반정부 시위로 이날까지 민간인·경찰 등 47명이 사망했다. 시위는 푸노 외에도 남부 안다우아일라스·코타밤바스 등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정치 경험이 전무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빈자의 대통령’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2021년 7월 당선됐다. 장기화된 페루의 빈곤과 불평등 타파, 부정부패 척결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정작 취임 후 자신의 부패 혐의가 불거지면서 지난해 9월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뇌물수수·마약 밀매 연루 등 6가지 혐의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게 됐다. 의회는 그에 대한 탄핵을 추진했다.
이에 카스티요는 지난 달 7일 “의회를 해산하고 비상 정부를 구성한다”며 통행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카스티요의 선언에 대해 즉시 위헌 결정을 내렸고, 검찰이 카스티요를 반란 혐의로 체포하면서 그의 시도는 쿠데타로 규정됐다. 대통령직은 부통령인 디나 볼루아르테가 승계했다.
카스티요가 구금되자 지지자들은 “카스티요를 풀어주고 조기 선거를 열라”며 시위에 나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주로 농촌 지역의 빈곤 계층이 그의 지지 세력이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카스티요의 지지율은 수도 리마에선 19%까지 급락했지만, 농촌 지역은 45%로 높게 유지됐다. 카스티요의 대선 결선투표 득표율(50.13%)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볼루아르테 정부는 2026년으로 예정된 총·대선을 2024년 4월로 앞당기는 법안을 의회에 회부하겠다고 밝혔다. 페루는 최근 6년 동안 대통령이 여섯 차례 바뀌는 등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NYT는 “카스티요의 의회 해산 시도는 연약한 페루의 민주주의를 수년 만에 가장 큰 정치적 위기에 빠뜨렸다”면서 “브라질에서 일어난 의회 습격 사건과 더불어 남미의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이 심각한 민주주의 위협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앞서 브라질에서는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 수천 명이 8일 의회와 대통령궁, 연방 대법원을 습격하는 소요 사태가 벌어졌다. 페루와 국경을 맞댄 볼리비아에서도 주요 야당 인사가 연방 정부에 의해 체포되면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는 등 혼란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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