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리와인드(66)] ‘더 글로리’ 복수극에서도 통했다…김은숙 작가의 마법
<편집자 주> 작가의 작품관, 세계관을 이해하면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매 작품에서 장르와 메시지, 이를 풀어가는 전개 방식 등 비슷한 색깔로 익숙함을 주기도 하지만, 적절한 변주를 통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의외의 변신으로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현재 방영 중인 작품들의 작가 필모그래피를 파헤치며 더욱 깊은 이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김은숙은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등 굵직한 히트작들을 남기며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국내 대표 스타 작가다. 지난 2003년 SBS 드라마 ‘태양의 남쪽’으로 데뷔한 김 작가는 이듬해 ‘파리의 연인’으로 50%가 넘는 초대박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단번에 스타 작가 반열에 올랐었다.
이후 ‘시티홀’, ‘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 ‘태양의 후예’,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이하 ‘도깨비’), ‘미스터 선샤인’, ‘더 킹: 영원의 군주’(이하 ‘더 킹’) 등 실패 없는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조금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특유의 말맛이 살아있는 달달한 대사들로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며 멜로 장르에서 강점을 보여왔다.
현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를 통해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시청자들에게도 호평을 받으며 순항 중이다.
◆ 멜로부터 시대극, 복수극까지…김은숙 작가가 넓히는 장르 스펙트럼
김 작가를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르게 했던 ‘파리의 연인’은 까칠한 재벌 2세 남자와 평범한 여자의 사랑을 담은 작품이었다. 파리에서 공부하던 가난한 유학생이 재벌 2세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다 사랑을 키워나가는, 신데렐라형 스토리의 정석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대신 꿈꾸던 판타지를 적절하게 충족하면서 어렵지 않게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었고, 이것이 ‘파리의 연인’만의 매력이 돼 뜨거운 반응을 얻었었다.
이후에도 김 작가의 강점은 ‘로맨틱 코미디’였다. ‘시크릿가든’에서는 무술감독을 꿈꾸는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 분)과 까칠한 백만장자 백화점 사장 김주원(현빈 분)의 로맨스를, ‘상속자들’에서는 재벌가에서 자란 10대 고교생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시청자들에게 설렘을 선사했다.
다만 돈 많고, 능력은 좋지만 까칠한 남자 주인공과 가난하지만 씩씩한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면서 ‘유치하다’, ‘뻔하다’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물론 그 안에서 두 사람이 쌓아가는 사랑의 감정을 짜임새 있게 담아내면서 ‘알고 봐도 재밌는’ 흥미만큼은 분명하게 선사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는 못한다는 평을 받기도 했던 것.
그러나 김 작가가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드라마계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시대의 흐름에 적절하게 발을 맞추며 작품의 소재, 메시지를 확대해 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지난 2018년 방송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사례를 꼽을 수 있다. 신미양요(1871년) 때 군함에 승선해 미국에 떨어진 한 소년이 미국 군인 신분으로 자신을 버린 조국인 조선으로 돌아와 주둔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이 드라마에서 일제강점기 직전의 시대상 안에 청춘들의 사랑, 우정 이야기를 녹여내면서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넓혔던 것. 주인공 애신(김태리 분)과 유진 초이(이병헌 분)가 나누는 사랑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적 사실을 담아내는데 방점을 찍었었다.
살아남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군이 돼 조선에 돌아온 유진 초이부터 조선 최고 사대부의 영애이지만 조선을 위해 총을 들고 싸웠던 고애신(김태리 분), 그리고 결국에는 함께 연대해 일본에 맞섰던 구동매(유연석 분), 쿠도 히나(김민정 분), 김희성(변요한 분)까지. 그 시기 청춘들의 고뇌와 갈등을 통해 가슴 아픈 역사를 되짚었던 것이다.
김 작가의 첫 장르물 도전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더 글로리’에서는 한 편의 애틋한 복수극을 긴장감 넘치게 그려나가며 호평을 받고 있다.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끔찍한 폭력을 당한 주인공 동은(송혜교 분)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수년에 걸쳐 복수를 계획하는 과정을 파트1에 담아내면서 ‘김 작가도 장르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자연스럽게 상기시키고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 봤다’는 평을 받으며 장르물로서의 완성도를 인정받은 것은 물론, 태국에서는 이 드라마를 통해 학교폭력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며 잇따른 폭로, 사과가 이어지기도 했다.
◆ 아름다운 대사로 매혹하는 김은숙 작가, 장르 달라져도 ‘인장’은 뚜렷
멜로 장르 안에서는 달달하고, 또 애틋하게 설렘을 유발했던 김 작가 특유의 대사들이 새 장르를 만나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김 작가의 첫 시대극으로 이목을 끌었던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특유의 은유, 비유를 통해 로맨스는 물론, 시대상을 애틋하게 반영해 여운을 남겼었다. 자신의 신분을 알고 힘들어하는 애신을 향해 유진 초이가 “이 세상에 차이는 분명 존재하오. 힘의 차이. 견해 차이. 신분의 차이. 그건 그대의 잘못이 아니오. 물론 나의 잘못도 아니고.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만나진 것뿐이오”라고 위로하는가 하면, “전쟁을 해보면 말입니다. 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어떤 여인도, 어떤 포수도, 지키고자 아등바등한 조선이니, 빼앗길지언정 내어주진 마십시오”라고 촌철살인 조언을 남기는 등 격변의 조선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면서 듣는 이들의 공감을 끌어내곤 했었다.
‘더 글로리’에서도 김 작가 특유의 명대사가 복수극에 색다른 결을 부여하는 핵심이 되고 있다. 바둑을 복수의 도구로 삼는 동은이 “바둑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집이 더 많은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다. 자기 집을 잘 지으면서 남의 집을 부수면서 서서히 조여 들어와야 한다. 침묵 속에서 맹렬하게”라며 앞으로의 상황을 비유, 시청자들 사이에서 회자가 되고 있다.
또는 학교폭력을 ‘실수’라고 표현하는 가해자를 향해 “이런 걸 잘못이라고 하는 거야, 스튜어디스 혜정아. 다 알면서 하는 거, 다치라고 하는 거, 네가 매일매일 나한테 한 거”라고 응수해 ‘사이다’라고 호평을 받는 등 각종 명장면, 명대사들이 온라인상에서 호응을 얻으며 ‘과몰입’을 끌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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