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폭식증 청소년
15세 여학생 L은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괴로워하더니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주변에서 예뻐졌다는 말을 듣고 다이어트에 더 집착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밤이 되면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폭식한 후에 남몰래 화장실에서 토해버렸다. 폭식 장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체중을 체크하지만, 몸무게는 오히려 늘어간다.
요즘 여자아이들이 초경을 시작하고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통과의례처럼 시작하는 게 다이어트다. 자신의 욕구나 감정보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평가될지, 사랑받을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춰 외모, 특히 체중에 집착한다. 텔레비전이나 영화, 광고, 인터넷 등에 나오는 스테레오 타입화된 여성의 이미지는 그들에게 마른 체형을 강요한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도 알게 모르게 뚱뚱한 몸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긴다.
작은 체중 변화에도 일희일비하며 모든 감정과 심리 상태에 눈을 감아 버리고 체중에만 더 집착하게 된다. 이들은 탄수화물이나 지방은 ‘절대 안 돼’, 식품마다 칼로리를 계산해 일정 칼로리 이상은 ‘절대 안 돼’ 등 먹는 것에 자기 나름의 강고한 규칙을 만든다.
다이어트로 인한 지나친 칼로리 제한은 신체적·심리적 박탈감을 유발한다. 이런 박탈감은 종일 음식 특히 금지된 음식에 대한 갈망을 유도하고 뇌의 포만중추를 마비시켜 조절력을 잃게 한다. 마음의 허기와 신체적 허기를 구별하기 힘들게 하며 규칙적인 식사 행동을 방해한다. 제한했다가 갑자기 3~4인분 이상 때로는 10인분 정도의 양을 한꺼번에 먹는 폭식을 하게 된다. ‘폭식증의 악순환’ 고리가 시작되는 거다.
폭식하는 순간 살찌는 것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으로 L과 같이 일부러 구토하거나, 심지어 하제를 사용해 설사를 해버리기도 한다. 이런 보상행동은 남몰래 하기 때문에 가족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비정상적 행동이 시작되면 학교에서 급식도 거르고 친구를 만나는 것, 심지어 가족들과도 거리를 두고 식사를 함께하려 하지 않아 사회적 고립을 자초해 외로워진다. 외로움으로 인한 정서적 허기와 신체적 허기를 혼동해 폭식은 더 심해지고 또래 관계, 학습 등 이 시기에 중요한 일들은 모두 뒷전이 된다. 머릿속은 오로지 ‘다이어트. 음식, 체중’으로 가득 찬다.
이런 아이들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시야를 넓혀 자신의 현재 상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돕는 거다. “네가 무엇을 얼마나 먹고, 몇 칼로리를 먹는지 등 지엽적인 것에 집착한 나머지 큰 그림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단다. 즉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것이지” “체중 자체보다 너의 삶, 행복이 중요한 건 아닐까”라며 먹는 것이나 체중이 전부가 아니며 다른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알도록 도와줘야 한다.
모든 생명체는 살기 위해 연료가 필요하므로 인간은 먹어야 살 수 있다. 먹고 안 먹고는 인간이 선택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준 후 식사 규칙을 바꿔 간다. 규칙적인 세 끼 식사를 꾸준히 하고, 중간에 하루 두 차례 간식을 먹게 한다. 이렇게 하면 극도의 배고픔을 느끼지 않아 오히려 폭식이 줄고 체중에도 큰 변화가 없다. 이를 납득시켜야 한다. 시시때때로 체중을 재는 것이 의미 없음을 이해시켜야 한다. 체중이란 식사 후의 시간이나 배변 여부, 수분 섭취에 따라 수시로 바뀔 수 있다. 불안해도 주 1회만 일정한 시간에 재도록 한다.
그동안 절대로 금기시했던 음식, 지방이나 탄수화물이 포함된 음식에도 적당량 도전을 해 음식을 골고루 균형 있게 먹도록 한다. 구토하거나 하제를 사용하면 배가 꺼지는 느낌이 들어 일시적으로 안심을 시키지만, 장을 통과한 음식의 칼로리가 이미 흡수된 상태임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준다.
자기만의 규칙을 깨는 것은 아이를 극도로 불안하게 할 수 있다. “밥 먹고 나면 네가 얼마나 불쾌하고 불편한지 잘 안다. 우리 같이 대화하면서 30분만 버텨볼까”라는 식으로 식사 후 불안감에 공감해주고 산책이나 게임, 놀이, 즐거운 대화를 하면서 같이 있어 주면 불안도 감소하고 구토 등도 막을 수도 있다.
이호분(연세누리정신과 원장, 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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