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매장에 떨어진 남의 지갑 내거라고 하고 가져가면 사기"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다른 사람이 매장에서 잃어버린 지갑을 자기 지갑이라고 주인에게 말하고 가져간 경우 절도죄가 아닌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절도(주위적)와 사기(예비적) 혐의로 기소된 A씨(54)의 상고심에서 사기죄 유죄를 인정,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이 주위적 공소사실인 절도죄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원심에서 추가된 예비적 공소사실인 사기죄를 유죄로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원심의 판단에 사기죄와 절도죄의 구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A씨는 2021년 5월 16일 서울 종로구의 한 매장에 우산을 사러 갔다가 매장 바닥에 떨어진 지갑을 주은 매장 주인이 "이 지갑이 선생님 지갑이 맞느냐?"고 묻자 "내 것이 맞다"고 대답하고, 매장 주인으로부터 지갑을 건네받아 나온 혐의(절도)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A씨가 가져간 지갑에는 다른 사람의 신분증, 신용카드, 현금 5만원권 1장 등이 들어있었다.
재판에서 A씨는 자신의 지갑으로 착각하고 가져갔을 뿐 남의 지갑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뒤 반환하기 위해 우체통에 넣었고, 지갑 안에 현금이 있었는지도 몰랐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지갑은 평소 몸에 지니고 수시로 사용하는 물건인 점 ▲매장 주인이 물었을 때 A씨는 이미 우산 값을 계산한 뒤 자신의 지갑을 가방에 넣은 상태였던 점 ▲A씨의 지갑과 매장 주인에게 받아간 지갑은 서로 색상과 소재가 달랐던 점 ▲지갑을 건네받고 바로 매장을 뛰어나간 점 등을 근거로 A씨의 주장을 배척하고 절도죄 유죄를 인정,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2심 법원 역시 A씨가 불법영득의 의사로 남의 지갑을 가져갔다는 점은 인정했다.
다만 A씨의 행위를 절도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사기로 볼 것인지가 쟁점이 됐다.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며 자신의 지갑으로 오인해 가져갔던 것이라는 주장 외에 "매장 주인의 '처분행위'를 매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사기죄는 몰라도 절도죄는 성립할 수 없다"고 1심 판결에 대한 법리오해 주장을 했다.
사기죄가 기망에 속아 착오에 빠진 처분권자의 '처분행위'를 성립요건으로 하는 반면 절도죄는 물건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의 의사에 반해 물건의 점유를 배제하고 자신의 점유로 옮기는 '절취'가 구성요건이다.
그런데 사기인지 절도인지 애매한 경우들이 있는데 바로 기망을 점유 탈취의 수단으로 사용한 '책략절도' 사례들이다.
가령 금은방에서 반지를 살 것처럼 주인을 속여 반지를 건네받은 뒤 화장실에 갔다 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반지를 가져간 경우나 결혼식장에서 마치 축의금을 접수하는 사람인 것처럼 속여 하객들로부터 축의금을 받아 가로챈 경우 대법원은 사기죄가 아닌 절도죄를 인정했다.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피기망자(속은 사람)의 재물에 대한 최종적인 '처분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금은방 주인이나 하객들이 반지나 축의금을 온전히 넘긴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한편 검사도 이 같은 점을 고려해 항소심에서 예비적 공소사실로 '사기' 혐의를 추가하는 공소장변경을 신청해 법원의 허가를 받았다.
2심 재판부는 A씨에게 절도죄는 성립할 수 없다며 절도죄 무죄를 선고하고, 사기죄 유죄를 인정했다. 다만 양형은 1심이 선고한 벌금 50만원을 그대로 유지했다.
재판부는 "절도죄란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자기 이외의 자의 소유물을 점유자의 의사에 반해 그 점유를 배제하고 자기 또는 제3자의 점유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며 "반면에 사기죄는 타인을 기망해 착오에 빠뜨리고 그로 인해 피기망자가 처분행위를 하도록 유발해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얻음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라고 전제했다.
이어 "피해자가 매장에 두고 온 지갑은 매장 주인의 점유에 속한다고 봄이 상당하고, 피고인이 자신을 지갑의 소유자라고 착각한 주인의 행위를 이용해 그 지갑을 취득한 이상 이를 두고 피고인이 탈취의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워, 피고인의 이 사건 당시 행위를 피해자의 재물을 절취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또 재판부는 "매장 주인은 고객이었던 피해자가 놓고 간 물건을 습득한 자로서 적어도 이를 피해자 또는 소유자에게 반환할 수 있는 권능 내지 지위에 놓여져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피기망자인 매장 주인의 의사에 기초한 교부 행위를 통해 피고인이 지갑을 취득한 이상 이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며 사기죄 유죄를 인정했다.
대법원 역시 이 같은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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