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무주택자를 위한 나라는 없나

차완용 2023. 1. 1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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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없으니 바보가 되는 세상이네요." 최근 취재 도중 만났던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의 세입자 김 모씨(45)가 한 말이다.

김 씨는 집주인의 말을 들으면서 오히려 집주인이 아닌 자신에게 화가 치밀었다고 한다.

김 씨는 "세상은 집을 사라고 강권하고 있다"며 "부동산 시장이 다시 살아나면 또 세입자는 전셋값 인상을 걱정해야 하고, 가격이 떨어지면 깡통 전세 등 사회적 시스템의 피해자가 되는 구조"라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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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차완용 기자] "집이 없으니 바보가 되는 세상이네요." 최근 취재 도중 만났던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의 세입자 김 모씨(45)가 한 말이다. 아내와 맞벌이하며 자녀 2명을 두고 있는 김 씨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4년째 거주 중이다. 입주할 당시 3억8000만원이던 보증금은 2년 전 재계약하며 5억원으로 올랐다.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당시 집주인은 주변 전세 시세보다 2000만원 정도는 더 싼 가격이라면서, 생색내듯 보증금 1억2000만원 인상을 요구했다. 부담이 커 조금만 낮춰달라고 사정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어려우면 다른 집을 알아봐라"는 말 뿐이었다고 했다. 김 씨는 자녀가 막 중학교에 입학했고, 인근에 거주하는 편찮으신 홀어머니도 걱정이라 제2금융권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겨우 마련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현재, 4월 전세 만기일을 앞두고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다. 자신이 다른 곳에 투자해 돈이 묶인 상황이니 웬만하면 그대로 계약을 연장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선심 쓰듯 불편한 점이 있으면 수리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 전세 시세가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낮추자는 이야기는 없었다.

김 씨는 집주인의 말을 들으면서 오히려 집주인이 아닌 자신에게 화가 치밀었다고 한다. 전셋값이 오를 때는 돈을 못 내면 나가라는 말을 듣게 되고, 전셋값이 내려갈 때도 집주인이 가격을 내려주는 선처를 기대해야 하는 처지가 서러웠다. 집을 사지 않은 자신이 죄인이라면서 말이다.

결국 김 씨는 고심 끝에 재계약을 안 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기회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더라도 내 집 마련을 하겠다는 결심도 했다. 김 씨는 "세상은 집을 사라고 강권하고 있다"며 "부동산 시장이 다시 살아나면 또 세입자는 전셋값 인상을 걱정해야 하고, 가격이 떨어지면 깡통 전세 등 사회적 시스템의 피해자가 되는 구조"라고 항변했다.

김 씨뿐만이 아니다. 매번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때마다 전세 사기, 역전세난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피해는 세입자에게 돌아가는 일이 반복된다. 전세라는 제도 자체가 세입자에게 불합리 한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세 제도에 대한 안정 정책은 전무하다시피하다.

최근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서라며 다주택자를 시장에 들어오게 하기 위한 규제 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부동산 시장의 거래 침체가 심각한 만큼 이해되는 부분이 있지만 이런 정책은 나중에 전세 시장을 흔들 가능성이 높다. 다주택자들이 부동산 시장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갭 투자가 전제돼야 하는데, 결국 세입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밖에 없다.

김 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들었던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집주인이 우위인 세상, 사회적으로도 집이 없으면 약자가 되는 세상"이라는 말이 귓가를 맴돈다. 대다수의 집 없는 세입자들이 느끼고 있는 무너진 부동산 시장에 신뢰를 줄 수 있는 정책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차완용 기자 yongch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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