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그들의 진짜 얼굴을 알고 싶다

한승주 2023. 1. 11.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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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과 딴판인 증명사진으론
범죄 예방, 제보 받기 어려워
흉악범 신상공개 실효성 없어

미국과 일본은 '머그샷' 공개
피의자 인권보다 알 권리 중요
국회는 관련 법 개정해야

'제시카법' 한국 적용 무리면
성범죄자 주소·얼굴 정보라도
정확하게 공개하는 게 마땅

택시 기사와 동거녀 연쇄살인 피의자 이기영(31). 신상공개가 됐지만 우리는 그의 진짜 얼굴을 알지 못한다. 경찰이 제공한 건 언제 찍었는지 모를 그의 운전면허증 사진이다. 적당히 보정된, 흔히 볼 수 있는 얼굴이다. 이기영을 아는 이들은 그 사진이 실제 모습과 너무 달라 길에서 마주쳐도 알아볼 수 없을 거라고 한다. 그는 언론사 포토라인에 서서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패딩 점퍼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고개를 숙였다. 눈만 겨우 보였다. 신당동 스토킹 살인사건 피의자 전주환이 공개한 건 ‘뽀샵’이 심한 선한 눈매의 증명사진이었다. 포토라인에서 찍힌 매서운 인상의 실물과는 전혀 달랐다. 미성년자를 성착취한 ‘n번방’ 조주빈의 실물도 처음 공개된 앳된 증명사진과는 차이가 크다.

2010년 4월 흉악범죄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가 도입됐지만 한계가 있다. 피의자는 경찰에 구금되면 ‘머그샷’이라 불리는 사진을 찍는다. 가장 최근 촬영된, 실물과 근접한 모습이다. 하지만 머그샷은 피의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공개할 수 없다. 대신 신분증 사진이 공개된다. 포토라인에 선 피의자의 모자나 마스크를 강제로 벗기는 것도 안 된다. 인권보호 차원이다. 이게 맞는 것일까.

신상공개를 하는 이유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재범을 막기 위해서다. 범죄를 예방하고 수사에 필요한 제보를 받으려면 피의자의 얼굴이 정확히 공개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물과 딴판인 사진으로는 효과가 없다. 신상공개의 실효성이 없는 것이다. 미국은 대부분 주에서 머그샷 공개가 의무다. 경미한 범죄 피의자의 얼굴까지 전부 공개된다. 일본도 강력 범죄 피의자의 머그샷을 공개한다. 미국과 일본이라고 피의자의 인권이 중요하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그보다는 국민의 알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최근 5년간 흉악범죄는 2만8822건에 달했지만 그중 신상공개 결정이 내려진 건 28건뿐이다. 흉악범 중에서도 가장 흉악한 약 0.1%만 얼굴과 이름이 공개된 것이다.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머그샷 공개를 신중히 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한다. 하지만 0.1%에 해당하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고 타인의 인권을 짓밟은 이들이 과거 보정된 사진 뒤에 숨어 자신의 인권을 주장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신상정보공개위원회에서 신상공개를 결정했다면 이들에 한해서라도 머그샷 공개는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과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흉악범 신상공개 때 실물에 가까운 사진을 공개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이번 기회에 법 개정까지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참에 성범죄자의 얼굴 공개도 제대로 해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성범죄자 알림e’라는 사이트가 있다. 이곳에서 집 주변 성범죄 전과자의 주소와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미성년 자녀가 있는 집에는 우편으로 정보가 제공되지만 그 외는 직접 사이트에서 확인해야 한다. 2020년 말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 출소 소식에 그 동네 주민들이 밤잠을 못 이루며 항의했던 일을 기억한다. 성범죄자가 우리 집 근처에 산다면 얼마나 불안할 것인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이 사이트다. 그런데 여기에 공개된 성범죄자의 얼굴과 주소가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사진은 몇 년 전에 찍은 것이고, 실제로 주소지에 찾아가면 집 대신 동물 우리가 있는 곳도 있을 정도다. 성범죄자는 1년에 한 번씩 경찰에 가서 사진을 새로 찍어 업데이트해야 한다. 그런데 나타나지 않고 주소지에서도 사라져 버린다. 지난해 8월 기준 신상정보 등록 대상자 중 소재 불명인 성범죄자는 129명이다.

미국에는 ‘제시카법’이 있다. 2005년 당시 9살이던 제시카가 강간을 당한 뒤 끔찍하게 살해됐다. 범인은 성범죄 전력이 있는 옆집 남자였다. 제시카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이웃에 있는 줄 알았다면 여기로 이사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절규했다. 이후 미국에선 아동 성범죄자들이 학교 등으로부터 약 600m 이내에는 거주할 수 없도록 법으로 못 박았다. 땅덩어리가 좁고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이를 똑같이 적용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성범죄자의 정보공개만큼은 정확하게 이뤄져야 하지 않겠나. 주소가 다르고 얼굴을 잘 알아볼 수 없다면 있으나 마나 한 제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들의 진짜 얼굴을 알고 싶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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