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교육개혁, 결국은 ‘사람’이다

2023. 1. 11.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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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개혁·교육개혁·연금개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가운데 교육개혁에 대하여 부분적으로나마 몇 가지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교육의 목적은 개인의 자기 계발을 도와주고 동시에 국가 미래를 이끌 인력을 육성하는 데 있다. 과거 한국경제 성장의 주역은 산업화 맞춤형 인재들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 핵심 인력은 유연하고 창의적인 인재들이다. 우리의 교육이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창의적인 인재들을 육성하기 위해 초중등 및 대학교육은 어떻게 개혁해야 할까.

초중등교육은 지식 위주의 ‘智〉德〉體’에서 ‘체(體)’ 우선의 ‘體〉德〉智’로 전환해야 한다. 17세기 영국의 사상가 존 로크(John Locke)는 300여 년 전 영국의 교육철학과 교육제도 및 교육정책의 기초가 된 『교육론』(1693) 제1장 ‘신체의 건강에 대하여’에서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란 말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상태를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갈파했다. 미국에서도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첫 번째로 배려하는 것이 건강과 안전이며, 방과 후 동아리 활동은 대부분 스포츠다. 우리나라 교육도 초기에 “교육의 셋(체육, 덕육, 지육) 중 (하나를) 취해야 한다면 덕과 지혜를 버리고 차라리 체육을 취할지로다”(『대한매일신보』 1908년 2월)라며 ‘체(體)’ 우선의 교육을 강조했었다.

「 초중고,‘지·덕·체’서 ‘체·덕·지’로
대학, 창의교육 위해 정원 줄여야
기초교육 강해져야 창의력도 커져
계층별·지역별 균형 강화 필요성

‘체(體)’ 우선의 교육 전환을 통해 학생들이 일찍이 체력을 증진하고 건강하게 자라서 창의적 인재와 사회공동체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또한 새로운 도전을 통해 자신감과 융통성을 겸비함으로써 낯선 상황이나 위기에 적응하는 능력과 역경을 극복하는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

이러한 자질을 길러 주기 위해 초중등교육에서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지식은 언어다. 특히 모국어는 목수가 마음먹은 것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연장통과 같기 때문에 평생 읽고, 말하고, 쓸 언어를 잘 가르쳐야 한다. 언어에 대한 지식이 해박할 때 명료한 사고를 할 수 있다. 명료한 사고는 설득력 있는 추론, 사상체계 형성, 그리고 하나의 문화 형성으로 연결된다. 활력이 넘치는 문화 없이는 어느 사회도 일류 제도를 갖추고 번창할 수 없다.

대학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새로운 지식과 기술 창조의 시대적 요구에 맞추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초교육을 강화해 대학에서 배운 전공지식의 직접 용도가 다 해도 새로운 환경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스스로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그렇다고 암기의 중요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개념이나 공식의 암기는 모든 학문의 첫걸음이다. 창의력에 더해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과 건강한 시민의식, 남을 배려하고 다양한 가치를 인정할 줄 아는 인간적 품성, 세계를 보는 폭넓은 시야 등도 길러줘야 한다.

창의적 사고에는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가 필수적이다. 대학을 지식의 전달자로부터 지식의 창조자로 변화시키는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다. 그리고 그것을 자극하는 것은 폭넓은 간접경험이다. 서울대학교는 지난 19년 동안 신입생의 3분의 1 정도를 전국에서 골고루 선발하는 지역균형선발제를 시행해왔다. 이 제도는 학생들과 교수진 모두의 간접경험을 풍요롭게 함으로써 창의력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조화와 균형 감각을 키워줄 수 있다. 미국의 많은 대학처럼 우리 대학들도 지역균형, 더 나아가서 계층균형까지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시급한 현안인 대학 진학의 계층별·지역별 기회 불평등 문제를 완화함으로써 ‘교육 계층 사다리’의 복원에도 기여할 것이다.

또한 창의적 대학교육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대학의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 학생이 너무 많으면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학생들이 창의적인 학습과정을 체험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 수동적인 교육만 받은 학생들이 장차 사회에 진출했을 때 역동적인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국의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등은 신입생이 1500~2000명 정도밖에 안 된다. 한국의 주요 대학에서는 3000~4000여 명 입학은 보통이고, 한때는 6000~7000 명이 들어온 적도 있었다. 큰 대학들은 학생 수를 과감히 줄여야 한다.

이러한 대학교육 개혁에는 대학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함께 정부와 사회의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다. 특히 재정상태가 열악한 지역대학은 지역 발전과 연계한 육성 프로그램이 꼭 필요하다. 다만 퇴출을 원하는 대학에게는 지역에 관계없이 퇴로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끝으로 대학은 누구를 뽑아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확실한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 대학은 투자를 토양으로, 자율을 공기로 발전한다고 하지 않는가.

오늘날 디지털 전환과 함께 컴퓨터와 인터넷이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 그러나 여전히 모든 문제의 시작과 끝은 ‘사람’이다. 참된 인간교육을 정착시키고 국가 경제도 발전시키기 위한 백년대계가 절실한 이유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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