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 네번 봤다” 아바타 뚫고 흥행한 일본영화 둘
“‘아바타:물의 길(아바타 2)’과 ‘영웅’이 저희 타깃인 10대 여성에게 영향을 줄까? 틈새 공략에 확신이 있었죠.”
지난 9일, 개봉 41일만인 80만 관객을 돌파한 일본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이하 오세이사)를 수입한 미디어캐슬 강상욱 대표 말이다. 블록버스터가 장악한 연말연시 극장가에서 ‘오세이사’는 마니아층을 공략한 최루성 판타지 멜로로 깜짝 흥행했다. “(관객) 20만이면 손익이 맞을 것”이라는 수입사 예측보다 4배 많은 관객이 들었다. 메가박스 실관람평에는 “네 번째 보는데 재밌으면서 슬프다” “(원작)소설을 보고 나서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 같은 글이 올라왔다. 평점(10점 만점)도 메가박스 8.8점, CGV·롯데시네마 9점대다.
지난 4일 개봉한 일본 농구 만화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기세도 매섭다. 1990년대 원작 만화책의 추억을 간직한 30·40대 남성 팬을 중심으로 개봉 첫 주부터 N차 관람객이 잇따랐다. 6일 만에 46만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해 말 시사부터 관객 사이에 “마스크가 (눈물로) 젖을 만큼 감동했다”는 말이나, 극장 불이 켜질 때쯤 슛 동작을 하는 관객이 있었다는 목격담 등이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트)으로 돌았다.
배급사인 NEW 류상헌 유통전략팀 팀장은 “개봉일 좌석 판매율이 ‘아바타2’와 동일한 23.3%였다. 2주차 주말까지 90만 관객을 예측한다”며 “원작의 파급력, 완성도 높은 영화의 힘, 팬덤이 더해져 호응이 기대 이상”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마니아 취향 영화가 극장가 효자상품으로 부상했다. 2억2000만명대였던 연간 관객 수가 코로나19 영향으로 2021년 6000만명대까지 급감했다. 그런데도 그해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무한열차편’(누적 215만 관객)이 예상 밖에 흥행했다. 표심이 얼어붙은 가운데도 충성도 높은 마니아 관객들은 꾸준히 극장을 찾은 결과로 풀이된다.
‘아바타 2’ ‘탑건:매버릭’ ‘한산:용의 출현’ 같은 대작이 반드시 영화관 대형 스크린, 양질의 사운드 시스템 등으로 봐야 하는 작품으로 꼽혔다면, ‘마니아 관객이 극장에서 꼭 보고 싶은 작품’은 따로 있었다는 의미다. 정태민 메가박스 마케팅팀장은 “특정 세대, 관객층이 공감하는 콘텐트가 선전하면서 영화관 상영작도 양극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슬램덩크’처럼 ‘오세이사’도 원작이 있다. 일본 작가 이치조미사키가 제26회 전격소설대상(2019)에서 460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미디어웍스 문고상을 수상한 동명 데뷔작이다. 강상욱 대표는 “이 소설이 한국에서 일본보다 많은 40만부 정도 팔렸다. 그래서 원작 독자층을 목표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일본 실사영화는 잘 안 되는 편이지만, ‘오세이사’는 로맨스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2017, 누적 18만 관객)의 미키 타카히로 감독이 연출하고,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2017, 누적 46만 관객)의 츠키카와 쇼 감독이 각본에 참여했다. 이들이 흥행 코드를 잘 살릴 거로 보고 지난해 6월 일본 개봉 전에 수입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영화가 인기를 끌며 원작 소설도 교보문고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4위(지난 3일)까지 역주행했다.
‘오세이사’는 할리우드 영화 ‘이터널 선샤인’(2005)과 ‘첫 키스만 50번째’(2004), 한국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2004) 등 기억을 소재로 한 기존 로맨스·멜로영화 흥행코드를 섞어놓은 듯한 내용이어서 관객도 친숙하다. 사고 이후 자고 나면 기억을 잊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이 소재. 여주인공 친구가 사랑의 목격자이자 사건에 틈틈이 개입하는 역할이다. 지고지순한 주인공 때문에 답답할 때쯤 관객이 하고픈 말을 대신 해주는 캐릭터다.
메가박스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흥행하자 ‘돌비시네마’ 전국 5개 관에서 ‘아바타2’ 대신 이 영화의 돌비 버전을 상영한다. 팬덤을 공략할 만한 오리지널 티켓, 열쇠고리, 포스터 등 다양한 굿즈도 선보인다. 오는 26일부터 다음 달 7일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에서 팝업 스토어도 연다. 메가박스 코엑스점은 1990년대 SBS가 방송한 ‘슬램덩크’ TV 만화의 한국어판 주제가를 당시 가수 박상민이 직접 불러주는 특별상영도 계획하고 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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