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 꿈꿨던 소녀무당의 성장통
평일엔 평범한 대학생이지만, 주말엔 충남 홍성의 무당으로 점을 보고 굿을 했다. 올해 스물여섯 권수진 씨는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16학번이다. 3년 전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서울 자취방과 홍성의 심심산골 신당을 오가는 이중생활을 했다.
첫돌에 부모가 이혼해 할머니 손에 자란 권씨가 4살에 처음 신통력을 보였을 때 할머니는 하늘이 내려앉는 줄 알았단다. 손녀의 운명을 바꿔보려 했지만 권씨는 6살 되던 해 결국 신내림을 받게 됐다. SBS ‘진실게임’, KBS ‘성장다큐-꿈’, OBS ‘멜로다큐 가족’ 등 방송에 소개되며 ‘꼬마무당’이란 별명도 얻었다.
무당 팔자에 또 다른 꿈이 싹텄다. 권씨는 초·중·고등학교 내내 반장 자리를 놓지 않고 공부하며 광고기획자를 꿈꿨다. 무당의 길을 뒤로 한 채 광고·방송 일을 하며 사회에 섞여 살길 바랐다. 그러나 대학 합격 후 홀로 상경해 정체를 감추고 버텨온 캠퍼스 생활은 1년도 안 돼 그를 선택의 기로에 서게 했다.
“홍성에선 어딜 가도 ‘산속에 사는 수진이구나’ 다 알아봤어요. 대학에 가선 제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순간이 많았죠. 1학년 1학기 때 과 대표를 하면서 대학 생활, 인간관계가 뜻과 다르게 어긋나면서 힘들어졌죠.”
9일 서울 가회동 카페에서 만난 권씨는 “원망도 미움도 아쉬움도 없다. 어쩌면 신이 나에게 굴복할 계기를 만들어준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가 고3 수험생이던 2015년부터 지난해 2월까지 7년간 치열하게 거쳐온 삶의 갈림길을 비춘 다큐멘터리 ‘시간을 꿈꾸는 소녀(이하 시꿈소)’가 11일 개봉한다.
다큐는 지난해 세계 최고 권위의 다큐 영화제인 암스테르담 국제다큐영화제(IDFA) 국제경쟁부문 13편 중 한편에 선정돼 “영적인 존재와 현대 한국의 삶을 결합하려 노력하는 젊은 여성의 고군분투기”로 주목 받았다.
‘시꿈소’는 한 남편을 둔 두 할머니의 한지붕 살이를 그린 다큐 ‘춘희막이’(2015), 거리의 아이들을 품은 신부의 발자취를 담은 ‘오 마이 파파’(2016) 등을 만든 박혁지(51) 감독의 네 번째 장편 다큐다. “답을 내리기 어려운 삶을 찍게 된다”고 말한 박 감독은 “무속에 관한 다큐가 아니라 한 소녀의 특별한 성장 과정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어릴 때부터 이 직업에 감사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학교 갔다가 친구와 학원도 가고 싶은데 학원 차가 산속에 못 와서 가지 못했죠. 늘 (점을 보려는) 손님들이 저를 기다려서 제 시간이 없었죠. 그럼에도 제 능력이 감사한 순간은 나를 통해 나아지는 사람, 좋아지는 사람을 보고 보람을 느낄 때죠.”
권씨는 “절실하면 정치인, 기독교 신자도 찾아온다. 요즘은 동성애 자녀를 둔 부모가 자식 사주에 이성 연인은 없는지 물어보러 온다”면서 무당을 “가운 입지 않은 의사”라고 표현했다.
“대학생으로 돌아가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너무 애쓰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애써도 안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인생에서 내 잘못만이 아닌 것도 많고요. 저뿐 아니라 우리 모두 너무 자신을 탓하면서 좌절하지 말고, 생각지 못한 곳에 좋은 해답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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