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리포트] 먹는 물 걱정 이젠 끝나나… 부산에 새로운 물길 끌어온다

윤일선 2023. 1. 1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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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상수원확보 사업’ 국비 확보 첫걸음
낙동강 상류 지역의 창녕함안보(왼쪽). 부산시 취수원인 매리취수장에 설치된 녹조예방 살수장치와 차단막이 작동하는 모습. 윤일선 기자, 부산시 제공


부산시의 오랜 고민이자 핵심 현안인 안전한 물 확보에 청신호가 켜졌다. 낙동강에서 벗어나 황강 등에서 물을 끌어오는 대체 상수원 확보 사업이 최근 국비 확보로 첫걸음을 내딛게 되면서다. 창녕·합천의 취수원 예정지 주민과의 갈등은 우선 풀어야 할 과제로 안겨졌다. 시는 부산시민들이 오랫동안 물 문제로 고통받아온 만큼 주민들을 적극 설득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부산시민들이 수돗물 등 먹는 물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시작은 30여년 전인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북 구미시에 있던 한 대기업이 한 달 새 2차례에 걸쳐 페놀 원액 30t과 1.3t을 낙동강으로 유출하면서 부산시 상수원까지 페놀로 오염됐다.

페놀 사태를 겪고 나서도 낙동강 상류 지역에 있는 공단 기업들은 페놀은 물론 1,4-다이옥세인(다이옥산), 퍼클로레이트, 불화수소산 등 발암물질을 유출해 낙동강을 오염시켰다. 2018년부터는 낙동강 원수와 수돗물에서 발암물질인 과불화화합물이 지속해서 검출되는 등 30여년 동안 크고 작은 수질오염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2016~2020년 낙동강 상수원에 발생한 화학물질 수질오염사고는 연평균 4.2건에 달했다.

지난해 여름, 녹조가 낙동강을 뒤덮었던 시기에는 공업용수보다 못한 수질의 물이 부산지역 수돗물로 제공됐다. 일반적으로 식수 등은 수질 1~3등급까지만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공업용수로나 쓰일 법한 4급 이상 등급의 물이 2달가량 시민들의 식수로 사용됐다.


문제는 과불화화합물 등 화학물질은 응집, 침전, 여과 공정의 일반적인 정수 과정으로 제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수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유해화학물질이 계속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부산시민들은 수돗물 등 먹는 물에 예민해지게 됐다.

더 나아가 부산시는 부산시민의 암 발생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이유가 낙동강 하류의 ‘물’ 때문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사망원인 통계’을 보면 부산은 10만명당 사망자가 92.3명으로, 서울(78.0명), 세종(69.9명)에 비해 매우 높았다.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등으로 인한 사망률도 상위권을 차지했다. 오염된 물을 마시고 밥을 해 먹다 보니 암 환자 등의 발생 비율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높다는 추정이다.

부산시는 부산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다른 지역에 비해 짧은 것도 ‘물’ 영향으로 보고 있다. 부산의 2017년 출생아 기대수명은 81.9세로 전국에서 가장 짧았다. 2020년 출생아의 경우 82.7세로, 서울보다는 2.1년이 적었으며 전국 평균(83.5세)보다 낮았다. 이에 시는 지난달 낙동강 물을 식수로 사용했을 때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해 달라고 환경부에 건강영향조사를 제안했다.

사실 정부와 부산시는 지금껏 상수원 수질 개선을 위해 행정력을 집중해 왔다. 물금지역 취수원의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을 2ppm 이하(Ⅰb등급)로 유지하는 것으로 목표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쏟아부은 돈만 22조원에 달했다.

덕산정수장 직원이 원수 유입량과 약품량, 염소량 등을 설명하고 있다. 부산시 제공


하수처리장, 하수관로, 축산폐수, 비점오염원 제거 등에 대한 투자와 함께 수질 개선에 노력한 결과 낙동강 하류부 하천 수질은 한강, 금강, 영산강과 비교해 양호한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돗물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했다.

우선 ‘먹는 물’의 원천 소스라고 할 수 있는 취수원 수질을 비교하면 낙동강이 가장 나빴다. 서울은 팔당호, 대전은 대청호, 광주는 동복호에서 취수하는 반면 부산과 동부 경남 등은 낙동강 최하류 표류수를 취수하기 때문이다. 낙동강 상류에 잠재적 오염 원인자라고도 볼 수 있는 공단이 지속해서 늘었다는 점도 시민들 우려 사항이다. 2021년 기준 낙동강수계 산업단지는 251곳으로 낙동강수계법이 제정된 2002년 102곳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었다. 특정 수질 산업 폐수도 늘어 2002년도 하루 3만7000여㎥이던 방류량이 2020년 하루 36만8543㎥로 발생량이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에 환경부는 합천 황강 복류수(하루 45만t)와 창녕 강변여과수(하루 45만t) 취수시설을 개발해 부산과 경남 중동부(김해·창원·양산·함안) 지역에 공급(관로 102.2㎞)하는 ‘낙동강 유역 안전한 먹는 물 공급체계 구축’ 사업을 추진한다. 투입 예산은 1조7000여억원에 달한다. 이렇게 되면 부산에 하루 42만t의 맑은 물이 공급돼 안전한 상수원 확보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

낙동강 하류지역 취수원 다변화 민관협의체가 지난해 11월 창녕함안보사업소에서 첫 회의를 하고 있다. 부산시 제공


그러나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사업의 착수 단계에 해당하는 하류지역 기본·실시 설계비(총 670억원) 중 19억2000만원이 올해 정부 예산에 확보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취수원 예정지인 창녕·합천지역 주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주민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에 착수했다는 것이 반발 이유다. 환경부는 오는 17일 열릴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지역 소통 민관협의체’ 2차 회의에서 주민 우려사항을 충분히 청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근희 부산시 환경물정책실장은 “실시설계비는 올 연말 타당성 용역조사 결과에 따라 사용이 결정되는 것이지 당장 사용하는 사업 예산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창녕·합천지역 주민 입장에서 다른 지역으로 물을 빼앗기는 게 반가울 리 없다는 것을 잘 이해한다”며 “부산시는 취수 영향지역에 대한 각종 지원사업을 추진하는 등 상생 노력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근희 부산시 환경물정책실장
“취수 영향 지역 지원사업 추진 등 상생 노력에 최선”


이근희(사진) 부산시 환경물정책실장은 10일 부산시의 먹는 물 확보 추진 계획에 대해 “창녕과 합천지역에서 물을 공급받게 되면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한 물을 시민들께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며 “주민 피해 없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물을 가져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시는 안전한 물 확보를 시급히 성공시켜야 하는 사업으로 규정했다. 30여년간 크고 작은 낙동강 수질오염사고를 겪으며 부산시민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창녕·합천 주민 등이 제기한 우려에 대해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 실장은 “지역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은 지역 시·도지사에게 위임하도록 했고, 복류수·강변여과수의 공장설립 제한구역 확대 문제도 수도법 시행령으로 해당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합천 지역에서 우려하는 물 부족 현상에 대해서도 지역민에게 물 우선 사용권을 부여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지하수위 저하로 발생할 수 있는 농업용수 부족은 취수원 분산화로 해결하고, 황강수계 부족 시에는 분산화된 강변여과수로 부족량을 보충하면 문제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는 물을 부산으로 가져오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시는 합천·창녕의 물을 공공재가 아닌 지역이 가진 자산으로 해석했다. 이 때문에 시는 업무협약 체결과 함께 상생 지원금을 각각 50억원씩 지원하기로 하고 올해 100억원을 상수도 특별회계 예산으로 확보했다. 시는 또 먹거리통합지원센터와 연계해 합천·창녕지역 농축산물을 연간 100억원씩 우선 구매하기로 했다. 이밖에 학자금 보조, 관광 활성화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이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취수 지역 주민에 대한 협조와 동의를 구하고, 각종 인센티브 지원책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며 “환경부, 수자원공사, 경남도, 합천, 창녕, 지방의회, 주민대표 등과 긴밀하게 협의해 시민들이 안전하고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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