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은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이예람 중사 아버지가 법정서 한 말

정현환 2023. 1. 10. 18: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 이예람 중사 재판 방청기] "모두가 절 죽였습니다" 유언이 법정에 울려퍼지다

[정현환 기자]

지난 9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서관 제418호 등에 국군교도소 이름이 적힌 군사경찰 두 명이 재판장에 들어섰다. 곧바로 고 이예람 중사를 강제추행해 2022년 9월 29일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된 장아무개 중사(26, 불명예 전역)가 들어왔다. 가슴의 흰색 명찰에 아무런 숫자가 적히지 않은, 하늘색 수의를 위·아래로 입은 피고인 장씨가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재판이 열렸다.

이날 특검은 구형에 앞서 약 1시간 20분 동안 피고인 장씨가 어떤 식으로 고 이예람 중사의 명예를 훼손했는지를 증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피해자 이 중사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증거, 이 중사가 생전에 작성한 문서나 사건과 관련된 메모, 3월 3일 자로 작성된 유서가 공개됐다.
 
 지난 9일, 서울중앙지법 서관 제418호에서 고 이예람 중사 관련 재판이 열렸다.
ⓒ 정현환
 
"이 군 조직과 주변의 시선은 저에게 압박감과 죄책감을 주었습니다."
"모두가 절 죽였습니다"
"그 인간을 두둔했던 모든 사람들 정말 혐오스럽다"

위와 같은 유언 내용을 특검보가 상세히 읽자 이날 재판에 방청해 듣고 있던 고 이예람 중사의 어머니 박순정씨가 흐느꼈다.

특검이 증거를 공개하고 곧바로 피고인 신문으로 이어졌다. 재판부는 피고인 장씨에게 "일상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 "여군 조심하라" "피해자가 받아줘서 한 것"이라는 진술의 정확한 의미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특히 "가벼운 터치였다"라고 장씨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간부에게 한 말의 구체적인 뜻을 거듭 확인했다. 장씨는 재판부의 질문에 "오래 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며 명백하게 답하지 못했다.
 
 고 이예람 중사의 유서.
ⓒ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씨 제공
  
이날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6부(부장판사 정진아) 심리로 열렸다. 안미영 특검의 특검보는 피고인 장씨가 고 이예람 중사를 강제추행하고도 같은 부대 지휘관과 동료들에게 "일상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 "여군 조심하라" "피해자가 받아줘서 한 것" 등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부당한 신고를 당한 것처럼 말을 한 사실을 지적했다.

또한 특검은 피고인 장씨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다"라는 책임 전가성 발언을 부대원에게 한 점을 꼬집으며, 장씨를 두고 "절대로 하면 안 되는 명백한 2차 가해행위가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이유로 특검은 재판부에 "이 중사의 명예가 훼손됐다" "범행을 축소 은폐하려고 이뤄진 행위는 전형적인 2차 가해" "2차 가해를 저질러온 그릇된 악습에 경종을 울려달라" 등의 이유를 들어, 피고인 장씨에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장아무개 중사의 국선변호인은 "피고인은 공소사실을 다투지 않고 있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자신의 잘못이 크지 않다고 말하는 변명을 했을 뿐", "소문이 피해자에 큰 고통을 준 것이라는 마땅한 자료를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벌금형으로 선처를 해주실 것을 요청한다"고 변론을 마쳤다.

"군인의 명예를 중시하던 딸, 국가와 공군이 81일 동안 죽였다"

특검과 피고인 변호사의 주장에 정진아 부장판사는 이날 방청석에 자리하고 있던 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60)씨에게 발언 기회를 줬다.

이주완씨는 "(강제추행 뒤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가 안 돼 가해자 장 중사가 부대 안을 돌아다녔다"며 "예람이가 죽어가는 81일 동안 단 한 사람도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눈길 준 사람이 없었다"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이씨는 사건 이후, "군 관계자 어느 누구도 저희 식구에게 용서해달라고 한 적이 없다"면서 "법대로 처벌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피고인 장씨는 "매일 같이 반성하고 지내고 있다"면서 재판부엔 "제대로 판결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재판이 끝났다. 유족은 지난 9일 재판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10일 전화 인터뷰에서 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60)씨는 "예람이의 증조부는 6.25전쟁에 참전해서 돌아가셨고, 큰할아버지는 같은 전쟁에서 팔에 총상을 입어 상이군경이 됐다"라면서 "예람이는 보훈가족의 일원으로 다른 누구보다 군인의 명예와 충성을 잘 알고 자부심을 느끼고 군 생활을 했던 군인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씨는 "그런 군인을 국가와 군이 결국 죽였다"면서 "군의 비정상적이고 폐쇄적인 문화로 피해자가 오히려 배척받았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이 씨는 "2차 가해와 따돌림, 합의 종용 및 압박, 회유도 있었다"라고 언급하며 "딸이 극단적인 선택인 자살을 한 것처럼 보이나 엄밀히 말하면 자결(自決, 의분을 참지 못하거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장아무개 중사가 고 이예람 중사의 명예를 훼손한 사실과 관련해 오는 2월 9일 오후 1시 45분에 판결 선고공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고 이예람 중사의 영정.
ⓒ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씨 제공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