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무당' 주인공이 7년 번뇌 끝에 내린 인생 결단
[김상목 기자]
▲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 포스터 이미지 |
ⓒ (주)영화사 진진 |
개인의 상상은 그가 살고 있는 당대 사회적 현실을 초월할 수 없다. 개인의 상상력이 세상에 일어나는 우연을 온전히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현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는 픽션 극영화보다 더욱 자주 흥미를 동하게 만들곤 한다. '설마 세상에 그런 일이?!' 할 만한 기구한 인생사를 다큐멘터리(작가)의 시선이 포착해 카메라에 들어오게 된다면 일단 반절은 흥미와 관심을 끌어낼 조건을 충족시킨 셈이다. 나머지 절반은 그 현실을 담아내고 정돈하는 작가의 솜씨 몫이 될 테다.
<춘희막이>와 <행복의 속도>를 선보여 왔던 박혁지 감독의 신작 <시간을 꿈꾸는 소녀>는 우리의 무심한 단견을 훌쩍 저 멀리 뛰어넘어버리는 인생을 가져와 보여준다. 주인공은 4살 때 '신 내림'을 받은 소녀무당이다. 한창 친구들과 별것 아닌 순간에도 까르륵 웃어재낄 나이대의 소녀이지만 주인공은 전국에서 찾아드는 상담자들의 미래를 예지해내 운명에 대해 조언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소환되는 '애기보살'의 실제 격이다. 하지만 그 비범한 능력은 당사자에게 축복이기보다는 질곡으로 작용한다.
타인의 운명을 볼 수 있다는 건 평범한 이들은 감히 상상하기조차 힘든 영역임은 분명하다. '초능력'의 범주에 자연스럽게 속할 테다. 하지만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이 아닌지라 예지능력은 주인공에게 타인은 상상하기 힘든 시련과 질곡을 수반하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본래 신과의 직접 소통과 타인의 운명에 개입하는 행위라는 게 본래 대가를 꽤나 지독하게 요구하는 법이다. 의심스럽다면 성경이나 신화에서 예언자들의 행보를 유심히 살펴보면 족할 일이다. 그들의 삶은 대부분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건만 강제로 개방된 특별한 능력 때문에 소박한 행복과는 아득히 먼 운명이었으니.
▲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 이미지 |
ⓒ (주)영화사 진진 |
감독은 어느 날 문득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었던 소녀보살 권수진을 떠올린다. 수소문을 통해 그의 연락처를 확보한 감독은 다큐멘터리 제작을 제안한다. 4살 때 접신한 그는 부모의 이혼에 의해 갓 돌이 지난 직후부터 할머니에게 맡겨져 길러지고 있었다. 성인이 된 후 신 내림을 받아 무당으로 살아가던 할머니 이경원은 자기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삶을 손녀가 대물림하길 원치 않았기에 갖은 애를 써봤지만 자기 안에 자리를 잡아버린 신기에 결국 주인공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충남 홍성 깊은 산중에서 할머니와 손녀는 십여 년을 함께 보내며 가업을 이어왔다.
감독이 어렵게 승낙을 받자마자 카메라를 들고 그 산중을 찾았을 때는 마침 권수진이 고3을 맞아 대학진학을 고민하던 인생의 두 번째 분기점의 시간이었다. 4살 때 저미듯 닥친 고통 때문에 무당의 삶을 억지로 받아들였던 주인공은 이제 자기의 의지로 대학 진학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운명을 그저 받아들였더라면 굳이 필요하지 않은 과정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2015년 늦가을부터 1년여의 시간이 기록되기 시작한다. 할머니 이경원은 여느 평범한 할머니들처럼 헌신적으로 손녀의 수험생으로서의 시간을 응원한다. 도시락도 싸고 진학상담도 나눈다. 그런데 하필 손녀는 자신의 점괘로 보면 가지 않길 바라던 대학에 진학한다. 6개의 선택지 중 하필 꼭 짚어 말이다. 그리고 떠억 하니 합격해버린다. 이제 소녀무당이 아니라 광고기획자를 꿈꾸는 권수진의 대학생활이 화면에 가득 펼쳐진다.
주인공의 대학 새내기 시절 생활풍경은 여느 청춘 드라마 보는 기분으로 한동안 전개된다. 과제도 열심히 하고 발표도 꽤 제법이다. 선배나 동기들과도 잘 어울리는 듯 비춰진다. 하지만 꿈에 부풀었던 주인공의 캠퍼스 라이프는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권수진은 평일에는 서울에 소재한 대학 기숙사에서, 주말엔 신을 모시러 홍성 산중으로 돌아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런 이중생활은 주인공에게 불가항력적 질곡으로 작용한다. 열심히 살면 조금 힘들긴 해도 능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권수진에겐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다.
주인공이 어렵게 결단하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당으로서의 정체성은 결코 원한다고 벗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주인공은 가득 산적한 과제나 장래 준비에서 점점 궤도를 이탈하게 된다. 시간도 모자라고 머릿속이 복잡하다. 주말에는 생업으로서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진학도 하기 전에 자기 안에 깃들어버린 신들을 섬겨야 한다. 결국 그는 꿈도 숙명도 둘 다 충족시키지 못하는 지경에 처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던 권수진은 결국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그런 손녀를 지켜보는 할머니의 심경도 착잡하기 그지없다. 자신이 거부하고 싶었던, 그리고 스스로도 응원하던 무당이 아닌 삶을 열심히 준비하던 손녀가 겪는 고통을 지켜보는 건 할머니로서 할 게 못된다. 차라리 자신이 괴로웠다면 나았을 텐데. 그래서 할머니는 모질게 보일 만큼 주인공의 양자택일 결단을 촉구한다. (카메라가 이미 대상과 친숙해졌기에 이 격한 반응은 여과 없이 담겨 훈훈하던 분위기를 뒤집어놓는다) 결국 스트레스에 시달린 주인공은 촬영을 거부하고 중단시키고야 만다. 감독으로선 아찔하고 아쉬웠을 대목이다.
하지만 3년 후 감독에게 다시 연락이 닿게 된다. 필연이 우연을 매개한 듯이 말이다. 푸릇푸릇하던 신문방송학과 새내기 권수진은 어느새 졸업반이 되어 있었다.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주인공과 주위에는 무척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테다. 그 시간들이 축적된 결과로 다시 재개된 촬영에서 주인공은 단지 체념이 아닌 자신의 선택 결과를 살아내고 있음을 입증한다.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시련과 그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된 것들을 이제 타인들에게 전수하는 중이다.
▲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 이미지 |
ⓒ (주)영화사 진진 |
<시간을 꿈꾸는 소녀>의 소재와 요약된 줄거리를 접했을 때 적잖은 이들은 무속신앙이란 소재에서 전해지는 초자연적인 기이함을 기대했을 테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이들의 호기심 어린 관전평에 편승하려는 태도와는 까마득히 거리가 먼 접근법을 택한다. 기존에 존재했던 무속신앙 관련 영화들이 필연적으로 갖게 된 이미지 대신에 이 영화는 평범하지 않은 조건을 천형처럼 짊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 또래라면 누구나 품을 법한 주인공의 보편적 고민과 성장 스토리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려 한다.
자극적인 흥밋거리 대신에 주인공의 인생고민을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채록한 감독의 방법론은 그가 선택한 방향성과 잘 맞아떨어진다. 이 영화에서 스테레오 타입의 오컬트화된 무속신앙이 등장하는 순간은 아주 찰나인데 그 활용법이 꽤 익살스럽다.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 극장을 찾아 영화를 관람하는 장면이 초반에 등장하는데 둘이 같이 보게 된 영화는 마침 극장에서 개봉 중이던 <검은 사제들>이다. 그 영화 속 영화 장면 외에는 그저 평범한 심리상담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일 만큼 감독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그 대신에 비록 간절했던 주인공의 소망이 온전히 실현되지는 못하는 아쉬움을 위로하려는 듯 감독의 카메라는 '무당'이라는 존재라면 색안경을 끼고 상상하게 될 우리 내면의 편견을 적극적으로 뛰어넘으려 한다. 시작부터 할머니와 손녀, 두 무당은 깊은 산중에서 동파된 보일러를 녹이느라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모르는 이들이 무심코 내뱉을 법한, 그런 능력이 있다면 무슨 신통력으로 해결할 수 없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체험 삶의 현장!' 느낌의 풍경이다. 마치 '일상물' 분위기처럼 느리게 전개되는 둘의 생활상은 그저 안일하게 힐링물 분위기를 풍기려는 게 아니라 주인공의 정체성을 담아내려는 의도로 활용된다.
대학 입학 후 권수진이 선배와 나누는 진로고민은 자신이 처한 인생의 정해진 길을 초월하고픈 의지를 앞서 확인한 관객이라면 그저 꿈 많은 새내기의 로망으로만 그칠 리 없다. 평이해 보이는 내용이지만 공들여 주인공의 이전 시간을 담아낸 초반부 덕분에 진하게 뇌리에 각인된다. 그리고 대학시절 겪게 될 일정과 기회들이 교차하면서 권수진이 또래에 어울리게 보이는 언행들, 셀프카메라를 찍는 찰나들까지, 다큐멘터리가 그저 사실을 재생 버튼 눌러 기록하기만 하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입증인 셈이다.
아마 1차 촬영 중단 후 3년여의 시간이 영화 속에서 공백으로 남게 된 부분에 대해 누구보다 아쉬울 이는 감독일 테다. (그 시간 동안 할머니 이경원은 백발이 되어버려 세월의 흐름을 증명한다) 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노릇. 감독은 체념하기보다는 주어진 조건에 맞춰 최선을 다해 스케치를 그려낸다. 영화 후반에서 주인공이 내방한 상담자에게 전하는 조언은 형식적으로는 영화보다는 드라마 느낌을 풍기는데 꽤 긴 충고 분량 동안 내내 권수진이 등을 돌린 상담자에게, 그리고 화면 밖에서 자신을 지켜보게 될 관객을 향해 자신의 인생 체험을 들려주는 분위기로 진행된다. 물론 해당 장면은 얼굴을 드러내길 원치 않았을 상담자 때문에 잡힌 구도였을 테지만, 감독의 편집 장치 덕분에 그동안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상상하던 관객에겐 작은 실마리가 되어주는 인상적인 순간이다.
▲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 이미지 |
ⓒ (주)영화사 진진 |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할 작품 제목은 의외로 직선적이다. 첩첩산중에 자리한 할머니와 주인공의 거처를 어렵게 찾아온 이들의 목적은 대개 미래를 결정하는 데 실마리가 될 만한 판단이다. 주인공은 사전에 취합한 상담자의 약간의 정보에 의지해 꿈을 꾸는데 거기에서 힌트를 찾아내곤 한다. 즉 미래의 '시간'을 꿈꾸는 주인공의 행보를 그대로 압축해놓은 셈이다. 종종 상담자에게 주인공은 다 숙명이라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결정론적 해답을 내곤 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인생을 걸고 다른 가능성에 도전하고 그 때문에 카메라에 이루 다 담기지 못한 시련을 감내한다. 감독이 지금껏 작업해왔던 극적인 인생사 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캐릭터다.
영화는 그런 주인공의 7년을 (일정기간이 기록되지 않은 공백기를 놓친 채) 카메라에 담은 기록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흔하게 당사자의 입장을 전하는 데 쓰이는 인터뷰를 배제한 채 영화는 우직하게 주인공과 주변 이들의 생활을 지켜보듯 간접 체험하는 방식으로 승부한다. 그런 작전의 결과로 단숨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충격력을 포기하는 대신에 그윽한 차방에서 향을 음미하다 보면 저절로 빨려들게 만드는 체험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작품정보> |
시간을 꿈꾸는 소녀 Girl Who Dreams about Time 2022|한국|다큐멘터리 2023.01.11. 개봉|111분|12세 관람가 감독 박혁지 출연 권수진(본인 역), 이경원(본인 역) 제작 및 배급 (주)하이하버픽쳐스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배급투자 및 공동배급 (주)영화사 진진 2022 24회 전주국제영화제 공식초청 2022 35회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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