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대선불복 폭동’ 1500명 검거…돈줄 추적 등 배후 수사
브라질 수사당국은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대선 불복’ 폭동 사태와 관련해 농성 본거지를 철거하고 무력 시위 가담자 1500여 명을 구금했다. 이어 대규모 시위대 동원에 투입된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등 본격적인 배후 수사에 나섰다.
9일(현지시간) 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브라질 당국은 이번 폭동을 테러·쿠데타로 규정하고 관련자를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브라질 경찰 수백 명은 이날 수도 브라질리아 육군 본부 근처에 있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농성장인 ‘애국 캠프’를 철거하며 무력 시위 참가자 1200여 명을 구금했다. 전날 의회·대법원·대통령궁 등 입법·사법·행정 3부에 시위대가 습격한 현장에서 300여 명을 체포한 데 이은 추가 검거다.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은 지난해 10월 대선 결과에 불복, 육군 본부 근처에 천막을 치고 군대를 향해 “쿠데타를 일으켜 보우소나루를 복권시키자”며 농성 중이었다. 이들은 이곳을 대선 불복 시위를 위한 베이스캠프처럼 운영했다.
브라질리아 헌병에 따르면, 지난 6일부터 시위 당일인 8일 오전까지 사흘간 4000여 명의 시위대를 태운 버스 100여 대가 브라질리아에 도착했고, 시위 직전까지 이 캠프에 머물렀다. 플라비오 지누 브라질 법무장관은 해당 농성장을 ‘테러의 인큐베이터’라 불렀다. 현재 경찰은 무력 시위 참가자들을 브라질리아로 실어 나른 대형 버스 40대를 확보하고, 시위에 투입된 자금 흐름을 추적 중이다.
전날 시위대는 의회·대법원·대통령궁을 점거하는 동안 이곳에 전시된 주요 예술 작품들을 훼손했다. 에밀리아노 디 카발칸티의 그림 ‘물라타스’에는 일곱 군데 구멍이 똟렸다. 작품 가격은 800만 헤알(약 18억 원)에 달한다. 25만 헤알(약 6000만 원)에 달하는 청동 조각상은 부서진 채로 대통령궁 3층 홀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 프랑스의 태양왕인 루이14세의 시계 제작자 발타자르 마르티노가 제작한 시계도 깨졌다. BBC 방송은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피해”라고 전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을 포함한 브라질의 입법·사법·행정 3부 수장은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전날 발생한 무력 시위를 테러·쿠데타로 규정하며 관련자에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이들은 “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하는 우리 공화국은 브라질리아에서 발생한 테러, 기물 파손, 쿠데타 등 각종 범죄 행위자를 거부한다”면서 “우리는 법에 따른 후속 조처를 함께 하고, 조국 평화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사회 평온 유지에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브라질 당국은 현재 국가의 제도적 기능이 완전히 정상화됐다고 밝혔다. 플라비우 지누 법무부 장관은 “국가가 제도적 정상성을 회복했다고 확신한다”며 “도미노 효과를 일으키려는 쿠데타 주동자들의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다. 최악은 끝났다”고 했다.
브라질 당국은 이번 폭동 사태와 관련해 경찰의 대응을 면밀히 들여다볼 방침이다. NYT는 “폭도들이 정부 건물을 그렇게 쉽게 뚫을 수 있었던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 관계자는 시위대를 실은 버스 행렬이 수도로 진입하는 과정부터 경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AP통신은 정부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브라질리아 경찰은 수많은 경고를 단순히 무시했거나, 시위대의 힘을 과소평가했거나, 공모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보도했다.
현 정부에 남아 있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측 인사들도 속속 정리되고 있다. 보우소나루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안데르송 토레스 브라질리아 안보장관은 사태 직후 해임됐다. 이바네이스 호샤 브라질리아 주지사는 3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 알렉상드르 드 모라에스 대법관은 “공안·정보 당국의 묵인 또는 직접 개입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폭동”이라고 호샤 주지사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보우소나루 정부에서 임명한 네스토르 포르스테르 주미 대사도 해임됐다.
불법 시위에 경악한 브라질 시민들은 9일 폭동을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를 열었다. 브라질 최대 도시 상파울루에선 룰라 대통령의 노동자당 색깔인 붉은 옷을 입은 수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며 행진했다. 이들은 “보우소나루를 감옥으로”란 플래카드를 흔들며 책임자 엄벌을 촉구했다.
‘대선 불복’ 시위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전날 SNS에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병원 병상에 누운 본인 사진을 올리며 “오래된 자상과 관련된 합병증을 치료 중이다”고 했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부인은 전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남편이 2018년 선거 유세 중 복부를 찔린 부상으로 인한 복통 때문에 플로리다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다. 미국 백악관은 “브라질에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 대한 신병인도 요청은 없었다”며 “만약 요청이 올 경우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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