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진료 위해 3시간 왔다갔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 ‘속도’
중증 장애인·육아 병행 직장인·도서벽지 환자에 각광
핵심은 “안전·편의·디테일”…“지속적 평가·개선으로 오진 및 남용 차단해야”
“척추장애인은 외출을 하려면 2~3시간 전에 관장을 해야 합니다. 외출 중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것입니다. 중증 장애인이 혈압약 하나 받으러 병원에 가기까지는 그런 과정이 필요합니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 작업이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 제2 소회의실에서 국내 비대면 진료 입법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이동이 어려운 환자에게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이 높다며 “오진이나 특정 병원 쏠림 문제를 방지하면서도 장애인의 건강권과 생명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 기업들이 모인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장지호 공동회장 및 임원사를 비롯해 △곽은경 소비자운동단체 컨슈머워치 사무총장 △백남종 분당서울대병원장 △장태영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서기관 △김대중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 등이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복지부, 5년 동안 400억 투입… 해외 비대면 진료 일상화 추세
앞서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오는 2027년까지 5년간 약 4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들여 감염병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비대면 진료기술을 개발하고, 비대면 진료 플랫폼 기술의 효과성을 검증하는 실증연구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확산한 지난 3년 동안 시장에는 다수의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등장했다. 비대면 진료는 보건복지부가 한시적으로 허용하고 있어 언제든 다시 금지될 수 있는 실정이지만,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서비스의 필요성과 제도화 의지를 피력해 왔다.
해외에서는 적지 않은 국가들이 비대면 진료를 일상에 도입했다. OECD 회원국 38개국 가운데 우리나라를 제외한 37개국이 비대면 진료를 합법화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적용 범위도 확장됐다. 미국의 경우 기존에 농촌 거주자와 말기 신장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지만, 현재는 장소나 질환 제한 없이 폭넓게 허용한다. 일본은 재진과 만성질환에 허용했지만, 현재는 초진 환자에게도 허용된다.
의료 접근성 낮은 환자 많아… 미래사회 대비해야
환자들의 편의와 안전이 비대면 진료의 핵심 가치다. 백 원장은 “우리나라가 아무리 의료 접근성이 좋은 국가로 꼽힌다고 해도, 환자 입장에서는 아직 접근이 어려운 다양한 상황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활의학과 전문의로서 체감하는 현장을 설명하자면, 외래진료에 환자가 절반 이상 못 온다”며 “보호자들이 대신 와서 설명하거나 환자 상태를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는데, 그럴 바에는 비대면 진료를 실시해 환자와 직접 소통하는 것이 낫다”고 강조했다.
미래의 수요자들이 처하게 될 의료 환경도 내다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백 원장은 “비대면 진료 도입을 논할 때는 단순히 진료행위 자체뿐 아니라, 그 속에 숨어있는 미래의료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의료는 예방적, 예측가능성, 환자 개인 맞춤형, 환자 참여형 등의 모습이 될 것이고, 특히 노인인구가 증가한다”며 “모든 젊은이들이 노인 부양에 나서도 모자랄 시기가 오는데, 이런 환경에서는 원격모니터링이 가장 중요한 관리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계가 주도·정부가 관리·기업이 지원하는 비대면 진료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장지호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공동회장은 “비대면 진료를 시도한 초기 의료계는 오진과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을 우려했다”며 “하지만 실제로 현재 비대면 진료 현황을 보면 경증환자와 1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수요자의 특성에 맞춘 세심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강조했다. 그는 “경증 환자의 경우 1차 의료기관, 초진 중심 정책이 설계되어야 하지만, 암환자나 중증 이상의 환자들 또는 수술 마친 환자들은 재진 위주로 서비스를 이용하기를 원하게 된다”며 “환자의 상태와 실질적인 필요를 고려한 디테일한 입법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육아 병행 직장인 호평… “대면진료 보완, 수가 구체적 검토”
소비자계는 비대면 진료의 편의성과 보편성을 담보하는 제도화를 요청했다. 곽 사무총장은 “팬데믹 기간 비대면 진료가 의료기관 방문으로 인한 감염을 예방했을 뿐 아니라, 병원에 가서 대기하고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조제를 받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줬다”며 “특히 육아를 병행해 병원에 갈 여유가 없는 직장인들이 호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곽 사무총장은 “일부 환자, 일부 질환, 특정 상황에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한다는 제한적인 법안이 아니라, 전 국민이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의료계·소비자계와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1차 의료기관과 초진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를 제도를 도입하고, 도서산간 환자, 감염 위험 환자, 만성질환자 등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이들이 우선적으로 활용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오진이나 남용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지속적인 평가도 실시한다.
장태영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서기관은 “비대면 진료 도입 목적은 크게 의료 사각지대 해소, 상시적 질병관리, 진료 수단 다양화”라며 “보건의료 제도의 기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하에 추진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면진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보완 수단이 될 것”이라며 “수가는 건강보험 전체 재정에 미치는 영향 크기 때문에 비대면 진료의 시간과 난이도, 다른 행위 및 제도 연계성을 고려해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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