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과 떠나는 여행, 그 대환장 파티

이유미 2023. 1.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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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돌아보면 다 추억... 7일간의 여행이 우리에게 남긴 것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유미 기자]

십 년같던 십일의 방학이 끝나고, 드디어 두 아이들(첫째는 유치원, 둘째는 어린이집) 등원을 했다. 방학 첫날, 나는 마치 어둠의 터널에 입장한 느낌을 받았다. 저 멀리 등원 날이라는 빛을 향해 단숨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시간은 재촉한다 해서 빨리 흐르지 않는 법. 오롯이 내가 버티어내야만 그날은 적절한 속도로 내게 다가올 것이다.

이번 방학 10일 중 7일은 밖에서 지냈다. 그런 우리를 향해 지인들은 놀란 얼굴로 질문을 던지곤 한다. "애들 둘 데리고 나가면 힘들지 않아?" 그 물음에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집에 있으면 1분이 1년 같거든, 어지르고 치우고의 무한 반복에, 심심하다 징징거리고 늘 싸우는 애들 때문에 혼이 쏙 나간다니까. 그래도 나오면 시간은 잘 가니까."

시간과 체력을 맞바꾼 우리는 키즈카페를 시작으로 실내물놀이장, 친정이 있는 대구, 마지막으로 부산에 이르는 긴 여정을 감행했다. 전국적으로 방학이 한창일 때라 어딜가도 쏟아져 나온 아이들 인파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이미 지친 몸과 마음으로 마지막 일정인 부산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광안대교를 보며 신난 두 남매. 아이들과 함께라는 여행은 고되지만 보람도 남는다.
ⓒ 이유미
 
그토록 가고 싶었던 부산에 도착했지만 이미 쌓일 대로 쌓인 피로감에 설렘보다는 막막함이 앞섰다. 그도 그럴 것이 첫째는 외출 내내 "언제 도착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 엄마 저거 사줘 응?" 이 세 마디를 로테이션으로 내뱉으며 정신적으로 힘들게 했다. 18개월 둘째는 "안아, 안아"를 외치며 팔이 끊어질 것 같은 아픔을 선사할 것이 불보듯 뻔했기 때문.

우리는 그런 그들을 때론 달래고, 때론 다그치기도 하며 남은 일정을 겨우 소화해냈다. 힘들다고 해서 멀리 부산까지 와서 주저 앉을 수는 없기에 긴 기다림이 지루해도, 걸어가는 길이 험난해도 우리는 서로에게 힘을 북돋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여행 내내 따뜻하고 청명한 부산 날씨가 힘을 보태주었다.

피곤함의 절정이었던 여행 둘째날, 우리는 해변 열차를 타고 내려 다릿재전망대까지 걸어갔다. 열 걸음쯤 걸었을까? 이쯤되면 자동응답처럼 나오는 첫째의 "언제까지 가야해? 다리 아프단 말이야, 힘들어, 안 가"라는 짜증섞인 음성이 허공에 울러퍼졌다. 그 소리에 또다시 힘이 쭉 빠졌지만 심호흡을 하며 달랬다. 

"OO아, 힘들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으면 이 힘듦에서 벗어날 수 없어. 힘들어도 너의 발로 열심히 걸어가야 해. 다리 아프면 쉬어가며 천천히 걸어볼까?" 

그 말에 첫째는 입술을 뾰족 내밀더니,내 손을 잡고 한 발씩 떼기 시작했다. 아이에게한 말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 힘들다고 징징거리며 에너지를 쏟는 대신, 그 에너지를 두 발에 실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아이들과 함께 데크를 따라 걸으며 옆으로 길게 펼쳐진 해변의 풍경을 감상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닷 물결.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 풍경이 우리의 발에 힘을 실어 조금씩 나아가게 했고, 그 덕에 지루하지 않게 목적지인 다릿재고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탄성을 내지르는 첫째 아이를 보며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엄마 이것 봐 투명다리야, 다리 밑에 바다가 훤히 보여."

전망대를 둘러싼 푸른 바다의 모습에 둘째 아이도 덩달아 신이나 방방 뛰었다. 그 모습을 보며 30분을 걸어온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며 우리도 그간 쌓인 피로를 잔잔한 파도에 실어 보냈다.

7일간의 여행에서 느낀 것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는 여행은 순탄치만은 않다. 중간중간 짜증 섞인 투정을 달래느라, 갑자기 쉬가 마렵다는 아이로 인해 가던 길을 멈추고 매의 눈으로 화장실을 찾아다기도 해야 한다. 또 울고불고 드러눕는 둘째 아이로 인해 황급히 그 장소를 빠져나와야 하는 등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그로 인해 애둘을 동행한 여행도 꼭 어둠 속 터널을 통과하는 느낌이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맞닥들이는 여행지의 아름다운 광경, 맛있는 음식, 무엇보다 아이들이 순수하게 좋아하는 티를 맘껏 내고 온몸으로 즐기는 모습은 힘듦을 헤쳐나가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 

7일간 넷이 합심해 발맞추어 여러곳곳을 점점이 찍어나가며 우리의 마음 속에도 잊지 못할 추억을 찍었다. 눈물, 한숨, 웃음이 한데 뒤엉킨 값진 추억들. 그런 추억들을 남길 수 있게 잘 버티어준 가족들에게 새삼 고마웠다. 함께 만든 추억들은 우리가 앞으로의 삶에서 맞닥트릴 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는 데 빛이 되어주리라. 

방학 첫 시작날 저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빛은 바로 우리가 함께 한 순간순간에 있었다.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아이들과 오롯이 부대끼며 버티어 낸 그 귀중한 순간순간이 빛이었고, 그것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고 마음에 스몄다.

이번 부산여행 중 하루 함께 동행했던 팔순을 이년 정도 앞둔 이모에게 "나이 들면 낙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도시락 하루에 네 개씩 쌌어도 지나고 보니 애들 키울 때가 좋았다."

내가 봤을 땐 그저 부럽기만 한 여유로운 삶이지만, 이모는 나를 보며 지나간 그 시절을 그리워 하고 있었다. 이모에게도 어둠이라고만 생각했던 육아의 터널을 통과하던 시절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빠져 나와보니 비로소 그때가 소중했음을 회고하는 이모의 옆 얼굴엔 쓸쓸한 미소가 희미하게 스쳤다.

여행에서 돌아가면 우리는 또 다른 어둠의 터널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끝나지 않을 어둠 속에 머물러 있을 것 같지만, 그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오게 될 순간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문득 그때 느끼는 감정이 후련함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수능이 끝나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할 거라 자부하지만 정작 끝이 났을 땐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처럼.

방학 첫 날 내가 등원이라는 빛만 기다렸듯, 나는 늘 저 멀리 있는 육아에서 벗어난 해방감이라는 빛만 쫓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번 방학 중 여행을 통해 크게 느낀 것이 있다. 멀리 있는 빛만 바라보다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마다 마주하는 빛을 놓치지 말고, 아이들과 함께 터널 속을 통과하는 과정 속 맞이한 순간순간의 빛들을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세월이 흘러 내가 이모 나이가 됐을 때 같은 질문을 누군가가 해온다면 나는, "아이들을 키웠던 과정에서 마주한 순간의빛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있게 했어, 그 빛들이 내 가슴에 생생히 살아남아 그때를 떠올리면 꼭 그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아"라고 답하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 십일간의 방학은 그렇게 빛 여러 개를 내게 선물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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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작가의 브런치계정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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