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ZOOM IN]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는 곧 권력일까

이은경 2023. 1. 10.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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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해나-예콴 조의 그랑프리 시리즈 연기 장면.   사진=ISU 인스타그램 캡처

일간스포츠는 지난 4일 <아이스댄스는 국가대표가 없다…임해나-예콴 ‘대표 인정받고 싶어’>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보도했다.

내용은 2022~23시즌 국제빙상연맹(ISU) 피겨 주니어 아이스댄스에서 뛰어난 성적을 내고 있는 임해나-예콴 팀이 정작 대한빙상경기연맹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국가대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취재 내내 다소 혼란스러웠다. 대한빙상경기연맹(빙상연맹)과 임해나-예콴 측의 주장이 엇갈렸고, 양측의 설명이 상식선에서 이해하기엔 복잡했기 때문이다.

먼저 임해나-예콴 측 이야기다. 빙상연맹은 홈페이지에 공식적으로 공지를 올려 2022~23시즌, 그리고 다가오는 2023~24시즌의 피겨스케이팅국가대표 선발 기준에 아이스댄스와 페어 대표 숫자가 ‘0’이라고 했다. 임해나-예콴이 뛰어난 성적을 냈는데도 공식 문서로 ‘아이스댄스 대표 0’이라고 굳이 고지한 데에서 자신들의 노력이 부정당한 듯한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빙상연맹의 설명은 다르다. 공식적으로 고지한 국가대표는 강화훈련 참가자라는 뜻이고, 임해나-예콴 조 역시 한국 국가대표 자격으로 ISU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 나갔다고 했다. 이들이 그랑프리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빙상연맹은 비행기 티켓 등을 지원했다.

빙상연맹이 공식적으로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팀으로 선발하는 인원은 남자 싱글 4명, 여자 싱글 8명까지 총 12명의 싱글 선수들이다.

페어와 아이스댄스도 모두 올림픽 정식 종목이고, 한국에서 해당 종목을 하는 선수들이 있는데도 굳이 대표를 선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빙상연맹 실무자는 ‘형평성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싱글은 몇백 명의 선수가 경쟁해서 남녀 각 한 자릿수 대표를 뽑는데, 페어나 아이스댄스는 한두 팀이 경쟁해서 대표가 되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했다. 또 “페어와 아이스댄스는 팀이 깨지는 경우가 많아서 더 지켜봐야 한다”고도 했다.

빙상연맹의 답변에는 모두 의문이 남는다.

첫째. 왜 굳이 국가대표를 ‘강화훈련 참가 자격이 있는 자’와 ‘국제대회 참가 자격이 있는 자’로 나눌까. 다른 어떤 종목에서도 이런 경우는 보지 못했다. 굳이 이런 기준으로 나눈다면 강화훈련 참가자가 국제대회 참가자보다 TO(편성인원)가 많은 게 당연하고, 국제대회 참가 선수가 오히려 공식 국가대표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피겨는 반대다.

둘째. 빙상연맹이 올림픽 전종목에 한국 대표를 두고 훈련을 지원하는 게 상식선에서 맞지 않을까. 싱글은 국제 경쟁력이 있고, 아이스댄스와 페어는 상대적으로 성적이 떨어진다고 해서 대표도 뽑지 않는 게 옳은 결정일까.

어쩌면 이 질문의 해답은 바로 ‘강화훈련’이라는 단어 안에 있을지 모른다.

한국의 피겨 선수들은 국내에서 마음껏 훈련할 수 있는 아이스링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런 열악한 환경인 한국에서는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태릉 혹은 진천 등에서 전용 훈련장과 다름없는 좋은 훈련 환경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피겨 국가대표 선발은 곧 상당한 특권을 얻는다는 뜻이다.

예콴(캐나다인)이 한국 국적이 아니기 때문에 공식 국가대표 TO에서 빠진다는 것도 애매한 답변이다. ISU 규정에는 예콴이 아이스댄스 한국 대표로 참가할 수 있는데다, 그런 이유라면 굳이 아이스댄스 대표 TO를 없애버린 것도 의아하다. 남녀 모두 한국 선수인 다른 팀을 대표로 넣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임해나-예콴 훈련 장면.     사진=정시종 기자 

결국 저변이 얇디 얇은 한국 피겨 테두리 안에서조차 페어와 아이스댄스는 저변이 취약하고 국제경쟁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철저하게 ‘약자’ 취급을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이스댄스는 싱글과 동선이 다르고 움직임도 달라서 같은 링크장에서 동시에 싱글과 아이스댄스가 훈련할 수 없다. 페어도 마찬가지다.

피겨 대표팀 TO가 늘어날수록 한정된 자원(전용 훈련장)이라는 파이는 작아진다. 여기에 다소 이질적인 성격의 싱글, 아이스댄스, 페어가 섞이면 훈련장이라는 파이는 더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피겨계에는 대표팀(훈련장)이라는 파이를 더 차지하려는 보이지 않는 권력 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며, 빙상연맹은 최대한 밖으로 잡음이 나가지 않도록 현재 힘이 조금 더 있고 목소리가 큰 쪽의 손을 슬며시 들어주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도 든다. 대표팀빙상연맹 실무자가 설명했던 ‘형평성 문제’는 사실상 싱글 선수들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이야기다.

현재의 ‘강화훈련 대표 운영’ 방식이 현실적으로는 지금 당장 한국 피겨가 국제대회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방안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식이라면 아이스댄스와 페어는 국내 자생력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말라죽을 수도 있다. 특정 선수의 ‘신문고’를 해결하라는 뜻이 아니다. 빙상연맹은 과연 멀리 내다보는 행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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