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증시 200% 뛴 튀르키예…무모한 실험
전세계 고물가 잡기 나설 때, 무모한 통화실험
대통령, 대선 앞두고 물가 억제보다 돈 풀기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지난해 튀르키예 증시가 200% 뛰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신흥국 지수가 크게 떨어진 것과 대조적이다. 신흥국 뿐만이 아니라 선진국 증시도 지난해 강타한 고강도 금리인상 여파에 고꾸라진 바 있어, 튀르키예 증시의 오름세는 더욱 눈에 띈다.
이 같은 증시 상승의 비밀은 비상식적인 통화정책이 원인으로 꼽힌다. 각국이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인상에 나설 시기에, 튀르키예 정부는 금리를 인하했고 화폐가치가 떨어지자, 자금이 증시로 몰린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은 올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시장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튀르키예 증시 급상승
튀르키예의 '보르사 이스탄불 100' 지수는 2021년말 1857.65에서 2022년말 5521.17로 급등했다. 지난해 연간 상승률은 197.2%에 달한다. 리라화의 가파른 하락을 고려해 달러화 기준으로 추산해도 튀르키예 증시는 110% 상승했다는 게 블룸버그의 분석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 지수가 지난해 22% 이상 빠진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익률이다.
도대체 튀르키예 주식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현지 기업의 이익 개선으로 시장의 펀더멘털이 강해진 것도 아니다. 가장 유력한 원인은 인플레이션에서 찾을 수 있다. 극심한 물가 상승과 가파른 통화 절하 영향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돈을 싸들고 주식시장으로 피난하자, 증시가 급격하게 뛰어오른 것이다. 특히 튀르키예 개인 투자자(개미)들이 증시를 피난처로 자금을 투입했다. 튀르키예 물가가 100% 가까이 치솟으면서 현금 가치가 마치 한여름 손에 쥔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리자, 불안한 튀르키예 개미들이 인플레이션 헤지를 위해 증시로 뛰어든 것이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증시 랠리로 이어졌다.
살인적 물가
튀르키예의 물가 상승세는 살인적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해 10월 기준 연간 튀르키예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85.5% 치솟았다. 1997년 이후 최고치다. 이후 11월 84.39%로 상승폭이 소폭 줄어든 이후 12월에는 64.27%로 급격히 둔화되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인플레이션을 기록 중이다. 튀르키예 수도인 이스탄불의 물가 상승률은 더하다. 이스탄불 상공회의소는 이 도시의 지난해 연간 소매 물가가 93% 뛰었다고 발표했다. 도매 물가 상승률 역시 지난해 연간 기준 81.31%에 달했다. 지난해 연말 들어 도소매 물가 급등세가 빠르게 진정되긴 했지만, 연간 기준으로는 100%에 가까운 물가 상승률을 나타낸 것이다. 엔버 에르칸 테라 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튀르키예 투자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다"며 "인플레이션을 헤지하고, 실질적으로 투자 가치를 증대하려는 사람들은 (증시 외에) 기댈 곳이 별로 없다"고 분석했다.
무모한 통화정책 실험
천정부지로 물가가 뛴 것은 레제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무모한 통화 정책 실험이 원인으로 꼽힌다. 그의 실험은 무모하다 못해, 비상식적이기까지 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만성적인 고물가에도 중앙은행을 압박해 2021년 9월 이후 기준금리를 잇따라 인하했다. 2021년 말부터 이어진 금리 인하로 튀르키예 기준금리는 10%포인트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고금리가 오히려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며 경제 상식에 어긋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은 물가를 잡으려고 긴축을 단행하는데, 튀르키예만 경제 상식에 역행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같은 결정에 따라 달러당 터키 리라화 가치는 2021년 6월초 8.5381리라에서 지난해 연초 13.1278리라, 이달 6일 기준 18.7165리라로 폭락했다. 불과 1년 6개월 여만에 리라화 가치가 반토막 난 것이다. 리라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지난해 튀르키예의 무역적자도 1101억9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8.4% 확대됐다. 리라화 하락으로 수출이 12.9% 늘었지만 수입은 34.3%나 증가했다. 에너지·곡물 가격 급등과 수입물가 상승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통신은 "8000억달러 규모 경제에 대한 정부의 비정통적인 관리가 자산 시장에 어떻게 파문을 일으키는지를 보여준다"며 "인플레이션과 리라화 약세는 터키 국민들의 구매력을 잠식하고, 주식 시장에 베팅하도록 만들었다"고 짚었다. 다만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이처럼 리라화 가치가 급락하자, 가장 최근 통화정책회의에선 금리를 9%로 동결했다.
대선을 위한 실험
튀르키예 국민을 대상으로 한 무모한 통화 실험의 배경으로는 내년 대선이 꼽힌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물가 상승 억제보다는 경기 부양에 초점을 맞췄다는 뜻이다. 금리를 인상할 경우 소비가 둔화되고 경기가 가라앉을 것을 우려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정책을 폈다는 것이다. 특히 에르도안 대통령은 선고를 앞두고 최저임금을 55% 인상하고, 공공부문 임금 및 연금을 25% 올리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 같은 정책 발표의 배경으로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중기 목표를 밑돌았다"고 설명했다.
치솟았던 물가가 오히려 목표치보다는 못했다는 얘기다. 당연히 시장에서는 이 같은 발표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튀르키예의 물가 상승률을 조사하는 리서치 그룹인 ENAG에 따르면 지난해 튀르키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37.55%에 달했다고 밝혔다. 12월 소비자 물가 64.27%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미국 정치전문매체인 폴리티코는 "이번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둔화는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순 있지만 터키 국민의 부담을 완화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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