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뻥튀기 청약’ 손질…IPO 시장 살아날까
뻥튀기 청약 때 수요예측 참여 제한 페널티
“실효성 크지 않고 증권사 부담만 가중” 우려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증시 부진으로 기업공개(IPO) 시장이 급격히 쪼그라든 가운데 금융당국이 IPO 제도 개선에 나선다. 시장의 건전성을 지키면서 활기도 불어넣을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9일 금융위원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상반기 중에 관련 규정 개정 작업을 완료해 '허수성 청약 방지 등 IPO 건전성 제고 방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유관기관과 업계 합동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한다.
제도 개선의 핵심 내용은 ▲사전수요조사 허용으로 적정 공모가 밴드 설정 ▲주관사 책임 아래 주금납입능력을 확인해 청약과 배정 실시 ▲상장 당일 가격 변동폭을 확대해 적정 균형가격 조기 발견 등 3가지다.
그동안 증권신고서 제출 전 기관 투자자 대상의 사전수요조사는 금지됐다. 하지만 당국은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주관사가 공모가 범위를 합리적으로 재평가하도록 사전수요조사를 허용할 계획이다. 관행적으로 2일간 진행되던 기관 수요예측 기간도 최대 7일까지로 늘린다. 공모가 범위 내에서 적정 공모가가 정해지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당국은 중장기적으로 증권신고서 제출 전 공모주 일부를 미리 청약하는 '코너스톤 제도' 도입과 연계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코너스턴 제도는 IPO 시장에서 공모 물량 일부를 대형 기관 투자자에게 공모가 확정 이전에 배정하는 것을 일컫는다. 2007년 홍콩에서 만든 제도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증시에서 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수요예측 전에 특정 적격 투자자는 일부 공모주 물량을 배정받을 수 있다.
'뻥튀기(허수성)' 청약을 막기 위한 관리 방안도 강화한다. 기관 투자자가 원하는 물량을 배정받을 목적으로 실수요 이상의 과도한 청약을 넣는 관행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지난해 역대급 '대어'로 기록된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공모 당시 기관 주문액이 무려 1경5000조원이라는 비정상적인 숫자를 기록했다. 허수성 청약이 쏟아져서다. 당시 LG에너지솔루션 공모가는 최상단인 30만원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이후 주가가 기대만큼 오르지 않자 공모가 고평가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IPO 수요 예측에서 기관이 공모가만 높여두고 상장 직후 팔아치워 차익만 챙긴다는 불만을 쏟아냈다.
주관사는 허수 청약을 하는 기관의 주금납입능력을 자체적으로 확인하고 능력에 따라 수요예측 참여 기관에 배정할 물량을 정한다. 주관사의 관리가 부실할 경우를 대비해 처벌 수위도 높인다. 당국은 확인 의무를 게을리한 주관사에 최대 업무 정지까지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허수 청약한 기관에는 배정 물량을 대폭 축소하고 수요예측 참여를 제한하는 등 페널티를 부과할 예정이다. 수요예측에서 공모가를 기재하지 않은 기관은 공모주를 배정받지 못한다.
금융위는 "기관의 뻥튀기 청약을 막기 위해 실제 납입능력을 확인해 물량을 배정하고, 사전수요조사 등으로 적정한 공모가를 찾도록 하면 건정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금융투자업계도 기관의 납입능력을 확인해 공모주 물량을 배정하면 공모주 가격이 왜곡돼 벌어지는 시장의 거품(버블)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기관의 납입능력 확인해 물량 배정
의무 보유 기간이 종료된 후 기관이 일시에 공모주를 대량으로 매도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증권사는 기관이 확약한 의무 보유 기간에 따라 물량을 차등 배정한다. 공모주의 주가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다. 또 공모주의 균형 가격을 신속히 찾을 수 있도록 상장 당일 주가 변동폭을 확대한다. 현재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63~260%까지 주가가 변동할 수 있지만 최대 변동폭을 400%까지로 늘린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관 투자자는 실제 수요와 납입능력에 따라 공정한 거래 기회를 제공받고 안정적인 장기 투자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더불어 주관사는 공모주 수요와 적정 가격, 청약 투자자들의 주금납입능력을 자율적으로 검토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거치며 차별화된 역량을 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IPO 시장은 급격히 위축돼 수요예측 부진으로 상장 계획을 접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때문에 제도 개선으로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이석훈 자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요예측 기간을 연장하면 충분한 시간에 걸쳐 기관 투자자의 비딩 수요를 파악해 공모주의 시장수요를 더 잘 예측할 수 있다"며 "또 주관사가 사전수요조사로 적절한 공모예정가 범위를 파악해 이를 기반으로 수요예측을 한다면 효과적인 가격 발견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지금도 비공식적으로 사전수요조사를 하고 있어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수요예측 전 주관사 IPO 담당 실무자와 기관이 어느 정도 소통해 수요예측 흥행 여부를 예측하기 때문에 이미 사전수요조사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 업계 관계자는 "수요예측 기관이 늘어난다고 해도 참여하는 기관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코너스톤 제도가 함께 도입되지 않으면 사전수요조사가 큰 의미를 갖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관사에서 허수 청약을 하는 기관의 주금납입능력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관사가 서류만으로 각 기관의 현황을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면서 "고의나 실수로 서류에 잘못된 사항이 기재되는 것을 증권사가 책임지며 페널티를 부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변동폭 넓히면 오히려 투자심리 위축될 수도
가격 변동폭을 넓힌 것과 관련해서도 우려가 나온다. 최근 2년간 과잉 유동성으로 '따상(시초가가 공모가의 두 배로 형성된 후 상한가)'과 '따상상(시초가가 공모가의 두 배로 형성된 후 이틀 연속 상한가)'이 있었을 뿐, 실상 공모주 시장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를 잡기 위해 가격 변동폭을 넓힌 것이 이치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가격 변동폭을 확대하면 오히려 위험성이 큰 시장으로 여기고, 투자심리가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크다.
이에 대해 당국은 가격변동폭을 확대하는 것은 따상 이후 가격이 고정돼 거래절벽이 나오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며, 400%까지 과열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오히려 균형가격발견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국은 중장기적으로는 주가 급등락 방지를 위해 IPO 단기차익거래 추적시스템 구축할 방침이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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