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오락가락 기재부, 그냥 넘어갈 순 없다
특위안 아닌 찔끔 지원 정부안 통과 세수 감소 우려한 기재부 탓
여론 반발에 대통령 질타하자 다급한 기재부 180도 입장 바꿔
정부 여당 간 불통과 대통령실 정책 조정 능력 부재 드러나
정책 기조 뒤집은데 대해 사과조차 없어…
국회가 조변석개 국가 정책 운영의 문제점 짚고 그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베트남 출장 중인 양향자 무소속 의원은 그날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급거 귀국길에 올랐다. 반도체산업을 지원하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과 관련해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가 발의한 개정안이 아닌 정부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는 ‘비보’를 접했기 때문이다. 특위의 개정안이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20%(기존 6%), 중견기업 25%(8%), 중소기업 30%(16%)로 대폭 높인 것인데 반해 정부안은 대기업만 8%로 찔끔 올리는 것이었다. 반도체 전문가인 양 의원은 이례적으로 여당이 제안한 특위 위원장직을 수락하고 6개월간 특위를 이끌어왔다. 그래서 본회의에 참석해 정부안을 저지하고자 서둘러 비행기를 탄 것이다.
양 의원은 그날 밤늦게 열린 본회의 반대 토론을 통해 절규했다. “정부의 조세특례제한법을 부결시켜 주십시오.… 8%는 전진이 아닌 후퇴입니다. 개선이 아닌 개악입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한국에서 쫓아내고 대한민국을 반도체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어내는 정책입니다. 대한민국 반도체산업 사망 선고나 다름없습니다.”(2022년 12월 23일 본회의 회의록)
그러나 표결에서 정부안은 가결됐다. 문제는 정부안이 ‘초부자 감세’를 우려한 더불어민주당 개정안(대기업 10%, 중견기업 15%, 중소기업 30%)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미국 대만 중국 등의 파격적 지원과도 거리가 멀었다. 반도체 초강국을 역설한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에도 반한다. 용두사미가 된 건 기획재정부가 세수 감소 이유로 여당안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여당안의 경우 2024년 세수가 2조7000억원 줄어든단다. 한데 이는 감세 기조를 이어간 기재부 논리와 배치된다. 세금을 줄여줘야 투자·고용이 늘고 세수가 증가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고 주장해왔으면서 반도체 분야에선 앞뒤가 맞지 않는 딴소리를 하고 있다. 이에 여론의 반발이 거셌고, 결국 윤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세제지원 추가 확대를 적극 검토하라고 호통치자 기재부는 입장을 180도 바꿨다. 나흘 뒤인 지난 3일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중견기업 15%, 중소기업 25%로 크게 상향하는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건 정부 여당의 불통, 대통령실의 정책 조정 능력 부재, 기재부의 오락가락 판단이다. 특위가 개정안을 발의한 건 지난 8월이고, 기재부가 정부안을 제출한 건 9월이다. 그 후 당정은 완전히 따로 놀았다. 현 정권에서 야당과의 불통은 그렇다 치고 정부와 여당 간에도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았다.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될 때마다 기재부가 세액공제율 대폭 상향을 막았고 이것이 언론 보도로 숱하게 나왔는데도 대통령실조차 손을 놓고 있었다. 실무 부처가 뒤에서 발목을 잡고 있는데도 각 부처 정책을 조율해야 할 대통령실이 강 건너 불구경을 한 셈이다.
가장 비판받을 건 기재부의 ‘카멜레온식 행태’다. 조세정책을 대통령 말 한마디에 손바닥 뒤집듯 바꾼다. 그럼에도 기재부 수장은 사과의 말도 없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법인세 인하폭이 1% 포인트(정부안 3% 포인트)에 그쳐 투자세액공제율을 대폭 상향하게 됐다’며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는다. 하지만 시계를 과거로 돌려보자. 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 날 언론들이 세제지원 부족을 비판하자 기재부가 ‘우리나라는 반도체 투자에 대해 매우 높은 수준으로 세제지원 중입니다’라는 반박자료를 배포한 건 뭐란 말인가. 추 부총리는 27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세액공제나 R&D(연구개발), 특히 R&D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지원 중이고 (세액공제도) 결코 낮지 않은 수준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렇게 버티다 대통령 지시가 떨어지자 부랴부랴 판단 자체를 바꾼 것이다. 그러니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말을 듣는 거다.
국회는 어제부터 시작된 1월 임시회에서 갈팡질팡한 기재부 행태의 문제점을 반드시 짚고 책임까지 물어야 한다. 뒤늦은 정책 급선회가 적절한 방향이었는지는 차치하고 이런 식으로 조변석개하는 국가 정책 운영을 그대로 보아 넘겨선 안 된다. 한마디 덧붙인다. 대통령실이 정책 혼선을 이유로 경고의 화살을 날릴 대상은 아이디어 차원의 해외 사례 검토를 언급한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아니라 불과 11일 만에 주먹구구식으로 아예 정책 기조를 뒤집은 추 부총리가 돼야 한다. 정략적 잣대가 아닌 상식적 잣대라면 말이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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