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윤의 이코노믹스] 부자 감세 프레임 극복해야 위기 타개 길 열린다

2023. 1. 10.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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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수지 적자 해법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우리나라 무역수지가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월별 무역수지는 2021년 12월 4억 달러 적자로 돌아선 이래 2022년 12월 47억 달러 적자에 이르기까지 계속 나빠지고 있다. 2022년 연간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472억 달러에 달한다. 다만, 상품 무역 이외에 여행자 지출 등을 고려하는 서비스 무역, 그리고 해외에 지급하는 이자·배당금과 해외서 들어오는 소득을 따져 산출하는 경상수지는 한국은행 10월 자료에서 8억8000만 달러 흑자로 간신히 적자를 면했다. 하지만 이미 4월과 8월에는 적자를 보였다. 현재 무역수지 적자 추세를 고려할 때 경상수지 악화는 놀랍지 않다.

22년 연간 무역적자 472억 달러

무역수지는 경상수지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핵심이다. 경상수지는 소비·투자·정부지출과 함께 국내총생산(GDP)의 변화, 즉 경제성장률을 결정하는 주요 항목 중 하나다. 현재의 무역수지 악화는 경상수지 악화로 연결되며, 결국 이후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가 경험한 주요 경제위기와 경기 부진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함께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신용카드 부실사태,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각 시점에 해당하는 1997년 1·3·4분기, 2003년 1분기, 2008년 3분기에 모두 경상수지 적자가 있었다. 위기를 전후해서 경상수지 적자까지는 아니어도 흑자가 감소하거나 불안정한 모습이 나타났다. 특히 미증유의 경제위기였던 1997년 직전에는 1994년에서 1996년까지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됐다. 최근에도 경상수지는 작년 이래 흑자가 계속 감소하다가 2022년 3분기 54억 달러 적자를 보였고, 4분기에도 이 추세가 계속할 것으로 예측된다.

「 대외의존도 80% 달하는 한국 경제
주력산업 경쟁력 지원 적극 나서야
세계 각국 첨단 업종 지원에 사활
법인세 인하는 대표적 수출지원책

경제위기 때 마다 경상적자 출현

권순우의 이코노믹스

우리나라는 GDP 대비 수출과 수입의 합계 규모를 나타내는 무역의존도가 80%(2021년)다. 독일(89%), 스웨덴(86%)과 함께 세계적으로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미국(26%), 일본(38%), 중국(34%) 등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따라서 경제 상황이 대외 여건과 무역 성과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고, 이런 특성상 무역수지 악화 및 경상수지 적자가 경제위기 시점과 겹쳐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경상수지 적자가 반드시 경제위기나 경기 부진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수 경기가 좋아서 국내 소비와 투자를 위한 수입수요가 많이 늘어나 무역수지 적자가 심화한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현재는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다. 국내 소비는 코로나19 상황의 대면 소비 부진에서 벗어나며 일부 개선된 정도일 뿐 호조세라고 보기 어렵다. 여기에 투자는 개선 신호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정도가 아니라 심각하게 악화하고 있다. 아직 4분기 자료가 나오지 않았지만, 2022년 설비투자와 건설투자 모두 마이너스 증가율이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무역수지 악화는 내수 개선보다는 수출 부진과 이에 따른 향후 경기 악화를 전망하는 부정적 신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주력산업 반도체, 수출 감소세 뚜렷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실제로 현재의 무역 적자 항목과 최근 악화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면 경제위기 징후를 포착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수출부진, 그중에서도 반도체 같은 주력 산업의 수출 감소, 그리고 원유 등 에너지 국제가격 상승에 따른 수입증가라는 두 요인이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면서 무역수지가 악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수출에서 약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의 경우, 수출이 지난해 8월에 전년 동기 대비 -7.0%를 보여 감소 전환한 이후 12월 기준 -29.1%를 기록했다. 게다가 자동차(28.3%)와 유가 상승 영향이 있는 석유제품(22.7%) 정도를 제외하면 철강(-20.9%), 디스플레이(-35.9%), 무선통신기기(-33.1%), 가전제품(-24.4%) 등 우리 주요 수출품 대부분이 지난해 12월 큰 폭의 감소세를 나타냈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 경기 하강과 함께 코로나19 당시 급증했던 디지털 특수가 최근 사라지고 있고, 미·중 갈등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균열이 우리에게 기회의 가능성보다 위험과 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 중국 경기도 하강하고 있다. 특히, 우리 반도체 수출의 상당 비중(약 40%, 홍콩 포함시 60% 내외)이 중국을 향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 중국경기 부진이 우리 반도체 수출에 상당한 타격을 입히는 상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국제 에너지 가격 하락은 경기 부진 의미

또한 무역수지 악화를 유발하는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어서 어려움을 더한다. 더구나, 현 상황에서 에너지 국제가격이 안정화되거나 하락한다는 것은 미국 중심으로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유동성 회수가 강력하게 이루어졌다는 의미여서 세계경기 부진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설령 에너지 수입물가 안정으로 수입 금액이 줄어도 우리의 수출 실적과 경기 상황에는 또 다른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소지가 다분하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주력산업 중심으로 우리 경제의 수출경쟁력을 강화해 무역수지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의 통상 질서에서 수출 진흥을 위해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 보조금을 직접 지급하는 형식은 불공정 무역행위로 제재받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세금부담을 낮추고, 노동시장을 개선하며, 연구개발(R&D) 지원 등을 강화하는 방식을 통해 기업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 이는 각국 정부가 경쟁적으로 벌이는 노력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법인세 인하 이슈다. 흔히 ‘국제 조세 경쟁’이라고 지칭하는데, 자국 내 기업에 우호적인 조세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국가들이 세금, 특히 법인세율을 낮추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법인세가 국제 조세 경쟁에서 주요 초점이 되는 것은 국제 경쟁에 치열하게 노출된 수출기업이 법인세 부담의 주요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표적인 수출경쟁력 지원정책이다.

법인세 인하, 부자 감세 프레임 안돼

그러나 대개 법인세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대기업 감세’ 혹은 ‘부자 감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우리 국회 논의 과정에서 최고세율을 3%포인트 낮추는 원래 개정안의 감세 폭이 축소돼 과세 구간마다 1%포인트 낮추는 정도로 조정됐다. 그런데 법인세 납부는 물론 기업 법인이 하지만, 법인세를 실제 부담하는 궁극적인 귀착점은 주주·경영진·노동자·협력업체 등으로 매우 광범위하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 때문에 감세 혜택도 여러 경제 주체로 분산돼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법인세 인하가 특정한 채널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예를 들어 바로 투자가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세 효과가 없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수출 품목 가운데 우리의 주력인 반도체는 국제 시장에서 최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비단 법인세뿐만 아니라 R&D 또는 설비투자 관련 세액공제, 첨단기술에 대한 투자지원 명목 등을 통해서 각국이 추가적인 지원 정책에 나서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이런 나라 가운데는 경제 전반이 무역수지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무역의존도가 높지 않거나, 반도체 업황이 당장 경기 전반에 영향을 주거나 위기로 연결되지 않음에도 국가 차원의 파격적인 지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첨단 기술업종 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 각국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모습이다.

국제 생산·공급 네트워크와 기술체계가 개편되는 현 상황에서는 반도체 같은 첨단 분야를 중심으로 국제무역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 미래 경제성장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이런 첨단 분야에 대한 지원이 부자에게 가는 혜택이라는 프레임을 극복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기업 국제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첨단 분야 지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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