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디지털 프로그램북

류태형 2023. 1. 10.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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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객석에 앉아 있을 때 이게 없으면 허전하다. 프로그램북 혹은 프로그램 노트로 불리는 안내책자다. 곡목 해설과 연주자 소개, 공연 일정 등이 나와 있다. 대개 크고 작은 글씨와 함께 연주자의 사진이 실린다. 처음 듣는 곡은 반드시 내용을 읽게 된다. 익숙한 곡이라도 필자에 따라 다양한 견해를 만날 수 있어 좋다.

연주회에서 어떤 좌석에 앉을지는 고를 수 있지만 주변에 누가 있을지는 복불복이다. 미처 읽지 못한 프로그램북을 연주 도중에 뒤적이는 청중도 있다. 얼마 전에는 뒷좌석 청중이 종이를 넘기는 소리 때문에 음악에 집중하지 못했다.

프로그램북 넘기는 소리는 지난 세기에도 논란이 됐던 것 같다. 피아니스트이자 음악학자 도널드 프란시스 토비(1875~1940)가 남긴 1900년경 기록에는 자신의 리사이틀을 위해 직접 쓴 프로그램북을 ‘부드럽고 넘길 때 소리가 나지 않는’ 종이에 인쇄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미국 사우스다코타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디지털 안내 프로그램.

신문·잡지·만화 등 종이 매체는 디지털로 이행하고 있다. 프로그램북 역시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 음악평론가 로렌스 비티스가 음악잡지 ‘스트링스’에 기고한 내용에 따르면 이미 여러 오케스트라가 프로그램북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영국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은 일체의 인쇄물 없이 디지털로만 제공한다. 아티스트 경력과 작품 등을 유튜브 채널에 함께 올린다. 미국의 세인트 폴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지난해부터 ‘올 디지털’을 선언했다. 연주자의 경력을 다이내믹하게 표현하고 프로그램북, 사진을 온라인에 올렸다. 의자 팔걸이의 QR코드를 촬영하면 디지털 프로그램북을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워싱턴 케네디센터도 공연과 관련된 모든 것을 온라인에 올리고 관객에겐 한 장짜리 리플렛만 제공한다. 베를린 필의 경우 인쇄물 내용을 온라인 채널에도 올린다. 반면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악단도 많다. LA 필이나 세인트루이스 심포니는 ‘세세한 내용은 종이가 좋다. 스마트폰의 깜빡임이 싫다’며 종이 프로그램북을 고집한다.

지난해 초 예술과 기술을 접목한 회사인 인스턴트앙코르는 디지털 프로그램북 플랫폼인 ‘인사이드가이드’를 런칭했다. 인쇄 프로그램북에 비해 안전하고 환경에 좋고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기치를 내걸고 이미 20개 넘는 오케스트라들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회사 측은 “인쇄비를 줄이고 광고를 확보할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선전한다.

지난 팬데믹 시기 서울 예술의전당 롯데콘서트홀 등 공연장에서 큐알코드를 찍는 일이 익숙해졌다. 큐알코드를 통한 디지털 프로그램북도 고려해볼 만하다. 단 종이든 디지털이든 연주 도중에 펼쳐보는 건 삼가야겠다. 뒤적이는 소리, 스마트폰 불빛은 다른 청중에게 폐가 될 테니까.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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