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브라질판 1·6사태…대선불복에 대통령궁·의회·대법 쑥대밭
대통령·의회·대법원. 이른바 3권분립을 상징하는 민주주의 제도다. 브라질에선 극단적 지지자들이 이들 제도를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2년 전 2021년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워싱턴 국회의사당에 난입했던 것과 판박이였다. ‘남미의 트럼프’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 수천 명이 8일(현지시간) 브라질 대통령궁·의회·대법원에 난입하는 초유의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50.9% 대 49.1%. 시위대는 지난해 10월 30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현 대통령에게 1.8%포인트 차로 패한 결과를 ‘부정선거’라고 불복하면서 폭력을 행사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은 이날 오후 2시쯤 수도 브라질리아 3권(입법·사법·행정) 광장에 집결한 후 3부 청사에 난입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보우소나루 대통령(President Bolsonaro)’이라는 글귀와 보우소나루 사진이 프린트된 셔츠를 입고 있었다.
의회에 진입한 시위대는 “권력을 되찾겠다” “룰라는 하야하라”는 대선 불복 메시지를 외쳤고, 둔기로 창문을 깨뜨린 후 각종 집기를 집어던졌다. 의장석을 점거한 채 단상에서 미끄럼틀을 타는 등 난동을 이어갔다. 일부 시위대는 의회 옥상에 올라가 브라질 군대에 쿠데타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펼치기도 했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위해 브라질 민주주의 자체를 무너뜨리려고 한 것이다.
인근 대통령궁과 대법원도 쑥대밭이 됐다. 경찰은 고무탄과 최루액을 쏘며 진압에 나섰지만 오히려 시위대는 경찰관을 말에서 끌어내려 바닥에 내팽개치기도 했다. 결국 시위는 무장한 군인들이 투입된 후 오후 9시에야 진압됐고, 당국은 최소 400여 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룰라 대통령은 “이들은 파시스트”라며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반복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며 사태를 부추겼다”고 비난했다. 대법원은 쿠데타를 획책하는 전국 군기지 외곽의 시위대 캠프도 24시간 내 철거하라고 명령했다. 미국 플로리다에 체류 중인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증거 없는 비난”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도, 취임식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파울루 캘몬 브라질리아대 교수는 이날 AP통신에 “우리의 1월 8일은 미국 1·6 사태의 분명한 복제품”이라며 “오늘의 슬픈 사건은 브라질 민주주의를 불안정하게 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선동적인 정치 수사로 급진화된 강경파가 선거 패배 인정을 거부하고 법치를 훼손하는 일이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브라질 민주주의는 훼손돼선 안 되고, 룰라 대통령과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미국·브라질 외에서도 양극화 시대의 복합 갈등을 기존 민주주의 제도가 적절히 대처하지 못할 경우 극단적 선동주의 정치가가 등장하고, 이들이 동원한 지지층에 의해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진영 사고나 팬덤 정치가 그 징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성숙한 정당정치가 정착되지 않고 정치인 개인에 대한 의존이 심한 정치환경에서 소셜 미디어 음모론을 토대로 폭력적인 행동이 분출되는 경향이 증가한다”며 “특히 승자독식의 대통령제에선 극단적 지지층이 대선 불복으로 치닫지 않도록 포용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효식 정치에디터,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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