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아트 퍼니처 아티스트 최병훈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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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의 파주는 문자 그대로 허허벌판이었다. 논밭과 나무만 무성하던 이곳에 가구예술가 최병훈은 작업실을 세웠다. 1층은 작업공간, 2층은 스튜디오로 구성된 도면도 직접 그렸다. 해가 지면 불빛 없이 고요하던 이곳은 온전히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게다가 당시 재직 중이던 홍익대학교와도 가까웠다. 22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간 구성은 처음과 거의 달라진 게 없다. 1층 작업실은 여전히 오래되고 새로운 재료와 도구들이 산재한 곳이다. 세상의 수많은 색과 결의 나무들도 이곳에 모여 있다.
예전에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진행한 작업을 이젠 많은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주로 나무를 다루고, 돌은 이천의 석재 공장에서 작업한다. 몇 톤이 넘는 돌을 다루려면 기중기를 비롯한 설비가 필요하고 재료 성격도 다르기 때문에 나무와 돌을 한곳에서 작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층에 들어서면 보이는 큰 테이블은 그가 이런 생각으로 만든 가구다. 작업실에서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며 이런 크기의 테이블을 처음으로 만든 것이다. 단풍나무와 강원도의 돌을 조합한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이 연이어 제작을 의뢰하며 새로운 테이블 시리즈가 전개되기도 했다. 뉴욕과 파리 등 해외 유수 갤러리의 관장과 큐레이터들도 모두 이 자리에 앉아 그의 전시를 의논했다. 어느새 그만의 고유한 표현법이 된 먹 드로잉도 이곳에서 처음 시작하고 발전했다. 2층 한쪽에는 이를 위한 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그는 자신이 사용하는 나무와 돌의 자연적이고도 역동적인 힘을 표현하기 위해 일필휘지로 작품의 형태를 남긴다. “2층은 온전한 휴식과 정리를 위한 곳이에요. 이곳에 들어서면 일과 여가가 분리되는 느낌이 들어요. 내가 좋아하는 알바 알토, 찰스 임스, 웬들 캐슬, 시로 구라마타 같은 작가의 디자인 가구도 많이 놓았죠. 때때로 그들이 내 작품과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도 확인합니다. 음악은 늘 클래식 FM으로 채널이 고정돼 있어요.” 그가 최근에 구입한 가구는 조선시대 무명의 장인이 만든 나무 장이다. 옥션을 통해 구입했는데, 장식이 많지 않고 좌우 비례가 잘 맞아서 한눈에 결정했다고 한다. 그 위에는 전국에 돌을 구하러 다니다 우연히 만난 수석을 올려놓았다. 전통적 수석 형태가 아니어서 더 마음에 든 작품이다.
이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수집한 가구와 개인 작품이 늘어가니 충분히 넓다고 생각한 이곳도 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작업실에서 멀지 않은 파주출판단지의 한 건물에 수장고와 전시공간을 겸한 갤러리를 구상하고 있다. 현재의 작업실이 그의 작품세계에 또 다른 챕터를 열어준 것처럼 두 번째 공간 또한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시모 헤이키라의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창밖에는 2층 높이를 훌쩍 넘는 나무들이 있다. 그 뒤로 자유로와 한강이 보이던 풍경은 이제 빼곡히 들어찬 건물로 무심하게 가려져버렸다. 그는 해가 다르게 변해가는 주변 모습이 아쉬워 계절마다 작업실 사진을 찍는다. 폭설이 내리거나 벚꽃이 만발했을 때도 아이처럼 즐겁게 기록했다. 이제는 그렇게 남긴 많은 사진을 보며 그때를 담담하게 추억한다.
아마도 그의 말은 공간에 선사하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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