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인 나경원 찍어내기... 오히려 역풍 분다?
[곽우신 기자]
▲ 나경원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
ⓒ 권우성 |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처사다. 대통령실은 나경원 전 의원의 일련의 처사에 대해 대단히 실망스러워 하고 있다." -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 8일 메시지
"('대출 탕감' 저출산 대책 관련 해명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 당대표 선거에 나가겠다면 부위원장직을 그만두고 나가는 것이 맞다." -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 9일 <뉴스1> 보도
용산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이례적일 정도로 강경한 메시지를 선제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던졌다. 집권여당의 차기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통령실의 강경 일변도 메시지는 사실상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의 '불출마 종용'으로 읽힌다.
대통령실이 출구를 닫으면서 나경원 부위원장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나경원 부위원장 측도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사전에 부정적인 기류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처럼 갑작스럽게 그것도 노골적으로 주저앉히고 나서는 데 대한 억울함마저 전해진다.
'민심'의 일반 여론조사를 배제하고 '당심'의 당원 투표 100%로 전당대회를 치르기로 했지만, 정작 '당심'에서 가장 많은 지지율을 모으고 있는 나경원 부위원장이 '윤심'에서 밀렸다. 김기현 국회의원이 최종 결선에 오르지 못할 경우 '대안'으로까지 검토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관련 기사: 국힘 전당대회 딱 두 달... 나경원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 대통령실은 보다 확실하게 좌지우지할 수 있는 카드를 고른 셈이다.
당사자인 나경원 부위원장은 침묵하고 있다. 그는 9일 오후 김기현 의원의 전당대회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 부위원장은 저출산고령사회위 사무실에도 출근하지 않은 채, 이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숙고에 들어갔다.
▲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기현 의원(오른쪽 )이 5일 오후 서울 송파구민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송파을 신년인사회에서 나경원 전 의원과 악수를 하고 있다. 2023.1.5 |
ⓒ 연합뉴스 |
대통령실과 나경원 부위원장의 갈등이 촉발된 건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나 부위원장이 헝가리의 출산 지원 제도를 언급하면서부터였다(관련 기사: 대통령실 "나경원 '출산시 대출 탕감', 개인 의견일 뿐").
나 부위원장은 출생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수요자 중심의 획기적인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다자녀 출산시 주택 자금 대출 원금 탕감'을 한 예로 들었다. 그러자 대통령실이 즉각 반발했고, 나 부위원장 역시 나름의 해명을 내놨으나 용산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단순히 대통령실과 대통령 직속 기구 사이에 정책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은 문제일까? 그러기에는 대통령실의 반응이 다소 예민하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전부터 용산에서는 나 부위원장에게 '이번 전당대회에 나서지 말라'라는 신호를 충분히 줬는데, 나 부위원장이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여기는 것 같다"라면서 "일종의 '괘씸죄'가 적용된 셈"이라고 평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과 UN기후환경대사 자리를 받았음에도,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저울질한 데 대한 불만이 용산에서도 쌓여 왔다는 취지다.
대통령실과 보조를 맞춰 당내에서도 그를 향한 견제구가 계속 쏟아졌다. '윤핵관' 장제원 의원을 필두로 친윤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김기현 의원은 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나 부위원장이) 맡고 있는 직책 자체의 무게라든지 또 여러 가지 여론, 또 많은 정치 원로들의 충고나 고언 같은 것들도 잘 고려해서 판단하지 않을까"라며 "법적으로 (당대표와 비상근직의 겸직이) 가능한지의 여부하고 또 국민 정서적으로 가능한지 부분도 또 별개의 문제 아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정부직 대사, 정부직 부위원장을 맡아 있는데 정부직을 맡고 있으면서 '당의 대표를 한다' 그러면 그것이 국민 정서에 바람직 한 것이냐"라며 "과거에 그런 전례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거는 좀 과도한 본인의 생각 아닐까"라고 불편한 심경을 그대로 내비친 것.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 역시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이런 식으로 이제 올인 정치를 하겠다, 본인의 길을 가겠다, 정부와 반해서 나의 길을 가겠다, 이게 바로 예전에 했던 유승민의 길 아닌가?"라며 "정책에 엇박자를 내면서 자기 주장을 한다는 건 또 이준석 (전) 대표의 사례도 봤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나경원에게 별의 순간이 온 것 아닌가" 출마 지지하는 이들도
반면, 나경원 부위원장의 당 대표 후보 출마를 적극 응원하는 목소리도 있다. 앞서 나 부위원장을 향해 출마 여부를 빨리 결정해달라고 촉구한 바 있는 김용태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날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와의 인터뷰에 나섰다. 그는 "나경원 (전) 의원께서 별의 순간이 온 것 아닌가"라며 국민의힘 지지층을 대상으로 한 여러 여론조사에서 그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나경원 의원 출마가 '대통령실 하고 각을 세운다', 이렇게 언론에서 해석하는 것 같은데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라며 "저희가 왕정 국가도 아니고, 민주국가에서 당원과 국민이 원하면 거기에 또 응당 응답하는 것도 저는 정치인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국회 소통관에는 '국민의힘 청년당원 100인'의 이름으로 '나경원 전 원내대표 전당대회 출마 요청 및 당원중심 공정 전당대회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장 마이크를 잡은 이들은 "여론조사 당원 지지율 압도적 1위인 후보의 출마를 저지하기 위한 인위적 정치공세가 있는가 하면, 대통령실이 직접 후보 교통정리를 한다는 등의 온갖 안 좋은 소식들이 계속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국민의힘 당원들의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후보를 인위적으로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고, 선택지를 당에서 조정해 당원에게 투표를 하게 한다면, 이게 과연 공정한 전당대회, 진정한 의미의 당원의견 100% 전당대회라고 할 수 있겠느냐?"라고 따져 물었다. 이어 "'윤심'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고, 답은 정해졌으니 당원들은 정해진대로 투표나 하라는 식의 '답정너' 전당대회는 국민들께 큰 실망을 안길 뿐"이라며 나 부위원장의 출마를 지지했다.
유력 당권주자인 안철수 의원은 이날 공식 출마 선언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출마자가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라며 "그렇지 않아도 당원 100% 투표가 돼서 일반 국민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우려가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어 당대표 경쟁을 치열하게 하면 일반 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질 것 아닌가?"라고 답했다. 사실상 나 부위원장의 출마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1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과 면담하고 있다. |
ⓒ 남소연 |
나경원 부위원장의 입장에선 어떤 선택도 쉽지 않다. 대통령실의 명확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당대표 도전 의사를 밝힌다면, 나경원 부위원장도 명백하게 '비윤'의 길을 걷게 되는 셈이다.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받은 자리를 두 개나 맡은 그가, 대통령실과 각을 세워가면서까지 출마를 강행하는 데는 정치적 부담이 따른다. '윤심'으로부터 멀어진 그에게 '당심'이 지금처럼 붙어 있어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대통령실과의 불화가 표면화되면서, 당장 선거를 도울 조직과 사람도 구하기 쉽지 않아졌다는 후문이다. 나경원 부위원장의 제주도 방문이 취소되는 해프닝만 봐도 그렇다. 나 부위원장은 당초 오는 10일 제주도당을 방문해 당원들을 만날 예정이었지만, 도당의 비협조를 이유로 급하게 취소됐다. 용산에서 나서서 퇴로를 끊으니, 나 부위원장이 고립되는 모양새다. 출마를 결단하더라도 캠프를 꾸리기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장성철 소장은 "민심이 곧 당심이라더니, 이제는 당심도 아니라 윤심만 따르라는 셈"이라며 "나경원 부위원장이 이런 압력을 딛고 출마를 결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의 용산 대통령실과 '윤핵관'은 지금까지의 한국 정치 문법에는 한 번도 없었던 변수"라면서 "정치 방정식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짜야 하는 상황이 됐다"라고 꼬집었다. 윤 대통령과 이를 따르는 인사들의 전당대회 개입이 지나치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대로 출마를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용산이 그를 궁지에 몰아넣은 탓에, 오히려 퇴로가 없다. 이번 당대표에 출마하지 않으면 정치인으로서의 훗날을 도모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나경원 부위원장에게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라면서 "책임당원의 규모가 이렇게 커지면, 무조건 국민의힘 당심이 윤심을 따라간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나경원 부위원장을 압박할수록, 당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너무하다'라는 동정론이 일 수 있다"라며 "오히려 강한 역풍을 받아 나 부위원장이 더 확고한 당권주자가 될 수도 있다"라고 봤다.
대통령실과 유승민 전 의원이 대립각을 세우면서, 일반 여론조사에서 유 전 의원의 인기가 치솟았던 것과 비슷한 흐름이 나올 수 있다는 취지였다. 또한 "이같은 용산의 움직임이 김기현 의원을 '친윤'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해서 결선에 오르게 하겠지만, '친윤'에 대한 반발심이 당원들 사이에서도 커지면 진짜 맞대결에서 오히려 패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라고 덧붙였다.
다시, 나경원 부위원장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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