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주의 연극 전설 '리빙시어터', 연극 '로제타'로 한국 관객 찾는다
실험주의 연극으로 유명한 뉴욕의 극단 ‘리빙시어터’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1865~1951)의 삶을 다룬 연극 ‘로제타’를 한국 관객에게 선보이기 위해서다. 리빙 시어터와 한국 극단 마방진은 ‘로제타’를 13일부터 이틀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공연한다.
24살에 조선 땅 밟은 선교사…“일기 한 장에 눈물”
‘로제타’의 극작과 연출을 맡은 연출가 김정한은 6일 서울 영등포구의 마방진 연습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5살에 타지에 와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애쓴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로제타를 처음 만난 곳은 홀의 생전 흔적이 남겨진 마포구 양화진 성지다. 김 연출은 “한국에 함께 온 남편과 어린 딸이 병으로 죽은 후 로제타가 삐뚤빼뚤한 한국어로 ‘나 길을 모르겠으니 하느님 도와주소서’라고 쓴 일기 한장을 보고 왈칵 눈물이 났다”며 그녀의 삶을 연극으로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로제타’는 김 연출이 리빙시어터에 협업을 제안하면서 공동 제작이 결정됐다. 김 연출과 브래드 버지스 리빙시어터 대표는 함께 연극을 만든 동료 사이다. 김 연출은 “리빙시어터는 전쟁을 반대하고 월스트리트의 탐욕을 비판하는 등 사회 참여적인 연극을 만들어왔다”며 “선교사로 헌신한 로제타의 삶은 인류애와 참여 연극을 강조하는 리빙시어터의 철학과 맞닿아있다”고 설명했다.
‘로제타’를 공동 창작·제작한 리빙 시어터는 1947년 배우 줄리언 벡·주디스 말리나 부부가 설립한 극단이다. 파격적인 형식과 개혁적인 주제를 담은 작품들로 당시 세계 연극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등 명배우들이 거쳐 갔으며 1960년대 미국 전위극의 기틀을 다졌다는 평을 받는다.
배우이자 예술감독으로도 참여하는 버지스 대표는 “선교사의 삶을 연극으로 다뤘지만, 고난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며 “성공한 미션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길 바란다”고 했다.
작품의 소재가 된 로제타 셔우드 홀은 구한말 한국에서 활동했던 미국 출신의 여성 선교사다. 홀은 1894년 평양에 국내 최초의 맹학교인 평양여맹학교를 설립하고 여성치료소 ‘광혜여원’을 여는 등 의료 서비스에서 소외된 조선 여성에게 근대 의료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힘썼다. 남편이 전염병에 걸려 죽은 이후에도 한국에도 머물며 44년 동안 의료선교사로 헌신했다.
작품에는 리빙시어터의 실험주의적 스타일이 그대로 녹아들었다. 8명의 배우가 배역 구분 없이 돌아가면서 로제타를 연기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한 배우가 갓난아이를 치료하며 쩔쩔매는 로제타를 연기할 때, 옆에서 다른 배우가 “학교에서 배운 치료법이 왜 생각나지 않지?”라며 로제타의 내면을 연기하는 식이다.
리빙시어터 소속의 미국 배우들도 영어로 로제타를 연기하지만 ‘로제타의 내면’을 연기하는 다른 배우가 한국어 설명을 곁들이고, 복잡한 대사 없이 몸짓과 음악으로 감정을 표현해 언어의 장벽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작품 개발을 함께한 이강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은 “그간 해외 예술가와 협업할 때 언어의 장벽이 큰 고민이었는데 이 작품은 연출력과 기획력으로 언어를 뛰어넘었다”고 했다.
이번 연극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제 공동 창작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무대에 오른다. 13일부터 이틀간 시범 공연을 선보인 뒤 관객·전문가 평가를 거쳐 본공연 제작 여부가 결정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리빙시어터 외에도 일본, 베트남 극단과 함께 공연을 제작하고 있다. 이 전당장은 “로제타를 포함해 3개의 작품을 시범 공연으로 선보이고 그 중 평가가 좋은 2개의 작품을 본공연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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